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국내 혼인 건수와 출산율이 급감하는 가운데
대부분의 미혼 남녀는 직장에서 돈을 버는 일과 집안일에 딱히 성별 구분을 두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성평등 가치관을 내면화한 정도에 따라,
직장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기혼여성에게 꼭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과도기적' 특성도 일부 관찰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은 13일
'결혼과 출산 행동의 주요특징과 정책적 함의: 2021년도 가족과 출산조사 결과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제28회 인구포럼을 개최했다. 보사연은 우리나라 인구동향을 알 수 있는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를 3년 주기로 실시해 왔다. 한때 인구증가 억제를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됐던 이 조사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정부의 주요 의제가 된 저출생 현상에 대한 정책적 대응을 위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
보사연은 결혼·출산이 '개인의 선택'으로 굳어진 시대상을 반영해 작년부터 조사명칭을 '가족과 출산조사'로 변경했다. 그간 결혼과 출산을 당연한 주기로 설정했던 전제도 수정했다. 대상 표본도 가임기 기혼여성 중심에서 벗어나 미혼자·남성을 하나로 통합했다.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동거 중인 애인과 파트너 또한 조사대상에 포함시켰다.
보사연은
"결혼과 출산이 더 이상 모든 인구의 보편적 생애사건이 아님을 중요하게 고려했다"며 "인구 행동의 최종결과뿐 아니라 일부 의사결정 과정과 그 과정에서 남녀의 의견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파악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특히 보사연은 결혼·출산 등을 결정짓는 객관적 자원뿐 아니라 '가치관'에 주목했다. 청년층의 주요한 화두로 떠오른 성평등이 결혼과 가족에 대한 태도에 실제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자 함이다.
지난해 해당 조사에 응답한 19~49세 미혼남녀 6049명에 대한 잠재계층분석(LCA·Latent Class Analysis)을 실시한 보사연 임지영 전문연구원은 "앞으로 선택의 기로 앞에 서게 될 이들을 대상으로 성역할 가치관의 잠재유형이 존재하는지 확인해보고 그에 따라 결혼·출산에 대한 인식이 다르게 나타나는지 알아보고자 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성역할 가치관을 가늠하는 사전 문항에는
①돈 버는 일과 집안일은 남녀 구분 없이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 ②남편이 할 일은 돈을 버는 것이고 아내가 할 일은 가정과 가족을 돌보는 일이다 ③가정생활을 위해 남성과 여성이 해야 할 일을 구분해야 하는 것이 좋다 ④남성이라면 혼자 힘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⑤결혼을 하더라도 직장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여성의 삶에 좋다 등이 들어갔다.
1번 문항에 대해서는 거의 이견이 없었다. 대상자 중 남성 96.5%, 여성 98.5%가 모두 '동의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전통사회에서의 고정적 성역할을 대변하는 2~3번 문항에서 남성은 20%대, 여성은 10%대의 저조한 동의율을 나타냈다. 다만, '가장'으로서 남성의 의무를 강조한 4번 문항은 남성(47.1%)과 여성(27.8%)의 시각에 다소 차이가 있었다.
결혼 이후 경력 단절 없이 여성도 직장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그의 삶에 더 좋다는 명제에는 남성(85.3%)과 여성(93.8%) 모두 높은 공감대를 나타냈다.
임 연구원은 분석결과를 토대로
△성평등 가치관 집단(71.5%) △전통적 가치관 집단(19.6%) △과도기적 가치관 집단(8.9%) 등 대상자들을 세 집단으로 분류했다. 가장 비중이 큰 성평등 가치관 집단은 2~4번 항목에 모두 비동의, 1·5번은 동의할 확률이 높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제공 반면 기존 규범에 익숙한 전통적 가치관 집단은 2~4번에 모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이 집단도 가사는 여성 전담이라거나, 여자는 결혼 후 일을 접어야 한다는 등의 인식에는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1·5번 동의).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제공 가장 복잡한 집단은 '과도기적 가치관 집단'이다. 이들은 성평등 가치관 집단과 대체로 유사한 응답을 보였지만, 기혼여성이 직장을 계속 다니는 것이 당사자의 삶에 더 좋다는 항목에는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제공 임 연구원은 해당 집단이 이 부분에만 특별히 보수적 인식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성평등 사회로 나아가는 우리나라의 '과도기'적 특성이 투영된 결과로 해석했다. 여성의 커리어를 상대적으로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워킹맘'으로서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 걱정이 많은 것에 가깝다고도 분석했다.
이같은 딜레마는 출산에 대한 인식과도 연결됐다.
성평등 가치관 집단에 속한 여성은 출산 시 고려사항과 관련해 내 직업도, 배우자의 직업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도기적 집단은 전통적 집단과 마찬가지로 남편의 직업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 집단에 속한 남성들 역시 부인보다는 자신의 직업에 더 무게를 두는 것으로 파악됐다.
임 연구원은 "결혼과 출산이 선택의 문제가 됐지만, 그 선택을 둘러싼 여러 요소의 무게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며 "결혼·출산이 큰맘을 먹고 내려야 할 '위태로운 결단'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누군가는 (결혼 등을) 하고 싶지만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주면서도 상황으로 인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지 않도록 환경을 조성해줘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