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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저출생으로 대체 사용해도 된다?[노컷체크]



사회 일반

    저출산, 저출생으로 대체 사용해도 된다?[노컷체크]

    편집자 주

    대한민국에서 장기간 이어진 초저출산 현상은 인구의 지속가능성과 국가 존립 기반마저 위협하고 있다. 국민들은 매일같이 쏟아지는 인구위기 보도로 터전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마주하지만 그 정보가 진실인지 따로 확인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CBS노컷뉴스는 국내외 전문가 분석과 공신력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저출산 관련 이슈들을 종합 검증한 '2024 대한민국 출산·출생 팩트체크 문답'을 9차례에 걸쳐 기획보도한다.

    [2024 대한민국 출산·출생 팩트체크 문답④]
    전혀 사실 아님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한국은 인구소멸 국가다?[노컷체크]
    ②한국 합계출산율은 향후 상승한다?[노컷체크]
    ③합계출산율 1명 이하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노컷체크]
    ④저출산, 저출생으로 대체 사용해도 된다?[노컷체크]
    (계속)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변경해 인구감소 현상의 성차별적 요소를 방지해야 합니다."
     
    저출산 극복을 위한 다양한 대책이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저출산'이라는 용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은 지난해 4월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며 이같이 밝혔다.
     
    '여성이 아이를 낳음'이라는 뜻의 출산은 저출산 문제 주체가 '여성'인 것으로 오인
    될 수 있으니 출생(아이가 태어남)이라는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법안은 21대 국회에 들어 5건 발의됐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도 지난해 12월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바꾼다면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인식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며 개정안을 발의 한 바 있다.
     
    특히, 안 의원은 출산율과 성평등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해당 개정안이 저출산 해결의 마중물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 중 성평등 수준이 높은 국가들이 출산율도 높다"며 "우리나라 저출산 해소를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성평등 문화를 확산·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출생'이 더 중립적?…"정확한 대책 위해 정확한 용어 써야"

    류영주 기자류영주 기자
    현재 법률 및 행정 등에서는 '저출산' 용어를 채택하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에 '저출산'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과 '저출생' 논의는 2020년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에서 성평등 언어사전을 펼치며 본격화됐다. 당시 서울시는 일상 속 단어 중 '차별적 요소'가 있는 단어를 대체할 것을 제안했다. △저출산→저출생 △유모차→유아차 △몰래카메라→불법촬영 등이 그 예다.
     
    '저출생'은 더 중립적이며, '저출산'을 대체할 수 있는 표현일까? 학계는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학술적으로 다른 두 용어의 정확한 사용이 필요하며, 성평등 관점에서도 그리 생산적이진 않다는 입장이다.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은 가임기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자녀 수를 뜻한다. 현시점에서 여성의 미래 출산 여부를 추적할 수 없으므로, 그해 연령별 출산율을 지표 삼는다.
     
    출생률(조출생률, crude birth rate)은 1년간 인구 1천 명당 태어난 출생아 수를 의미한다. 남녀노소를 포함한 전체 인구 대비 출생아 수로, 특정 지역 또는 인구 집단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태어났는지를 나타낸다.
     
    즉, 합계출산율은 '가임기 여성'을 기준으로 '예측'한 지표, 출생률은 '인구 1천 명'당 '실제 출생 통계'다.
     
    둘은 측정 방법뿐 아니라 사용 목적도 다르다. 합계출산율은 국가별 출산율 비교나 인구수 변화 예측을 위한 대표적인 기준으로 사용된다. 출생률은 특정 지역 또는 국가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가 태어났는지를 비교하고 인구 흐름을 분석하는 데 쓰인다.


    성평등을 넘어 성중립 사회로 평가받는 스웨덴에선 홀로 유아차를 끄는 아빠를 쉽게 볼 수 있다. 강지윤 기자성평등을 넘어 성중립 사회로 평가받는 스웨덴에선 홀로 유아차를 끄는 아빠를 쉽게 볼 수 있다. 강지윤 기자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저출생 용어 사용 논의가 구체화됐던) 당시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펼치며 여성을 도구화했던 전력이 있기에 이런 문제 제기가 있었다"면서 "그렇지만 저출산은 저출산이고 저출생은 저출생"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재훈 교수는 "예를 들어 1980년대에 저출산이 시작됐지만 저출생 시대는 아니었다. 또 현재 출산율은 낮지만 출생률은 높은 지역도 있다"며 "여성이 왜 아이를 안 낳는지 그 선택에 주안점을 두려면 저출산에 초점을, 지역을 들여다보려면 출생률을 봐야 한다"고 두 개념이 다름을 강조했다.
     
    김조은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저출생으로 대체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통계 연구하는 입장에서 이는 수학적으로 구별돼야 한다. 대중이나 학자들 간의 소통 과정에 혼란이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계봉오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이같은 주장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며 "출산이라는 개념 자체에 남성의 역할을 포함시키는 식의 사회적 논의를 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라고 밝혔다.
     
    '저출산·출산율' 용어의 재의미화 움직임도 있었다. 보건사회위원회 이상림 연구위원은 "저출산과 저출생에 관해 논쟁이 있었지만 인구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며 오히려 저출산을 쓰는 분위기"라면서 "'여성이 아이를 안 낳는다'는 개념이 아닌 '아이를 낳지 않는 환경이 됐다'며 사회에 책임을 묻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학자들은 여성의 주체적 판단과 적극적 결정을 강조하는 의미로 (출생이 아닌) 출산을 쓴다"고 답했다.  

    신 교수는 문제는 용어가 아닌 성평등이라며 "일과 양육을 함께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고, 남성이 동등한 책임을 가진 양육자로 서지 않는 한 저출산은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현재의 저출산을 "여성들이 '출산파업'을 벌이는 것"이라고 평했다.

    문제는 용어 아닌 '일·가정 양립'…성평등 없이 저출산 해결 안 된다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저출산의 주된 요인으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지목돼 왔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담론을 뒤집는 역전현상이 생겨났다. 실제로 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하고 일과 양육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수록 출산율도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다.
     
    NBER '출산의 경제학;새로운 시대' 캡처 NBER '출산의 경제학;새로운 시대' 캡처 
    미국경제연구소(NBER)가 지난해 발표한 '출산의 경제학;새로운 시대'에 따르면 여성의 경제참여율과 출산율이 반비례로 나타난 1980년도와 달리, 2000년대 들어 여성의 노동참여율(LFP : Labor Force Participation)이 높아질수록 출산율도 반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가능케 하는 요소가 곧 출산율 반등을 만드는 요인이라며, 워킹맘에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 육아휴직 활성화, 남성의 육아 참여 확대, 육아를 마친 남녀를 위한 유연한 노동시장을 전제 조건으로 내세웠다.
     
    2022 여가부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 1977년부터 발표돼 온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은 윤정부 출범 후 '남녀의 삶'로 변경됐다. 보고서 캡처2022 여가부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 1977년부터 발표돼 온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은 윤정부 출범 후 '남녀의 삶'로 변경됐다. 보고서 캡처
    출산율 위기를 겪는 우리나라는 여성의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상황일까? 성이 30대에 결혼·출산·육아로 경력단절을 경험하는 M자형 곡선은 여전히 나타나고 있었다.
     
    2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상반기 지역별고용조사-기혼여성의 고용현황'에 따르면 15~54세 기혼여성 794만 3천 명 중 비취업 여성은 283만 7천 명이었고, 이 가운데 경력단절 여성은 134만 9천 명이었다.
     
    전체 기혼여성 대비 경력단절 비율이 가장 높은 여성 연령대는 30대였다. 또 자녀가 많을수록, 자녀가 어릴수록 경력단절 여성 비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집계됐다.
     
    경력단절 사유로 '육아'를 꼽은 여성이 56만 7천 명(42.0%)으로 가장 많았고, 결혼 35만 3천 명(26.2%), 임신·출산 31만 명(23.0%), 자녀교육 6만 명(4.4%)이 뒤이었다.
     
    이는 유자녀 여성에게 노동시장이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제이컵 펑크 키르케고르(Jacob Funk Kirkegaard) 선임연구원의 '한국 노동시장에서 성별 격차가 지속되는 이유'(2022)에 따르면 자녀가 없는 미혼여성의 고용률은 남성과 큰 차이가 없었다. 반면 자녀가 있는 기혼여성은 남성뿐 아니라 미혼여성의 고용률보다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PIIE '한국 노동시장에서 성별 격차가 지속되는 이유'캡처 PIIE '한국 노동시장에서 성별 격차가 지속되는 이유'캡처 
    제이컵 펑크 키르케고르는 국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성평등을 이루기 전까지 출산율 반등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교육을 받은 여성들에게 가사 노동과 양육을 전적으로 부담시키고, '여성이라면 힘든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에서 출산율이 낮은 건 당연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정재훈 교수는 "사회적 돌봄체계를 확대하고 가족친화적인 기업 문화를 만들어야 엄마의 일과 가정 양립이 가능할 것"이라며 "성평등한 사회, 가족친화적인 사회로 가지 않으면 (출산율 반등은) 어렵다"고 꼬집었다.

    김조은 교수는 "여성들은 일과 가정 양립 문제를 겪고 남성들은 장시간 노동과 직장의 요구에 시달리니 가정에 기여하는 게 적어진다"고 밝혔다. 이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클로디아 골딘 교수는 '젠더 개혁을 위해서는 일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라며 "장기간 노동이 보편화돼 있는 부분이 개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00년 전 스웨덴에게 배운다…'젠더 관계 변화' 있어야



    1930년대 스웨덴은 급격한 출산율 감소로 인해 인구문제를 겪은 바 있다. 당시 스웨덴의 합계출산율은 1.74명으로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김영미 교수에 따르면 스웨덴 정부는 인구위기를 아동·가족의 삶의 질, 일·가정 양립 문제로 규정해 국가 주도의 인구 통제 방식이 아닌 개인 삶의 질을 보장하는 정책을 펼쳤다. 또 1935년 스웨덴 정부는 인구 위원회를 발족했고 출산 수당, 출산에 대한 의료적·경제적 지원, 기혼여성 노동권 보장 등을 채택했다고 한다.

    앤 조피 뒤벤더(Ann-Zofie Duvander) 스톡홀름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출산율 위기를 겪었던 1930년대, 스웨덴 정부는 자녀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노동시장뿐 아니라 육아 또한 평등했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두 가지를 병행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복지혜택을 주기로 결정했다"며 "스웨덴은 출산율이 낮아졌던 시기마다 가족들을 위한 정책과 혜택을 늘리는 방법으로 대응했다"고 말했다.
     
    게르다 네이어(Gerda Neyer) 스톡홀름대학교 사회학과 연구원은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 유럽이 경제 호황을 누렸던 당시 산업화된 대부분의 나라는 노동력 부족을 이주노동자로 충당했다. 반면 스웨덴은 여성을 우선 노동시장에 진입시키기로 했고 이를 위해 아동보육 서비스를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네이어 연구원은 "이후 다른 국가들이 여성을 노동시장에 참여시키고자 연구를 시작했을 때 보육 서비스의 확대와 젠더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며 "그러나 몇몇 학자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고 결과적으로 오랜 시간 낮은 출산율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고 부연했다.

    1850년~2015년 스웨덴의 합계출산율·조출산율 추이. 김영미(2021) '스웨덴 인구 담론 전환이 한국 저출산 정책' 캡처1850년~2015년 스웨덴의 합계출산율·조출산율 추이. 김영미(2021) '스웨덴 인구 담론 전환이 한국 저출산 정책' 캡처
    약 100년 전 내린 결단 때문일까. 현재 스웨덴은 성평등이 자리잡아 성별 구분이 의미 없는 '젠더뉴트럴(gender neutral·성중립)' 사회가 됐다는 평을 받는다.

    스웨덴의 여성고용률은 76.03%(OECD 2023년 2분기 기준)로 한국(61.36%)에 비해 15% 이상 높다. 합계출산율 역시 1.52명(스웨덴 통계청 202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0.78명)의 두 배 수준이다.
     
    스웨덴 정부가 시행 중인 아동수당, 남성 육아휴직, 유동적 근무 등은 우리나라에도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다. 우리 정부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저출산 예산으로 280조 원을 쏟아붓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하다. 올해 3분기까지 태어난 아이가 17만 명대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핵심을 벗어난 정책, 변화하지 않는 전통적인 가치관에 패착이 있진 않을까?
     
    니클라스 뢰프그렌 스웨덴 사회보험청 가족재정 대변인. 박기묵 기자 니클라스 뢰프그렌 스웨덴 사회보험청 가족재정 대변인. 박기묵 기자 
    니클라스 뢰프그렌(Niklas Lofgren) 스웨덴 사회보험청 가족재정 대변인은 이러한 우려에 답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남성의 육아휴직은 1974년 도입됐으나 초기에는 누구도 쓰지 않았다. 20년이 지난 후에도 단 10%의 남성만이 육아휴직 수당을 수령했다. 결국 1995년도 육아휴직 할당제로 (아빠에게 할당된 육아휴직 기간은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 시스템을 개혁했고 즉시 큰 효과가 나타났다. 이후 우리는 성평등한 육아휴직 사용이 가속화된 것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다."

    효력이 나타나기까지 국가는 끊임없이 정책을 수정해야 하며 좋은 정책은 사회적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물론 이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며 "한국이 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간다면 (출산율 반등이) 가능할 것"이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2024 대한민국 출산·출생 팩트체크 문답
    -기획·취재 : 박기묵 양민희 송정훈 강지윤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24 대한민국 출산·출생 팩트체크 문답 페이지 바로가기
    m.nocutnews.co.kr/story/s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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