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낮 최고 기온이 35도까지 오르는 등 전국적으로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1일 오후 서울 양천구 월드컵대교 공사현장에서 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위 사진은 아래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없음. 황진환 기자말 그대로 살인적인 더위가 연일 한반도를 덮치지만, 야외로 나가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폭염 속에 밭일하던 고령층이 온열 질환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에도 농업 특성상 농사짓는 이들은 밭으로, 비닐하우스로 나갈 수밖에 없다. 도시 야외 노동자 역시 살갗이 화상을 입을 정도의 뙤약볕에도 긴팔과 팔토시 차림으로 묵묵히 일을 한다.
"30분만 일하면 어지러워…혼자 있다가 쓰러질까 무서워"
'36도' 찜통더위를 기록한 지난 1일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찾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부용리. 딸기를 재배한다는 허청(58)씨의 비닐하우스에 발을 들여놓자, 바깥기온 보다 훨씬 높은 40.8도를 가리키는 온도계가 눈에 띄었다.
허씨는 환풍기를 틀어서 이 정도라며 환풍기를 끄면 비닐하우스 온도가 45도까지도 올라간다고 답했다.
허청(58)씨의 딸기 비닐하우스 안 온도가 40.8도를 기록했다. 양형욱 기자최근에 집계된 온열질환자 통계(1일 기준)에 따르면, 지난 5월 20일부터 접수된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는 총 21명으로 이중 대부분이 밭일하던 노인들이었다. 지난달 31일 경북 성주에서는 밭일을 하기 위해 비닐하우스 안 고추밭에 나갔던 90대 여성이 또다시 숨진 채 발견됐다.
하지만 농부들은 농사짓는 데도 적기가 있기에 작물이나 시설에 문제는 없는지 매일 나와 살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는 "지금은 딸기 수확 작업이 끝나고 딸기를 정리하고 상토 흙을 교체하고 소독하는 일을 한다"며 "(날이 더워) 오전에 새벽 6시부터 8시 사이에 일을 하고, 오후에 잠깐 일을 할 땐 꼭 커튼을 쳐 그늘을 만들고 작업을 한다. 그러지 않고 30분만 작업하면 어지러움이 온다"고 했다.
며칠 전에도 쓰러질 정도의 어지러움을 느꼈다는 허씨는 최근 들려오는 온열 질환자 사망 소식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더울 때 작업을 하면 혹시나 쓰러질까 우리 집사람이 자꾸 나와서 본다"고 토로했다.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부용리에서 농사꾼이 밭일을 하는 모습이다. 양형욱 기자 1천 평 대 고추 농사를 짓는 유복진(71)씨는 해가 없는 새벽 5시에 일어나 고추를 수확하고 말리는 작업을 시작한다. 이날도 새벽부터 정오까지 일했다는 민소매 차림의 유씨는 오전부터 기승을 부린 더위에 눈도 뜨기 힘들 정도로 지친 모습이었다.
하지만 더운 날씨에 잡초도 무성히 자라 농사꾼 입장에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어제도 잡초 못 나오게 하려 약을 사다가 콩밭 깨밭에 11통을 뿌렸다"며 "짊어지고 약을 뿌리다 보니 말도 못 하게 땀이 났다. 그냥 옷이 다 젖어버렸다"고 했다.
그는 "밖에서 일하면 뜨거워서 너무 힘들다"며 "혼자 있다가 그러다가 쓰러지면 누가 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것"이라며 걱정스러워했다.
"햇빛에 팔은 화상, 토시는 필수…이온음료로 버텨"
도시에서도 야외 노동자들은 밖으로 나와야 한다. 같은 날 서울 동대문구에서 만난 택배기사 이모(55)씨도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긴팔, 긴바지 차림으로 짐을 나르고 있었다.
이씨는 "날이 더워 반팔도 입어봤는데 햇볕에 타 피부가 따갑다. 짐을 들고 다니면 쓰리기까지 해 저녁에 집에 가 분을 발라야 했다"며 "몇 번 그렇게 하다 보니 더워도 긴팔 입는 게 더 낫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폭염 속에도 하루 평균 200개의 짐을 나른다고 했다. 이날 그에게 배당된 택배는 185개였다.
불볕더위에 집마다 배달하려 종종걸음으로 다니다 보면 땀으로 옷이 흠뻑 젖기 일쑤다. 이씨는 땀으로 젖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여분의 옷을 한 벌씩 챙겨 다닌다고 했다.
이씨는 "땀 범벅인 채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타면 가끔 '땀 냄새 난다'며 기피하는 사람이 있다"며 "땀 냄새가 오래 배다 보면 역겨울 수도 있지만 나도 집에 가면 자식이 있고 한데 속상하고 솔직히 자존감이 떨어진다"고 속상해했다.
같은 골목에서 만난 오토바이 배달 기사 50대 문모씨는 "10분만 달려도 새카맣게 타고 피부 화상을 입을 정도로 일하기가 힘들다"며 "그래도 먹고 살기 위해 하루 일곱 여덟시간을 일한다"고 입을 열었다.
인터뷰를 위해 잠시 오토바이를 세우고 헬멧을 벗자, 문씨 머리카락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내내 달궈진 아스팔트를 달린 탓에 땀이 몇번이고 흘렀다 말라 옷에는 허연 소금기 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는 "배달 기사들은 밥 먹을 때가 제일 바쁜 시간이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어 식사를 많이 거른다"며 "요즘같이 더울 때는 물 대신 이온음료를 낮에 한 병, 저녁 때 한 병을 마신다"고 했다.
오토바이 배달 기사 문모씨는 더위를 이기기 위해 매일 1.5ℓ 이온음료 두 병을 비운다고 했다. 임민정 기자 이날은 체감 아닌 실제 기온이 36도까지 치솟은 그야말로 살인적인 더위였다.
귀가 따가울 정도의 매미 소리와 함께 건설 현장엔 철근이 부딪치고 망치질 하는 소리가 울렸다.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정모씨는 "건설 현장 자재가 대부분 쇠이다 보니 날씨가 더우면 뜨겁게 열을 받아서 열기가 더 많이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그는 "날이 너무 더우면 강제로 쉬는 시간을 갖는다"며 "공사 중단까지는 아니고 10분~20분 정도 열 식혔다가 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뜨거운 두 개 고기압 겹쳐 '36도' 찜통더위
폭우 뒤 찾아온 찜통더위는 우리나라를 뒤덮은 두 개의 고기압이 원인이다.
기상청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우리나라 쪽에 머물면서 대기 하층에 뜨거운 수증기를 공급하고 있고, 그 위쪽 대기 상부에선 티벳 고기압 가장자리로 뜨겁고 건조한 공기가 유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기 상층부와 하층부가 모두 뜨거운 공기로 가득 찬 상태에서 태양열에 가열되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무더위가 찾아오는 것이다. 기압계의 정체로 발생하는 '열돔' 현상과는 거리가 있다는 게 기상청 설명이다.
기상청은 이러한 '찜통 더위'가 오는 11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최고 체감온도가 35도까지 오르는 등 폭염과 열대야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온열질환자도 발생하는 상황, 폭염 시에는 온열질환이 발생할 우려가 커 수분과 염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야외활동은 가급적 자제하는 등 건강관리에 유의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야외 활동을 할 때는 챙이 넓은 모자와 밝고 헐렁한 옷을 착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어지럽거나 속이 안 좋으면 온열질환 초기 증상일 수 있어 즉시 활동을 중단하고 시원한 곳에 가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