연합뉴스검찰이 형사소송 과정에서 여러 불편함을 겪는 아동·성범죄 피해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민생범죄를 엄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자와 가족 아픔을 보듬고 지원해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해 온 이원석 검찰총장의 평소 지론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피해자 변호인들 "'착오공탁' 등 제도상 구멍 여전"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1·2부는 이달 18일 피해자 전담 변호인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에 등록된 피해자 전담 변호인은 국선과 사선을 합해 60여명 안팎이다.
이날 간담회는 지난 12일 시행된 개정 스토킹범죄처벌법에 따라 스토킹 범죄자에게 재판 전 전자발찌 부착이 가능해진 것을 계기로 열렸다. 피해자 전담 변호사를 상대로 새롭게 바뀐 제도 활용 등을 당부하고, 피해자들이 겪는 어려움 등 목소리도 폭넓게 청취한다는 취지다.
간담회에서는 변호사들이 피해자 변호 과정에서 경험한 여러 애로사항과 개선할 부분 등 다양한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2년 도입된 형사공탁 특례제도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형사공탁은 피고인이 법원에 공탁금을 맡겨 피해자가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피해자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도 재판에서 가해자 측에 유리한 양형 요인으로 참작된다. 가해자가 감형을 받기 위해 피해자를 찾아가는 등 2차 가해를 방지하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피해자 모르게 이뤄지는 이른바 '기습공탁' 등 부작용도 지적되고 있다.
또 피해자 신원을 특정하지 않고 사건번호 같은 정보만으로 공탁이 이뤄지다 보니 피해자가 다수인 사건에서 공탁금이 애초 의도한 피해자가 아닌 엉뚱한 다른 피해자에게 전달되는 '착오공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피해자가 수사 기관의 조사 요청에 불응했는데도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가 특정되면, 피해자도 모르는 새 공탁이 이뤄지는 황당한 일도 종종 생긴다고 한다.
신진희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피해자 전담 국선 변호사는 "최근 검찰에서도 (피해자 지원에) 관심이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이전에는 종종 이런 간담회가 있었는데 몇 년 만에 다시 연 것"이라며 "피해자 지원은 검사의 주요 역할 중 하나다. 다만 피해자가 겪는 어려움을 일일이 알아보고 먼저 도와주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피해자국선변호인제도가 도입된 2012년부터 전담 변호사로 활동해 왔다.
원신혜 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2부장은 "검찰로서는 범죄 처벌에 집중하다 보면 피해자 권리에 소홀할 수 있다. 간담회는 직접 피해자를 만나고 대리하는 변호사들의 의견을 들어보자는 취지"라며 "아동·장애인 대상 범죄나 성폭력 사건에 국한했던 피해자 지원이 강력범죄로 확대되고 있어 피해자 변호 업무도 덩달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성범죄 피해자 전담 변호사 12년…갈 길 멀어
서울중앙지검. 연합뉴스
형사 범죄 피해자의 권리는 2005년 범죄피해자 보호법 제정을 계기로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2년 '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을 위한 법률 조력인' 개념이 생기면서 성폭력 피해 국선변호사 제도가 도입됐다.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국선 변호사는 사건 발생 초기부터 수사, 재판에 이르기까지 피해자를 지원하며 2차 피해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변호사들은 피해자 전담 변호사 제도를 도입한 지 12년이 지났지만, 피고인 중심주의 재판 때문에 피해자 권리가 침해되는 일이 빈번하다고 토로했다.
2022년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건 피해자는 지난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법원에 수차례 공판 기록 열람을 신청했는데 겨우 공소장만 받았다"며 "법원에서는 피해자가 재판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해자에게 민사소송을 네 문서정보 촉탁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 기록도 1심 선고가 끝난 뒤에 겨우 받을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1심 첫 공판에서 처음 봤다. 이후 영상의 복사본이라도 달라며 법원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지난해 말 한 재경지법에서 열린 미성년자 의제강간 사건 재판에서는 피해자 아버지가 직접 법정에 출석해 "제발 공소장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호소했지만 1심 선고까지 공소장 열람·복사가 허용되지 않았다.
7년째 피해자 국선 변호인으로 활동하는 이현주 변호사(법무법인 시선)는 "검찰이 기소한 공소사실과 적용 혐의 파악은 가장 기초적인 피해자 권리"라며 "검찰이 직권으로 피해자 측에 공소장을 제공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