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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째 빈 회의실에서 벽만 봐"…학폭 못지 않은 '직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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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2주째 빈 회의실에서 벽만 봐"…학폭 못지 않은 '직폭'

    핵심요약

    최근 전북 지역 농협에서 간부의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직원이 세상을 등지며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주목됩니다.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르게 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인데, 괴롭힘 사례는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폭언, 폭행, 모욕 등으로, 업무상 우위를 이용해 근로자에게 고통을 주고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태입니다. 학교폭력 못지않게 심각한 '직장 폭력'을 방지하려면 사측의 법적 책임을 강화해 업무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퇴사 강요받다 컴퓨터도 뺏겨…홀로 빈 회의실서 9시간 근무
    업무상 직위의 우위 악용한 폭언 등 괴롭힘…심한 경우 자살까지
    사내 문화 탓도 있어 "사장 책임 강화, 피해자 보호 법 개정 필요"

    연합뉴스연합뉴스
    "회사에서는 밥도 아예 먹지 못해요. 그 사람들 얼굴을 계속 봐야 하는데 보고 (밥이) 넘어가지도 않고 소화도 안 되고 막막하니 물만 마시고 말죠."
     
    250여 명 규모의 중견기업에 다니는 A(43)씨는 2주째 혼자 빈 회의실로 출근 중이다. 컴퓨터가 없어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하릴없이 벽만 보고 있다. 이따금 다른 직원들이 문을 열고는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쳐다보고 간다고 한다. A씨는 "저를 해고하기 위해 없는 규정을 들먹이며 나가라고 했는데 그러지 않으니 강압적으로 업무배제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27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전북 지역 농협에서 간부의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직원이 세상을 등지는 등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르는 직장 내 괴롭힘 사례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학교폭력 못지않게 심각한 '직장 폭력'을 방지하려면 사측의 책임을 강화해 업무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씨는 지난해 11월 현 회사 정규직으로 이직해 4명 규모 팀에 발령받았다. 그는 팀 차원에서 인수인계가 부족한 점, 직원들의 업무 실수 등을 지적했더니 팀장으로부터 '직원들과의 불화'를 이유로 "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성실히 일하겠다는 의도와 상관없이 원래 있던 직원들의 눈 밖에 난 셈이다.
     
    팀장은 "퇴사하지 않으면 업무에서 배제할 건데 할 일 없이 앉아있는 것만큼 힘들고 네 인생 갉아먹는 게 없다"며 "그래도 하겠느냐"고 물어봤다. A씨가 그러겠다고 하자 팀장은 결국 A씨의 업무용 컴퓨터도 가져갔다. 팀장은 "내가 업무를 안 주는 이유는 'A씨가 같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A씨의 인사 조치는 팀장이 인사팀과 상의했다면서 구두로 정해졌다. 이후 A씨는 사흘 정도 병가를 쓰겠다고 했는데 팀장은 "무단결근"이라며 "출근하지 않고 결근이 쌓이면 해고 통보 수순을 밟는다"고 답했다. 현재 A씨는 계약서에 적시된 임금의 70%만 받아 고용노동부에 신고하고 팀장 등을 강요·협박죄로 고소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직장인은 비단 A씨만이 아니다. 직장인들은 상사 등이 '직위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연합뉴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단체에 이메일로 접수된 제보 중 '괴롭힘' 관련은 총 1241건이었다. 이는 근로 계약과 임금 관련 내용을 포함한 전체 제보(1913건)의 65%를 차지한다. 괴롭힘 유형은 폭행·폭언 44.3%, 모욕·명예훼손 31.7%, 따돌림·차별·보복 43.3%, 부당 지시 47.9%, 업무 외 강요 5.8% 등으로 나타났다.
     
    50인 미만 중소업체 이사였던 B씨는 대표로부터 언어폭력과 폭행을 당해 입사 1년도 되지 않아 퇴사했다. 퇴직금을 포기하고 일찍 퇴사 신청을 했지만, 행정 처리가 늦어지고 임금을 받지 못해 고통이 이어졌다. 그는 "쉰 살이 넘었는데 회사에서 3번 눈물 흘릴 정도로 심한 모욕을 당했다"고 토로했다.
     
    C씨는 직원 20명이 안 되는 소규모 IT업체에서 일하며 4개월 넘게 팀장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C씨가 의견을 말하면 "대들지 말라"고 하는 등 팀장은 C씨에게 수시로 윽박지르고 다른 팀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모욕하기 일쑤였다. C씨가 화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으나 팀장은 "화내고 싶으면 화내겠다"며 "언제 또 화낼지 모른다"는 식이었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D씨는 상사로부터 성희롱과 함께 일상적으로 외모 지적을 받았다. 안경도 쓰지 못하게 해 억지로 렌즈를 꼈다. 그가 은행 창구직으로 발령받았을 때 피부 문제로 화장을 하지 못한다고 하자 상사는 "핑계"라며 화장과 염색을 하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사용자는 관련해 조사를 하고 징계 등 조치를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사용자가 직접적인 가해자라면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물론 폭언 등이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형법상 모욕, 명예훼손에 해당할 정도라면 형사 고소도 가능하다.
     
    그러나 피해자들 사이에선 "사원 수가 적으면 입단속도 쉽고 회사가 갖은 수를 쓸 텐데 신고가 가능할지 의문"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A씨 역시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거의 99.9%가 아닐까 싶다"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입장에서는 해고당하는 위험 부담이 커 마음속으로 삭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려면 사내 문화를 개선해야 하기 때문에 사측의 책임부터 강화해야 한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직장갑질119 권남표 노무사는 "회사 안에서 일어나는 일 대부분은 사용자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직원이 직원을 괴롭히는 경우 사장은 조사 후 괴롭힘 여부를 판단해 가해자를 처벌하고 만다"며 "괴롭힘이 조직 문화 문제일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의 일탈로 사건을 마무리하지 않고 사장이 같이 책임을 지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신고했는데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고용노동부 지청에 다시 신고할 수 있는데 최대 과태료가 500만원"이라며 "회사는 500만원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사장이 주도한 사내 조사가 객관적이고 공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는데 회사가 조사 보고서도 주지 않아 어렵다"며 "신고했더니 더 억울해지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법이 좀 더 촘촘하게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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