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법정B컷]韓美서 쫓긴 '권총' 마약상…이유 묻자 "홍콩영화에서"

  • 0
  • 폰트사이즈
    - +
    인쇄
  • 요약


법조

    [법정B컷]韓美서 쫓긴 '권총' 마약상…이유 묻자 "홍콩영화에서"

    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압수현장. 소파 테이블 안에 총기가 들어있다. 서울중앙지검 제공압수현장. 소파 테이블 안에 총기가 들어있다. 서울중앙지검 제공
    이제는 일상이 된 듯 한 마약 범죄. 점차 범죄의 행태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오늘 '법정B컷'이 전해드릴 이야기는 한 국제 마약상의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마약상으로 활동하던 그는 한국과 미국 수사당국의 추적 끝에 붙잡혔습니다. 눈에 띄는 점은 10만 명 분의 필로폰과 함께 살상무기인 총을 동시에 밀반입하다가 적발됐다는 점입니다.

    엄청난 양의 마약과 총을 함께 밀반입한 40대 마약상, 그는 법정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요? 필로폰은 자신이 반입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한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이삿짐 속 마약과 권총… 韓美가 쫓던 마약상이었다

    한국과 미국 마약단속국의 추적을 받던 40대 마약상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강규태 부장판사)가 심리하는 법정에 섰습니다. 머리는 덥수룩했고, 녹색 수의를 걸친 몸은 말라 있었죠.

    그는 젊은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오랜 기간 로스앤젤레스(LA)에서 마약 판매상을 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지난해 7월 귀국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이삿짐을 부산항으로 보냅니다.

    배를 타고 부산항에 도착한 이삿짐에는 10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약 8억 원 어치의 필로폰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이 찾아낸 필로폰 3.2kg. 서울중앙지검 제공서울중앙지검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이 찾아낸 필로폰 3.2kg. 서울중앙지검 제공
    2023.5.9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 권총 마약상 A씨 공판 中
    검사 "피고인은 2022년 7월 26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거지에서 필로폰 3208g을 비닐팩 9개에 나누어 진공 포장한 뒤 소파 테이블 천 내부에 넣어 이사 화물로 숨겼습니다. 이후 주소를 서울 노원구 주거지로 기재하고 일반 화물로 발송해 2022년 9월 9일 14시경 부산항에 도착하게 하면서, 8억 원 상당의 필로폰 3208g을 수입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눈에 띄는 점은 A씨가 마약 뿐만 아니라 다수의 총기를 함께 국내에 밀반입하려 했다는 점입니다. 그의 이삿짐에서는 45구경 록아일랜드 1911 A1 권총과 모의 총포까지 여러 정의 총기가 발견됐습니다.
     
    2023.5.9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 권총 마약상 A씨 공판 中
    검사 "피고인은 경찰청장 허가 없이 2022년 7월 26일 45구경 록아일랜드 A1 권총과 실탄 50발을 공구함에 분산해서 부산항에 도착하게 했습니다" 

    검찰과 미국 마약단속국은 지난해 12월부터 A씨의 범행 시도를 파악하고 추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추적 끝에 그의 자택에서 필로폰과 총기를 모두 압수합니다. A씨가 필로폰을 투약한 사실도 밝혀내죠.

    당국은 A씨가 LA에서 마약상으로 활동했다는 점, 그리고 살상무기인 총과 실탄까지 들여왔다는 점에서 미국 내 마약 조직과의 연계 가능성까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총은 왜 들고왔냐고 묻자… "홍콩 영화를 보다가 동경심이"

    지난 4월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브리핑실에서 '마약 및 총기류 동시밀수, 국내 최초 적발' 관련 언론 브리핑이 진행되고 있다. 황진환 기자지난 4월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브리핑실에서 '마약 및 총기류 동시밀수, 국내 최초 적발' 관련 언론 브리핑이 진행되고 있다. 황진환 기자
    국내에서 마약과 살상무기 동시 밀반입이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죠. 그의 집에서 6정의 모의 총포도 함께 발견됩니다. 모의 총포 역시 불법 무기류에 속합니다. 특히 A씨가 가져온 모의 총포는 가스 발사식 총포로 운동에너지가 0.02kgm를 초과했죠.

    A씨는 '총을 왜 들고 왔냐'는 말에 이렇게 답합니다.

    2023.8.10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 권총 마약상 A씨 공판 中
    A씨 측 변호인 "모의 총포는 미국 아마존, 이베이 등에서 누구나 쉽게 살 수 있습니다. 피고인이 평소 홍콩 영화를 보며 동경심을 갖고 있다가 100달러 정도에 하나씩 사서 갖고 있던 것입니다. 마약이 압수되면서 테이블에 진열돼 있던 모의 총포가 압수된 것입니다"

    "물론 미국에서 허용된다고 해서 한국에서 허용 여부를 뭐라고 변소하기보다는 피고인의 무지…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이어 감정 결과를 근거로 제시하며 사용할 의도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저 홍콩영화를 보고서 생긴 취미일 뿐이라는 겁니다.

    2023.8.10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 권총 마약상 A씨 공판 中
    A씨 측 변호인 "그리고 감정 내용을 보시면 종전 압수된 진짜 권총까지 해서 사용 여부를 모두 감정했는데요. 모의 총포는 BB탄 마저 하나도 사용한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는 감정 결과가 나왔습니다. 총포 소지 경위에 대해서 피고인 의도를 깊게 헤아려주시길 바랍니다. 선처를 부탁합니다"

    이날 검찰은 A씨에게 징역 21년을 구형합니다. 최후진술에 나선 A씨도 눈물을 흘리며 반성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A씨는 필로폰은 자신의 친구가 이삿짐에 몰래 숨겨놓은 것이라며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필로폰 밀수 혐의는 부인했습니다.

    2023.8.10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 권총 마약상 A씨 공판 中
    A씨 "구치소에서 저의 무지함과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마약 요구에 저를 못 지켜 후회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마약이나 어떠한 범죄에도 빠지지 않고 올바르고 성실하게 살겠습니다. (울먹) 부모님 앞에서 다짐합니다. 매일매일 반성하고 다짐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A씨에 대한 공판은 줄곧 방청하는 이가 거의 없이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매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A씨 부모님이었습니다.

    백발의 노부부는 재판을 쭉 지켜보며 공판이 끝날 때마다 멀리서나마 아들의 안부를 묻곤 했습니다. "왜 전화는 안 해?"라는 아버지의 말에 A씨는 "비가 와서 운동을 못 나갔어요. 죄송해요"라고 말하는 등 소소한 대화가 오갔죠.

    그리고 지난 31일 선고 기일이 진행됐습니다. 이날 역시 A씨의 부모님은 방청석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A씨는 친구가 자신의 이삿짐에 필로폰을 넣은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주변 지인들과 나눈 메시지 대화가 결정적 증거였습니다.

    2023.8.31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 권총 마약상 A씨 선고 中
    재판부 "피고인은 필로폰 수입을 제외한 나머지 범행은 자백하고 있습니다. 필로폰 수입에 대한 판결 이유 요지를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필로폰을 미국에서 이삿짐으로 발송한 시점이 2022년 7월인데 주변 사람들과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면 피고인이 지인들과 다양한 종류의 마약을 거래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22년 7월 26일 미국에서 발송한 이사화물 중 커피 테이블 밑에 숨겨둔 필로폰은 9덩어리로 소분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전 쯤이죠? 6월 29일에 피고인이 B라는 사람한테 
    '9개를 살 건데 얼마에 줄 수 있대?'라고 보낸 메시지, 또 7월 1일에 B에게 '7개 받은 거 말고 2개 산 거, 그 양이 30g 넘게 적어'라는 메시지 있습니다"

    "또 그 중간인 6월 30일에 C한테 
    '내가 공구박스 줬잖아, 저울 있으면 갖다 줘'라는 메시지도 있어요. 6월 29일과 7월 1일 사이에 저울을 이용해서 무게를 쟀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삿짐에 9개로 나뉘어 숨겨져있던 필로폰, 그리고 A씨가 지인들과 주고 받은 메시지가 정확하게 일치한 겁니다. 재판부는 설명을 이어갑니다.

    옷장 속에 은닉한 필로폰 압수 현장 모습. 서울중앙지검 제공옷장 속에 은닉한 필로폰 압수 현장 모습. 서울중앙지검 제공
    2023.8.31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 권총 마약상 A씨 선고 中
    재판부 "이사 화물이 도착한 다음인 11월 18일 피고인은 C한테 '네가 한국에 아는 사람 있다고 했었나? 내가 4kg 가지고 나온 거 너 아는 사람 통해서 팔면 키로 당 5000불씩 커미션 가져가면 2만 불 되잖아'라고 보냈는데 이 점을 보면 피고인이 국내에 가져온 것이라는 명확한 표현이 있습니다"

    A씨 "재판장님!"

    재판부 "선고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은 D씨가 피고인 몰래 이사화물 속에 필로폰을 숨겼다고 합니다. 피고인이 자거나 샤워하고 있을 때 숨겼을 것이라는 게 피고인의 검찰 진술입니다"

    "이 사건 필로폰이 어떻게 감춰져 있었는지 보겠습니다. 건 타커(Gun Tacker)라고 하죠? 총모양 스테이플러로 필로폰이 든 종이상자 윗면을 나무판에 덧대어 붙이고, 나무판은 커피테이블 아래에 고정할 수 있도록 폭이 정확히 재단돼 있습니다. 매우 교묘하고 정교하게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작업이 피고인이 잠을 자거나 샤워 중일 때 들키지 않을 정도의 소음만 내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입니다. 피고인이 잠시 외출했을 때라도 짧은 시간에 피고인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이 작업을 하기엔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중략) 피고인도 이 부분 진술이 설득력이 없었다고 생각했는지 법정에서는 장기간 외출한 틈에 D가 필로폰을 몰래 숨겼을 것이라고 진술을 번복했어요"  

    "마지막으로 피고인 D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가 있어요. 
    '내일 이삿짐 오는데 신고 때렸으면 지금 말해. 지금 말하면 뭐라 안 할 테니까'라는 이 메시지는 피고인 주장과 배치되는 메시지입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피고인이 필로폰을 수입했다는 확신을 이 법원으로선 얻을 수 있습니다"

    피고인 "재판장님, 너무 억울합니다"

    재판부 "선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3심제가 있고요. 1심 법원 결론입니다. 자꾸 자르지 마세요!"

    그리고 그에게 징역 10년이 선고됩니다.

    2023.8.31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 권총 마약상 A씨 선고 中
    재판부 "피고인이 무허가 총포 수입, 소지와 필로폰 투약을 자백하고 반성하는 태도 보이고 있고, 밀수한 필로폰이 유통되지 않은 점, 동종 범죄 전력이 없는 점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입니다"

    "하지만 마약류 범죄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해악의 심대성과 밀수한 필로폰이 3.2kg으로 엄청난 양이고 피고인이 국내에 유통시키려고 한 점, 또 위험성이 매우 높은 총기와 실탄을 허가 없이 수입했고 6정의 모의총포도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필로폰을 투약하기도 했고, 밀수 범행에 대해선 전혀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을 하고 있어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일어서세요. 주문 피고인을 징역 10년에 처한다"

    A씨 "재판장님"

    재판부 "피고인이 달리 생각하면 항소하면 됩니다. 선고하는데 말을 끊는 것은 아니잖아요?"

    A씨 "너무나 죄송합니다"


    A씨는 선고일 전날까지도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했습니다. 석 달간 진행된 이번 재판 기간 동안 반성문만 7번을 썼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죠. 재판부의 말대로 마약 범죄가 사회에 끼칠 해악은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사문화됐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형법이 여전히 '아편에 관한 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마약에 대한 두려움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불과 150년 전 옆나라에선 아편을 막지 못해 국가가 망했으니깐요.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