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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반지하 퇴출', 실효성 있나…취약층은 '폭우보다 더 불안'



사건/사고

    갑자기 '반지하 퇴출', 실효성 있나…취약층은 '폭우보다 더 불안'

    턱 없이 부족한 공공임대주택, 바우처도 '부실'…속도전 우려

    역대급 폭우가 휩쓸고 간 뒤, 서울시는 대책으로 '지하·반지하' 주택 폐지를 꺼내 들었습니다. 안전에 취약한 주거 환경을 애초에 차단하겠다는 의도지만, 당장 생활을 위해 지하·반지하에 사는 시민들은 막상 '폭우보다 더 막막한 대책'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하·반지하에 거주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을 감안하지 않고 땜질식 처방에 불과한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서울시, 폭우에 '지하·반지하' 퇴출 대책
    "우린 어디로 가야 하나" 취약계층은 '불안'
    턱 없이 부족한 공공임대주택…바우처도 '부실'
    "속도전 안되고, 실효성 담보해야"

    '발달장애 가족 사망' 겨우 뜯어낸 방범창. 연합뉴스'발달장애 가족 사망' 겨우 뜯어낸 방범창. 연합뉴스
    역대급 폭우로 서울 곳곳이 물에 잠긴 가운데, 더 큰 피해는 지하·반지하 주택에 사는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갑자기 들이닥친 빗물로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인 일가족 3명과 또 다른 기초생활수급자 1명이 잇따라 숨지는 등 참사도 벌어졌다.

    서울시는 폭우 대책으로 '지하·반지하' 주택 폐지를 꺼내 들었다. 안전에 취약한 주거 환경을 애초에 차단하겠다는 의도지만, 당장 생활을 위해 지하·반지하에 사는 시민들은 막상 '폭우보다 더 막막한 대책'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지하·반지하에 거주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을 감안하지 않고 땜질식 처방에 불과한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지하·반지하 주택의 위험성에 대해선 공감하면서도 속도전으로 실행하기에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폭우에 갑자기 내놓은 '지하·반지하' 퇴출…거주자들은 '불안'

    11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반지하방에 거주하는 A(83·여)씨는 폭우로 엉망이 된 방을 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그는 "방 안에 가슴까지 물이 찼던 흔적이 가득하다"며 "나뭇가지와 흙도 껴 있다"라고 말했다. 골목에는 물에 젖어 부서진 채 버려진 장롱과 세간살이들이 한 가득 보였다.

    자식들을 다 독립 시키고 6년 전에 남편이 사망한 뒤 홀로 거주하기 위해 1600만 원의 전세로 들어 온 보금자리였다. A씨는 "나 혼자 살려고, 그냥 싸니까 들어왔다"며 "여기가 옆에 호수들 중에 가장 또 낮아서 물이 많이 들어온다. 그래서 제일 싸다"라고 말했다.

    A씨는 이번 폭우를 계기로 서울시에서 '지하·반지하' 폐지 대책을 내놓은 것에 대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며 "내 나이가 83살이다. 폐지가 되고 10~20년 뒤에 주택을 주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시에서 준다는 지원금도 "동사무소 물어보니까 구청에서 아직 내려온 게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상도동에서 또 다른 반지하방에 거주하는 50대 B씨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싸고 일하는 곳이 노량진이니까 왔다. 이사 온 지 한 달밖에 안됐다"며 "반지하 없앤다고 뉴스에서 봤는데, 전혀 와닿지도 않는다. 서울에서 살고 일해야 하니까 여기 반지하까지 와서 사는 건데"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지난 8일 서울 남부지역을 휩쓴 시간당 100㎜ 이상의 폭우는 지하·반지하 주택 거주자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지난 9일 새벽에 신림동 반지하에서 살던 발달장애인 등 일가족 3명은 방 안에 들이닥치는 빗물을 피하지 못하고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상도동 반지하집에 거주하던 50대 기초생활수급자 역시 집을 빠져나오지 못해 참변을 당했다.


    빗물에 대한 배수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박종민 기자빗물에 대한 배수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박종민 기자
    서울시는 폭우 대책의 일환으로 지하·반지하 주택 폐지를 꺼내 들었다. 앞서 벌어진 사고 역시 대책 마련의 계기가 됐다. 대책에는 △주거용 지하·반지하 전면 불허 정부 협의 △건축허가 때 지하층은 주거용으로 허가하지 않는 '건축허가 원칙' 각 자치구에 전달 △기존 지하·반지하 주택은 10~20년 유예기간을 두고 폐지, 창고로 용도 변경 등이 담겼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하·반지하 주택은 안전·주거환경 등 모든 측면에서 주거취약계층을 위협하는 후진적 주거유형으로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며 "이번만큼은 임시방편에 그치는 단기적 대안이 아니라 시민 안전을 지키고 주거 안정을 제공하기 위한 근본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장 '불가피'하게 지하·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주거지가 없어질 수 있다는 또 다른 '공포'가 발생하는 셈이다. "폭우보다 대책이 더 불안하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턱 없이 부족한 공공임대주택…바우처도 '부실'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
    서울시에는 지난해 기준 약 20만호의 주거용 지하·반지하가 있다. 전체 가구의 5% 수준으로 결코 적지 않다.

    관건은 이미 거주자가 있는 지하·반지하 주택을 어떻게 변경하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시는 지하·반지하 주택에 10~20년의 유예기간을 주겠다는 입장이다. 현 세입자가 나간 뒤 창고·근린생활시설·주차장 등으로 바꾸면 리모델링을 지원하는 인센티브를 주고, 집 전체가 정비사업을 추진한다면 용적률 혜택을 주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보상만 제대로 된다면 수긍할 수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반지하 주택 집주인 40대 이모씨는 "대비책만 해준다면야 하라는대로 한다"며 "현재 주택 수리를 해야할지, 임대를 놔야할지 고민이 된다. 지금 상황으로 임대를 놔도 금방 나갈 것 같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걱정이 되는 건 세입자다. 서울시는 우선 고시원, 쪽방, 지하·반지하 등에 사는 시민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주거 취약계층 주거상향 지원' 사업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물량이 문제다. 현재 서울 시내 공공임대주택은 약 24만호 수준이다. 지난해 서울에서 주거상향 사업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한 가구는 1669가구에 불과하며 이 중 반지하 가구는 247가구(14.8%)에 그친다. 반지하 가구를 집중적으로 공공임대주택의 입주시킬 경우 고시원, 쪽방 거주자 등 다른 취약계층과의 형평성 논란도 이어질 수 있다.

    이호병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일단 공공임대주택 물량 자체가 턱 없이 부족하다"며 "늘리려면 상당 기간의 필요한데, 정부의 의지가 현재 얼마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과연 신중한 대책인지 의문"이라며 "폭우에 대비해 일단 빠르게 대책을 내놓은 게 아닌가 싶다. 실효성 담보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가구 수에 따라 월 8만~10만 5천원을 지원하는 주거바우처도 지원 대책이라고 내놨지만 지원 규모가 턱 없이 적은 게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이에 시는 최장 1년간 월 12만 원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반지하방에 거주하는 50대 송모씨는 "여러 위험 요소로 지하를 없애는 게 맞는 것 같기는 한데, 당장 여기 사시는 분들이 다 기초수급 받고 생활하시는 분들"이라며 "그분들을 아파트를 줄 지, 지원이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밝혔다.




    이밖에 반지하를 선택하는 이유는 교통 등 입지 조건, 이사에 따른 일시적 거주 등으로 다양해 이와 같은 다양한 거주 여건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결국 공허한 대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시민단체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주거권네트워크는 논평을 통해 "지하·반지하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부담가능한 수준의 대체주택 공급과 주거비 보조 등이 전제가 되지 않는다면 서울시의 대책은 공허한 외침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지하, 반지하방의 취약한 안전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는 없애는 게 옳은 방향일 수 있다"며 "다만 빠르게 밀어붙이기에는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고, 당장 거주하는 시민들에게는 불안감을 줄 수 있다. 시의 의지에 따라 지원비 향상 등 다른 지원책 등이 면밀히 병행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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