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10명 모인 행사도 일단 경찰 투입…이런다고 '안전'할까?



사건/사고

    10명 모인 행사도 일단 경찰 투입…이런다고 '안전'할까?

    편집자 주

    159명이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 멈춰선 듯한 시간은 흘러 1주기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하지만 참사를 부른 근본 원인과 피해를 키운 책임자의 정체는 아직도 어둠 속에 묻혀있다. CBS노컷뉴스는 진실 규명과 재발방지를 앞에 둔 채 뒷걸음질을 반복해온 한국 사회와, 그 속에서도 한 발이라도 나아가려 애써온 이들의 노력을 살핀다.

    [이태원 참사 1주기 기획③]
    경찰에 급증한 행사 안전 관리 업무…일선 업무 부담 '딜레마'
    어르신 경로 잔치·초등학교 축구대회도 일단 "경력부터 요청"
    경찰 기동대 초과 근무 시간 60→72시간 급증하기도
    면피에 급급해 '일단 투입하고 보자' 사실상 일선에 책임 떠넘기는 지휘부도 문제
    "적어도 주최 명확한 행사는 주최 측이 안전관리 대책 우선 마련해야" 지적도

    지난 2022년 10월 30일 이태원 참사 현장이 발생한 장소에서 경찰이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지난 2022년 10월 30일 이태원 참사 현장이 발생한 장소에서 경찰이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참사 후 1년…이태원과 日아카시는 어떻게 달랐나
    ②참사 1년이 오도록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③10명 모인 행사도 일단 경찰 투입…이런다고 '안전'할까?
    (계속)

    이태원 참사 이후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온갖 행사마다 경찰 인력을 지원해달라는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안전사고 대비에는 '지나침'이 없다지만, 행사 주체가 분명한 지자체·사기업 행사까지 무분별하게 경력이 투입돼 일선 현장에서 업무 과중을 호소하고 있다. 더 나아가 안전을 핑계삼아 공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4일 행정안전위원회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기동대 출동 건수 및 지원경력'에 따르면, 지난해 대비 올해 소규모 지자체 행사부터 사기업 행사, 대학교 축제까지 경찰 기동대 지원 건수가 2.4배 증가했다.

    실제로 지난해 기동대 출동 건수는 월평균 134건(지원 경력 7068명)이었는데 올해는 월평균 321건(1만 8780명)으로 늘었다. 참사 이후부터 지난 8월까지 전국 지자체 및 사기업 관련 행사에서 먼저 경찰 기동대를 요청한 건수는 277건이다.

    문제는 사고 가능성이 매우 낮거나 주최자가 경비 인력을 동원할 여력이 충분한 행사에도 경찰이 과도하게 투입된단 점이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 '주최자가 없는 다중운집 행사'여서 주도적으로 안전 대책을 세울 책임자를 가리지 못한 채 참사가 일어났다면, 이제는 주최 측이 명확한 행사조차 안전 관리 책임을 무턱대고 경찰에 떠넘긴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 성북구는 '2023년 새마을지도자 하계수련대회'라는 행사에 경력 동원을 요청했다. 행사 내용은 성북구 새마을지도자 하계수련대회로, 구청 등 주최자가 명확하다.

    인명 사고 위험이 크지 않은 소규모 '동네 행사'에도 경력이 동원된다. 충남에서는 홍북읍 주민자치회 위원 추첨식에 경찰이 투입됐는데, 이 행사에는 참여 인원은 겨우 10명 뿐이었다.

    또 경남에서는 축하공연, 어르신 식사, 노래자랑 등을 벌인 '팔룡어르신 경로잔치' 행사에도 경력 동원을 요청했다. '내서읍 초등학교 축구대회'에도 경력이 요청돼 실제 투입되기도 했다.

    심지어 주최 측이 자체적으로 경비 인력을 구할 여력이 충분한 사기업 관련 행사까지 경찰 인력을 동원되고 있었다. '청송전국 아이스클라이밍 선수권 대회'에도 경력이 요청됐는데, 이 대회는 기업체의 후원 속에 대한산악연맹이 주최하고 경상북도산악연맹이 주관했다.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
    이처럼 경중을 가리지 않고 각종 행사에 경찰이 자꾸 동원되면서 경찰의 업무 부담도 커졌다. 참사 직전인 지난해 6~10월 기동대 경찰 1인당 월평균 초과 근무 시간은 60시간이었는데, 참사 이후인 지난 3~7월은 72시간으로 12시간 가량 늘었다.

    기동대 뿐 아니라 일선 지구대·파출소 경찰들도 업무 과중을 호소하고 있다. 매년 문제없이 진행하던 소규모 '동네 행사'에도 과도하게 경력을 투입하느라 정작 급한 업무를 처리할 시간까지 뺏긴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의 한 지구대 경찰관은 "자원봉사 단체에서 길거리 노숙인들 대상으로 야외에서 간단한 행사를 진행하는데도 경력을 투입하더라"며 "넓은 야외에 의자까지 준비되는 행사로 매년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도 과민하게 대응한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일단 경력부터 투입하고 보자'는 방침은 결국 지자체·경찰 조직 스스로 안전 사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대신 면피에만 급급해, 사고 대비 책임을 일선의 부담으로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

    서울의 한 간부급 경찰 관계자는 "동네 경로당에서 작은 행사를 해도 구청에서 협조 요청을 보내온다"며 "결국 모든 행사에 협조 요청을 보내놓으면 일선 현장에 놓인 경찰에 추후 책임을 전가하기 쉽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경찰 기동대도 인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적어도 주최자가 분명한 행사는 주최 측이 안전 사고를 최대한 대비한 뒤 부족할 경우에만 협조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영리 업체들이 수익 사업으로 진행하는 행사의 경우에는 자체적으로 관리하든지 민간 경호 업체를 고용하는 것이 맞다"며 "지자체가 주관하는 행사도 전적으로 경찰에 맡기기보다 지자체 자체적으로 예산을 들여 (관리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