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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판결문이 바라본 '檢총장 후보 기밀 유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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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법정B컷]판결문이 바라본 '檢총장 후보 기밀 유출' 논란

    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정부의 초대 검찰총장 후보자가 된 이원석 후보자. 류영주 기자윤석열 대통령 정부의 초대 검찰총장 후보자가 된 이원석 후보자. 류영주 기자
    105일 만의 공백을 깨고 검찰총장 후보자가 된 이원석 후보자(現 대검 차장검사). 그가 2016년 수사선상에 오른 법관에 대한 정보를 법원행정처에 제공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먼저 사실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후보자는 지난 2016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재직 당시 '정운호 게이트' 수사를 담당하며 김현보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과 40회 이상 통화를 통해 수사 정보를 전달했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의 1·2심 판결문에 적시돼 있습니다. 판결문에서 이 후보자는 '정운호 게이트'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영장 청구 예정 사실과 법관 비위와 관련된 수사 정보를 전달했고 김 전 감사관은 이렇게 알게 된 정보를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보고했습니다. 야당은 이런 행위가 '수사기밀' 유출이며 이에 따라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후보자는 "수사는 수사대로 엄정하게 하되 해당 판사가 실제 재판 업무를 계속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사 조치가 필요하고 재판 직무 배제와 징계 및 감찰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기관 대 기관 관계로 징계와 인사조치, 감찰이 필요한 부분만 한정해 통보했을 뿐"이라며 불법성을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일단 법조계에서는 "기밀도, 누설도 아니다"라는 의견이 상당히 우세한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서 이 후보자가 수사 상황을 법원행정처에 알린 행위가 '기밀 유출'이 아니라면, 사법농단 사태 당시 이 후보자와 유사한 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된 법관들은 무엇이냐는 반문이 나옵니다. 당시 사법농단 의혹 수사를 지휘했던 당사자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입니다. 한 장관은 국회 법사위에서 이 후보자의 행위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공세가 이어지자 "징계와 감찰 업무 관련 수사 진행 상황 문의에 답변한 것에 불과하다"며 맞섰습니다. 야당의 공세 표적이 사실상 한 장관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누구의 주장이 맞는 것일까요? 한 장관은 정말 똑같은 혐의를 놓고 판사는 법정에 세우고 검사는 넘어가는 '이중 잣대'를 들이댄 것일까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이번주 '법정B컷'은 논란의 단초를 제공한 사법농단 판사들의 판결문을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이원석은 사법행정에 협조한 것일뿐?

    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가 2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가 2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원석 차장의 행위가 명시된 판결문은 신광렬·성창호·조의연 판사의 공무상 비밀누설죄 사건입니다. 2016년 신광렬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와 조의연·성창호 당시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정운호 게이트' 관련 수사기록 등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전달한 행위를 공무상 비밀누설이라 보고 기소한 사건입니다. 판사들의 정보 누설 혐의를 수사하던 이 후보자는 사법연수원 동기인 당시 김현보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에게 수사 정보를 공유합니다.
    2020. 2. 13 서울중앙지법 제23형사부 판결
    김현보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은 2016. 5. 2.경부터 2016. 9. 19.경까지 이원석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과 40회 이상 통화하여 검찰의 정운호 게이트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영장 청구 예정사실을 비롯하여 법관 비위와 관련한 다수의 수사정보를 제공받아…
    김 전 감사관은 이렇게 알게 된 수사정보를 35차례에 걸쳐 메모나 보고서 형식으로 정리해뒀다고 합니다. 그 메모에는 자기앞 수표 추적 결과나 여행경비 부담, 계좌추적영장 신청 예정 등이 상세히 기재돼 있습니다.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법관들에 대해 대법원 차원에서 윤리감사가 진행중이었던 때였던 만큼 법원행정처는 수사를 진행 중인 검찰을 통해 진상을 파악할 필요는 있었을 겁니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이) 비위법관의 징계나 인사조치를 위한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에 협조하여 수사상황을 상세히 알려주기도 한 정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판결문은 이 후보자의 행위를 '사법행정에 협조'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2020. 2. 13 서울중앙지법 제23형사부 판결
    신광렬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가 영장 판사들로부터 이 사건 수사정보를 보고받아 이를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것은, 재판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사법행정상의 조치가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이 높은 상황에서 관련 규정에 근거하여 법관의 비위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대책을 마련할 의무가 있는 상급 사법행정기관인 법원행정처만을 상대로 이루어진 것… (중략) 검찰이 비위법관의 징계나 인사조치를 위한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에 협조하여 수사상황을 상세히 알려주기도 한 정황상 이 사건 수사정보가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에 대하여 비밀로써 유지하고 보호할 가치가 크다고 보기 어렵다.
    항소심 재판부도 이 후보자와 김 전 감사관이 40여차례 통화한 사실을 언급하며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1부장(이 후보자)와 40회 이상 통화하며 그로부터 수사 진행 상황을 지속적으로 전달받았고, 두 사람이 통화한 내용에는 이 사건 수사보고서의 중요 내용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고 적시했습니다. 사건을 수사 중이던 이 후보자가 수사보고서의 중요 내용을 법원에 전달한 것은 맞는데, 사법부는 왜 기밀도, 유출도 아니라고 했을까요?
    2021. 1. 29 서울고등법원 제8형사부 판결
    특수1부장 등 검찰 수사관계자도 비위 법관에 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감사관에게 전달하였고, 감사관도 비위 혐의 법관에 대한 대면조사 등을 통해 취득한 정보를 특수1부장에게 제공하는 등으로 서로 협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검찰 스스로도 비위 법관에 관한 정보가 법원행정처에 전달되는 것이 수사기능에 별다른 장애를 유발하지 않는다고 여겼다는 점을 보여준다.
    재판부는 이 후보자가 수사 대상자인 비위 법관이 아닌, 비위 법관을 감사하는 법원행정처와 정보를 주고받았다고 본 겁니다. 비위 법관을 수사하는 검찰과 그 법관을 징계하려는 법원행정처, 즉 상부상조 관계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니 이 후보자가 수사 정보를 유출한 것도 아니고 영장전담판사들도 법원행정처에 비밀을 누설한 게 아니라는 건데, 1·2심 재판부와 시각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공무상 비밀누설, 법은 있지만 성립요건 까다로워


    연합뉴스연합뉴스
    이 후보자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공무상 비밀누설로 재판에 넘겨졌던 또다른 법관의 케이스를 보겠습니다.

    이태종 전 서부지법원장은 2016년 8월 법원장 재직 당시 소속 집행관 사무소 직원들에 대한 서울서부지검의 수사가 개시되자,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으로부터 검찰 수사 상황을 파악해 보고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 뒤 기획법관이던 A판사 등과 공모해 영장 정보 등을 보고서 형태로 정리해 5차례 걸쳐 임 차장에게 보고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딱 보기에도 이 후보자의 경우와 매우 유사해 보입니다.
    2021. 12. 30 대법원 제1부 판결
    직무상 비밀을 취득할 지위 내지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전달한 것이므로, 공무상비밀누설죄의 처벌대상이 되는 공무상 비밀의 누설에 해당하지 않는다.
    공무상 비밀누설과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기획법관 A씨는 이에 불복해 같은해 헌법소원에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헌재의 판단도 다른 사법기관과 별다르지 않았습니다. 직무상 비밀 누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이 전 원장은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는데, 이유인즉슨 이 전 원장이 그의 사법행정사무를 보좌하는 기획법관에게 알려줘도 되는 정보를 전달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법원이 무죄라고 본 근거 역시 이 후보자의 주장과 흡사합니다. 이 후보자 역시 기관간의 협조 차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알려줘도 되는 정보를 전달했다는 취지입니다.

    대법원은 '공무상비밀누설죄'는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보를 누설해 국가 기능에 위험이 발생할 때 성립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어떤 정보가 이에 해당하는지는 재판부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겠죠.

    의문은 다시 당시 사법농단 판사들의 기소를 주도했던 한동훈 법무장관에게로 돌아갑니다. 이 후보자는 "재판 직무 배제와 징계 및 감찰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기관 대 기관 관계로 징계와 인사조치, 감찰이 필요한 부분만 한정해 통보했다"고 주장했고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대부분의 판사들 역시 이와 흡사한 주장을 합니다. 심지어 이 주장은 대부분 법원에 받아들여져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이 지점이 야당이 문제삼는 포인트입니다. 이원석 후보자에게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검사가 사법농단 의혹 판사들을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로 기소한 것이 정당하냐는 질문 말입니다. 논쟁 자체를 즐기는 듯한 한 장관이라 할지라도 명쾌하게 반박하기 힘든 상황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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