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 김윤식. 연합뉴스LG 트윈스 김윤식. 연합뉴스지난 2002년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었던 낭만의 투수가 있었다. 공식 프로필상 1963년으로 당시 한국 나이 마흔 살이었음에도 한겨울에 열린 포스트시즌에서 반팔 차림으로 마운드에 올랐던 열정의 왼손투수 라벨로 만자니오다. LG 팬들에게 인기가 정말 많았던 선수다.
만자니오는 LG가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와 2차전에서 선발승을 달성했다. 이후 한동안 LG에서 한국시리즈 선발승을 거둔 투수는 나오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LG가 한동안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다.
LG는 2023 KBO 리그에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해 2002년 이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첫 3경기를 치르는 동안 선발승이 나오지 않았다. 1차전에서 케이시 켈리가 6⅓이닝 2실점(1자책)으로 잘 던졌지만 동점 상황에서 강판됐다. 2,3차전에서는 선발투수들이 5이닝을 채우지 못했다.
염경엽 감독은 11일 오후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와 한국시리즈 4차전을 앞두고 "선발투수들이 잘 던져주면 좋겠다"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선발투수가 자기 역할을 못 하면서 엄청 힘들다. 벤치에서 계속 준비하고 머리를 써야 한다"며 분발을 촉구했다. 그 시작은 4차전 선발투수 김윤식이었다.
김윤식은 벤치의 기대에 100% 부응했다.
김윤식은 5회말 1사에서 문상철에게 우전안타를 맞기 전까지 노히트 행진을 달리는 등 눈부신 호투로 KT의 기세를 꺾었다. 김윤식은 5⅔이닝 3피안타 1볼넷 3탈삼진 1실점 호투를 펼쳐 LG의 15-4 승리를 견인했다.
이로써 김윤식은 LG 소속으로는 2002년 만자니오에 이어 21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서 선발승을 따낸 투수로 우뚝 섰다.
국내 선발로는 현대 유니콘스를 만났던 1998년 한국시리즈 5차전의 최향남 이후 처음이다.
김윤식의 올해 정규리그는 아쉬움이 적잖았다. 2022시즌 8승 5패 평균자책점 3.31을 기록해 가능성을 알렸고 특히 후반기에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면서 기대감을 끌어올렸지만 그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지난 6월에는 2군으로 내려가 재정비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9월에 다시 1군에 올라와 선발투수로서 3승을 따내며 한국시리즈 선발 로테이션에 이름을 올렸지만 무게감은 다소 떨어졌다. 염경엽 감독은 만약 3차전에서 패했다면 4차전 선발로 김윤식 대신 케이시 켈리를 기용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윤식은 우려를 씻어내고 눈부신 호투로 LG 마운드에 큰 힘을 실어줬다. 스릴러 같았던 지난 2경기를 치르면서 체력 소모가 많았던 LG 불펜에게도 힘이 됐다. 김윤식이 6회말 2사에서 마운드를 내려갈 때 LG 팬들은 김윤식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오래 전 '반팔 상남자' 만자니오가 들었던 그 함성을 떠올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