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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왜 '남북관계 개선'을 얘기할까[한반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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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약


국방/외교

    시진핑은 왜 '남북관계 개선'을 얘기할까[한반도 리뷰]

    핵심요약

    카이로 회담의 장제스 '한국 독립' 주장…한반도서 서구열강 배제 속내
    시진핑 '건설적 역할'에 불편한 반응…북핵 '미국 책임론' 포석
    中 경계해야 하지만 무조건 배척은 곤란…균형감 갖춘 심모원려 필요

    연합뉴스연합뉴스
    11월 22일은 일제 식민지배하 한국의 해방과 독립을 국제사회가 처음 약속한 카이로 회담이 시작된지 79년째를 맞는 날이다. 이집트 카이로에 모인 미‧영‧중 3국 정상은 며칠 뒤 "한국인들의 노예 상태에 유의해 적절한 시기에 한국을 해방, 독립시킬 것을 결의했다"고 선언했다.
     
    한국의 독립은 단 10개 문장으로 이뤄진 카이로 선언에서 유독 명시적으로 언급됐다. 한국을 빼면 만주와 대만 등이 중국에 다시 귀속될 것이라고 했을 뿐이다. 일본의 다른 식민지에 대해선 몰수되거나 추출될 것이라고만 기술했다.
     
    한국이 나름 특별대우를 받은 것은 중국(중화민국) 장제스의 공이 컸고 그 이면에는 우리 임시정부의 로비가 있었다. 하지만 장제스가 한국에 대한 우호적 감정 하나만으로 움직였다고 볼 수는 없다.
     
    그는 한국 독립 조항을 놓고 영국의 처칠과 갈등했다. 처칠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할 경우 전후 영국의 방대한 식민지 체제가 흔들릴 것을 걱정했다. 반면 장제스는 중국과 맞닿은 한반도가 다시 열강의 영향권에 편입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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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따라 '가능한 빠른 시일 내'(at the earliest possible moment) 독립이라는 초안은 영국의 반대로 '적당한 때'(at the proper moment)를 거쳐 '적절한 시기'(in due course)로 수정되고 후퇴했다.
     
    중국을 버마(미얀마) 전쟁에 끌어들이는 한편 전후 대영제국 체제를 깨려는 미국, 졸지에 주요 승전국(Great Allies) 예비 모임에 초대된 중국, 인도양의 이권 탓에 왔지만 별 소득은 없는 영국 간 강대국 정치의 산물이다.
     
    장제스로선 동남아와 태평양의 다른 일본 식민지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바로 이웃이자 속국 취급해온 한반도에서만큼은 통제력을 되찾길 원했음이 분명하다.
     
    그로서는 한국의 즉각 해방과 독립을 외치는 것이 명분상으로나 실리적으로도 옳았다. 하지만 이는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을 '강제 독립'시킨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국민 입장에선 '청 → 일본'으로의 종주권 변화 이상의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카이로 회담의 장제스 '한국 독립' 주장…한반도서 서구열강 배제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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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5일 인도네시아 G20 정상회의 계기 한중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남북관계 개선'이란 또 다른 당위론을 강조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시 주석은 "한중 양국이 한반도 문제에 공동이익을 가진다고 하고, 평화를 수호해야 하며, 한국이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인접국으로서 더욱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고 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중국이 건설적 역할에 대한 화답 없이 현 시점에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남북관계 개선을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멀리 카이로 회담까지 되짚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평화와 안정,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란 '북핵 3원칙'을 강조해왔다. 이를 위해 쌍중단(북한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 대규모 군사훈련 중단)과 쌍궤병행(비핵화와 평화체제 동시병행) 해법도 제시했다.
     
    이는 누구도 이의를 달기 어려운 당위이다. 중국은 이런 명분을 이용해 미국의 압박을 버텨왔고 때론 공세적으로 나섰다. 서슬 퍼런 트럼프 행정부 초기에는 대북제재에 협조하는 듯 했지만 미중경쟁을 피할 수 없다고 본 뒤에는 태도가 달라졌다.
     
    신종호 한양대 교수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발언을 보면 과거에는 북미 간 대화를 이야기 하다가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에는 미국 책임론을 일관되게 거론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 제공중국 외교부 제공
    시 주석이 중국의 건설적 역할보다 남북관계 개선에 방점을 찍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반도 상황이 악화된 책임이 마치 중국의 비협조 때문인 것처럼 하는 것을 에둘러 반박한 것이다.
     
    시 주석이 '담대한 구상'에 대해 북한의 의향이 관건이라면서 만약 북한이 호응하면 적극 지지‧협력하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을 협상장에 불러낼 1차적 책임은 어디까지나 한국과 미국에 있다면서 중국 역할론에 선을 그은 것이다. 이 또한 당위적 명분을 핑계로 점잖게 손사래를 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중국은 북한의 선제적 조치(모라토리엄)에 미국이 상응조치를 하지 않는 것이 상황 악화의 원인으로 보고 있고, 그래서 올해 들어 대북제재에 비판적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제재 문제에서 더 적극적인 고려를 해야 하고, 지금은 중국이 (특별히)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진핑 '건설적 역할'에 불편한 반응…북핵 '미국 책임론' 포석

     
    예나 지금이나 국제관계에선 명분과 실제가 항상 일치하진 않는다. 79년 전 카이로에서 중국은 한국의 즉각 독립을 주장했지만 진정 원치는 않았을 것이다. 현재의 중국은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하지만 정확한 속내는 알 수 없다.
     
    사실 중국을 경계하고 신중하게 대해야 한다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중국의 말이라고 해서 반드시 달리 해석해야만 할 이유가 있을까? 강대국의 현란한 외교 화법에서 실질을 정확히 가려내는 것도 능력이다.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국제사회가 보장한 것은 중국의 속내와 관계없이 너무나 고마운 일이었다. 만약 역사의 시나리오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됐다면 우리 선조들은 중국과 협조하되 철저히 자주성을 지켰을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한 시 주석의 발언도 삐딱한 시선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이게 비록 북핵 문제에서 미국 책임론을 제기하기 위한 노림수가 있을지언정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실용적 관점에서 국익과 거리가 멀다.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최근 토론회에서 중국의 부상에 따른 국제 다극체제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답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국제정치학의 거두로 불리는 그조차 "소련의 갑작스런 붕괴도 아무도 예상 못했고 다들 깜짝 놀랐다"면서 다만 "미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앞으로 수십년간 현 체제에서 살 게 될 것으로 본다"는 겸손한 답변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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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정부의 대외전략에 불안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쉽사리 승부가 날 것 같지 않은 미중 전략경쟁에서 너무 일찍, 너무 용감하게 베팅한다는 것이다.
     
    사실 현 정부 대외전략에서 사라진 말 가운데 하나는 '균형'이다. 자유, 번영 같은 가치가 중시되면서 실용이라는 또 다른 국익과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정부는 과연 세계사적 전환기를 헤쳐 나갈 심모원려가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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