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A(60대)씨 등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경기 수원의 한 다세대주택. 정성욱 기자정부가 '수원 세 모녀' 사건과 유사한 비극을 막기 위해 향후 거주지 등 소재 파악이 어려운 위기가구는 실종·가출자에 준해 추적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경찰의 협조를 받아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공유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위기 감지에도 지원 놓친 정부…"경찰 도움 받아 소재 파악"
24일 보건복지부는 정부세종청사에서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련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했다. 수원 세 모녀 사망사건을 계기로 현행 체계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보완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였다.
간담회에는 경찰청과 사회보장정보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용회복위원회와 함께 복지전달체계 및 자살 예방 등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도 다수 참석했다.
정부는
수원 세 모녀가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다른 지자체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빚 독촉을 피해야 했던 상황 상 전입신고를 할 수 없었던 이들은 긴급생계지원이나 기초생활수급 등 복지급여를 신청하거나 관련 상담을 한 이력도 전무(全無)했다. 이 때문에 연락을 취할 수 있는 휴대전화 번호조차 시스템에 남아있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조규홍 1차관이 2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련 전문가 간담회'에 참석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복지부 제공 지난 22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는 모두 암과 희귀난치병 등을 앓았던 데다 40여만 원 남짓 되는 월세도 밀릴 때가 많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건강보험료 장기체납 등을 알리고자 등록주소지였던 화성시의 공무원이 집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헛걸음일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이들처럼 소재 불명인 취약가구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해당 가구의 연락처 등 개인정보 확보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전날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한 긴급 관계부처 회의에서는
주거지 미상인 취약계층 발굴·지원을 위해 경찰청 등의 도움을 받아 실종자나 가출자에 준해 위치를 파악하는 방안이 처음 언급됐다.
한 총리는 "이번에는 위기가구로 발굴되고도 실제 주거지가 파악이 안 돼 복지서비스가 전달되지 못한 안타까운 상황이 있었다"며 "(지원대상자들이) 복지서비스를 몰라서 받지 못하는 사례가 여전히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다만, 연락처와 거주지 등이
민감한 개인정보에 해당되는 만큼 현재 이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실종자의 위치 및 통신기록을 확인하는 경우도 현행법 상 18세 미만이나 지적장애인, 치매환자 등으로 엄격히 제한돼 있다.
보건복지부는 24일 '수원 세 모녀' 사건과 관련해 복지 사각지대 발굴에 대한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했다. 복지부 제공 복지부 전병왕 사회복지정책실장은 "오늘 전문가 간담회에도 경찰청에서 오셨는데 아동·치매노인·정신장애인 등은 실종된 경우 소재 파악이 다 법에 특정돼 있다고 한다.
위기가구도 끝까지 소재 파악이 필요한 경우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적용이) 가능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경찰에서 여러 가지 수사기법 등의 정보를 공유해서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은 협력 지원을 하기로 했다"고 부연했다.
위기정보 늘려 대상자 조기발견 초점…'복지멤버십' 가입도 독려
이와 함께 정부는 다음 달부터 빅데이터를 활용한
위기가구 발굴 시스템에서 입수하는 위기정보를 34종에서 39종으로 확대한다. △중증질환 산정특례 △요양급여 장기 미청구 △장기요양 등급 △맞춤형 급여 신청 △주민등록 세대원 등이 새로운 항목으로 추가됐다.
역시 내달 개통되는 차세대사회보장정보시스템과 더불어 전 국민으로 가입대상이 확대된 복지멤버십도 안내·홍보를 강화하기로 했다. 복지멤버십은 가족 구성원의 출산·사망, 소득·재산 변동 등이 발생할 경우 받을 수 있는 급여를 선제적으로 안내하는 서비스다. 주소지와 관계없이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 방문 신청하거나 온라인(복지로)으로 신청하면 된다.
정부는 특히 현금성 급여를 안내했음에도 신청내역이 없는
정보 취약계층 발굴에 초점을 맞춰 복지멤버십 사전가입을 독려하겠다는 방침이다. 65세 이상 독거노인, 중증장애인 가구 등 스스로 정보를 취득해 신청 혜택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사례들이다.

이처럼 시스템 상 위기정보가 중첩되고, 자발적으로 복지서비스를 요청하는 수요가 늘어난다면 복지 사각지대를 좁힐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세 모녀의 경우, 건강보험료를 16개월 체납한 사실은 인지됐지만, 다른 위기지표를 포착하지 못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지는 않았다.
정부는 단전·단수·공과금 체납 등 34종의 위기정보를 토대로 위기가구를 두 달마다 취합하고 있는데, 올 5~7월에는 544만 명이 대상자로 잡혔다. 이 중 12만 3천 명 정도가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지자체에 함께 전달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망 확대보다 민간 신고체계 다듬어야"…인력·예산 확충 주문
전문가들은 그러나
정부가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정보망 구축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 시스템에 축적돼 있는 정보들로 지원대상을 촘촘히 걸러내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갈수록 복잡해지는 위기지표를 모두 선제파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현진희 교수는 "수원 세 모녀도 발견은 했지만 실질적 도움으로까지 연결되는 데 허점이 있었던 거잖나. 위기가구를 발견했을 때 실제로 확인해서 서비스로 연결하는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담당 공무원이 해당 가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이라든지 확인되면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지역사회 내 다양한 기관들이 협력해 함께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적극적 행정이 받쳐주지 않으면 이번 대책도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석재은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진단이 잘못된 처방'이라고 정의했다. 석 교수는 "위기가구 발굴시스템을 강화하는 노력을 하긴 해야겠지만, (위기정보가) 34종이었을 때도 발굴 확률은 굉장히 낮았다. 지자체에서도 정부에서 전달받은 발굴가구 중 선별해서 찾아가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세 모녀 집 근처에 붙어있던 도시가스 점검 방문 안내문. 연합뉴스
위기가구로 발견된 이후 실제 지원을 받는 사례는 드물다는 점도 문제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실과 복지부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34개 위기정보에 의해 대상자로 선정된 인원은 52만 3900명에 달했다. 하지만 이 중 복지서비스를 실제로 받은 경우는 51.8%(27만 1102명)에 그쳤다. 석 교수는 "정보체계가 워낙 발달된 나라다 보니 그 부분을 활용하는 건 중요하지만, 과도한 기대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보다는 지역사회의 민간 안전망을 더 튼튼히 다듬는 것이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단적으로 전문가들은
세 모녀가 치료를 받던 의료기관의 의료사회복지사가 이들을 지자체로 연결해줄 수만 있었더라도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현 교수는 "의료비 관련 어려움을 겪으셨을 텐데 이분들을 담당한 의료진이나 병원 원무과 등이 이들을 의료사회복지사에 의뢰했더라면, 복지사가 지자체 공무원과 연결해주는 등 적극 개입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석 교수 또한 "이렇게 되면 지자체 공무원이 훨씬 확실한 '타깃'을 갖고 대상자를 찾아갈 수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석 교수는 "보통 위기가구는 징후가 다 노출되는 시점이 있다.
병원뿐 아니라 집세가 밀리거나 슈퍼 외상을 자주 한다거나 등 살아가는 한 아주 다각적으로 가능하다"며 "이웃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됐을 때 내 전화 한 통이면 바뀔 수 있다는 사회적 신뢰가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반인들의 자발적 신고를 활성화하는 게 당사자에게 보다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아울러 지자체의 복지 전담인력과 예산 확충도 주문했다. 석 교수는 기존 편성 예산에 더해 '10%' 정도의 예비비만 있어도 일선 공무원들이 위기가구와 관련해 좀 더 적극적인 행정과 재량권 행사에 나설 수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