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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대장동 재판에서 '걸레'란 말이 등장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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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대장동 재판에서 '걸레'란 말이 등장한 까닭

    연합뉴스연합뉴스
    최근 대장동 재판을 지켜 본 사람들 사이에서 "대장동 재판이 '사법농단 재판화' 되는 것 같다"는 얘기들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사법농단 재판화'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을 일컫는데 재판이 열리는지 안 열리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1심 판결이 수년째 지연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사법농단은 재판이 시작된지 1560일쯤 된 것 같다. 햇수로만 4년을 훌쩍 뛰어넘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지만 1심 선고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대장동 재판 내역을 정리해 보겠다.

    ▶ 대장동 재판 내역
    1사건-대장동 본류 사건으로 2021년 11월 기소된 김만배,남욱,유동규 등 이른바 대장동 5인방에 대한 배임 사건(서울중앙지접 형사합의22부.이준철 부장판사가 심리 진행)
    1-1사건-대장동 본류사건+ 대장동 5인방에 대한 이해충돌방지법 등 추가기소 사건(1 사건 재판부가 맡고 있고, 올해 1월에 이해충돌방지 건 등이 추가 기소됨)
    2사건-김용.정진상에 대한 정치자금법.뇌물 혐의 재판(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조병구 부장판사가 심리진행)
    3사건-이재명·정진상에 대한 대장동 배임 및 성남fc 뇌물 혐의 사건(올해 3월에 기소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김동현 부장판사 심리 진행)
    4사건-김만배 등 범죄수익은익 혐의(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김상일 부장판사 심리진행)

    남욱 변호인 "방어권이 '걸레'가 되고 있다"

    연합뉴스연합뉴스
    며칠 전 대장동 본류 사건 재판(위표에서 1사건)에서 남욱 피고인 변호사가 "재판 효율과 수사 편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의 방어권이 '걸레'가 되고 있다"고 강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죄는 밉지만 피고인으로서 할 수 있는 불만이라 생각된다.
     
    대장동 재판이 '걸레화' 됐다고 단정할 순 없을지언정,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는 표현만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특히 대장동 배임 혐의를 다투는 '1사건'과 '3사건' 재판 선고는 내년 총선은 고사하고, 내년 말에 끝날지, 아니면 내후년 말까지 갈지 예측불가의 상황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단군 이래 최대 비리 사건이라 통칭됐지만 재판에 대한 관심은 물론 재판 진행 조차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1심 선고가 나기까지 2-3년이 걸린다면 그걸 어찌 '재판 답다'라고 할 수 있을까.
     
    재판을 보지 않은 일반인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재판에서 '걸레' 라는 표현까지 등장한 이유는 대장동 사건 수사가 1년 5개월 이상 계속되며 같은 사안인데도 큰 시차를 두고 '주범'을 달리해 순차적으로 기소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은 대장동 5인방을 '주범'으로 보고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의 검찰은 이재명,정진상 피고인을 대장동 배임의 '주범'으로 사건의 판을 갈아 엎었다. 정권을 달리하며 배임 혐의 주범이 각각 대장동 일당과 이재명 피고인으로 각각 나눠져 두 개의 다른 재판으로 분화된 것이다.
     

    17개월간 94회 열린 배임 혐의 재판…사실상 다시 재판해야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
    문제는 '대장동 사업자' 배임 재판(1사건)의 사실 심리가 종료되는 시점에 '주범' 교체가 이뤄진 새로운 배임 재판(3사건)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1사건' 재판은 김만배 등 5명의 대장동 사업자를 '651억원+알파' 배임 혐의로 2021년 11월기소한 사건이다. 17개월 동안 무려 94차례의 재판이 열렸다. 이 재판은 선고만 이뤄지지 않았을 뿐 배임에 관한 사실 심리는 거의 마무리 됐다. 재판부도 배임 혐의 심리를 종결하고 추가 기소된 이해충돌방지 혐의에 대한 재판을 막 시작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검찰이 이재명 피고인(3사건)을 기소하면서 대장동 일당 배임 액수를 '651억원에서 4895억원으로 해달라'고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651억원 혐의에 대해 94회나 되는 재판에서 다툼을 벌여 사실 심리가 종착역에 도달했는데 4895억원으로 공소장을 변경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배임 혐의 재판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것이나 진배없다. '1사건' 재판부(형사합의22부) 조차 "1년 이상 심리한 기본 구조나 사실관계 자체가 완전히 바뀌는 내용은 아니지만 추가된 사실이나 공소사실 자체가 상당히 방대한 양"이라며 "다른 재판부 결과나 판단에 서로 영향을 받는 측면이 있어 고민이 많아진 상황"이라고 당황스러운 입장을 토로했다.
     
    피고인들은 여태껏 '651억원+알파'의 배임혐의에 맞춰 방어권을 행사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4895억원이라는 새 혐의에 맞춰 그간 해온 증언과 진술을 바꾸고 방어해야 하는 입장에 선 것이다. 651억원 때 했던 진술을 4895억원 맞춰 증언을 바꾼다면 도대체 대장동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무엇이고 어느 증언이 더 사실에 부합하는 것일까.
     
    이뿐만이 아니다. '3사건' 재판은 이제 막 재판을 시작했다. '1사건'과 '3사건' 재판은 사건 구조가 유사하나 '주범'이 확연히 다르다. 앞서 말한대로 '1사건'은 5명의 대장동 사업자가 주범이고, '3사건'은 이재명,정진상 피고인이 주범인 재판이다. 사건의 사실관계는 유사하지만 검찰의 '목표'가 다를 뿐이다. 뒤죽박죽 될 개연성이 커졌다. 각각의 피고인들은 '1사건'과 '3사건' 재판 심리에 참여해야 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중복과 혼란은 피하기 어렵다.
     

    '1사건'을 먼저 판결해야 할까, '3사건'을 해야 할까

    법정 향하는 유동규. 연합뉴스법정 향하는 유동규. 연합뉴스
    특히 재판부가 고민하는 지점은 더 아리송하다. '1사건' 선고를 먼저 해야 할까, 아니면 '3사건' 선고를 먼저 해야 할까, 재판부가 다른 두 사건의 관계는 어떤 영향을 주고 받을까. 다른 재판부 결과나 판단에 서로 영향을 받는 구조라면 판사의 법률과 양심은 신뢰할 만한 것인가.
     
    유동규 피고인 역할 또한 큰 변수다. '1사건' 재판부터 '4사건' 재판까지 5개 재판에서 핵심 인물은 유동규다. 모든 사건은 유동규 진술과 증언에 맞춰 기소된 사건으로 유동규가 없다면 재판이 성립하기 어렵다. 그런데 유동규 피고인은 현재 진행되는 재판에서 지병을 이유로 증언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재판이 중간에 중단되기 일쑤이다. 지난 주엔 갑자기 응급실로 가는 바람에 정진상 피고 재판이 취소됐다. 그의 지병이 건강 탓인지 홧병 탓인지 알 수 없지만 재판은 그의 건강에 발목이 잡혀 있는 모양새이다.
     
    헌법 27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 그 대상이 대장동 사업가건 정치적 반대자 건 그 원칙은 동일해야 한다. 역사적 판단이 아니라 실정법 상 정의라면 더욱 그렇다. 문제가 확인된 시점으로부터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그에 상응한 대가가 지불돼야 한다. 기우제식 수사에 기우재식 재판까지 이뤄진다면 사법 정의라 부르기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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