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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역사에도 과연 '영웅'으로 기록될까?



미국/중남미

    젤렌스키, 역사에도 과연 '영웅'으로 기록될까?

    핵심요약

    1월 지지율 23% → 전쟁후 90%
    열강틈새 균형외교 대신 적대외교
    세계 군사대국에 도전장…현실 망각
    전쟁 임박하자 러시아TV 폐쇄 도발
    D-5에도 전쟁부정, 전시동원 지연
    전쟁나자 그제서야 "중립국 논의"

    27일 워싱턴포스트 메인화면. 홈페이지 캡처27일 워싱턴포스트 메인화면. 홈페이지 캡처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볼로드미르 젤렌스키가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7일(현지시간) '전쟁으로 비틀거린 도시에서 영웅 태어나다'는 제목의 기사(사진)를 게재했다.
     
    전쟁 국면에서 그가 보여준 영웅적인 행동들이 우크라이나 안팎에서 찬사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다.
     
    미국이 그의 국외 도피를 제안했을 때 "내게 필요한 것은 탑승이 아니고 탄약이다"며 거절했던 일화, 그의 종적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 무렵 대통령궁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찍어 공개한 셀카 소통 등으로 우크라이나인들이 그를 '재평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에 대한 우크라이나 국민 지지율도 올해 1월 23%에서 91%로 순식간에 돌변했다. 그에 대한 신뢰가 우크라이나 전쟁 극복의 자양분이 되길 바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연합뉴스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연합뉴스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금 보이는 영웅의 모습대로 역사에도 기록될 수 있을까?
     
    그가 대통령에 도전하고, 당선되고, 취임하고, 대통령직을 수행해 온 과정을 보면 전쟁은 과연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되묻게 된다.
     
    사실 우크라이나는 우리나라와 여로 모로 비슷한 구석이 많은 나라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열강 사이에 박혀있는 모습도 그렇고, 그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쉴 새 없이 열강의 이권다툼이 반복된 역사도 그렇고, 근세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겪은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 나라와 달리 악착같이 구축한 경제력과 세계 6위의 군사력으로 중국과 미국이라는 세계 1,2위의 열강 틈에서 이제는 나름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그 정도의 국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두 강대국을 모두 적으로 돌리지 않는 절묘한 균형외교(어떤 사람들은 줄타기외교라고 자학하지만)로 생존해왔고 또 발전해왔다.
     
    반면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낀 우크라이나는 그러질 못했다. 1990년대 막 독립해서는 러시아의 우산아래 놓여있었다. 그러다 2004년 오렌지 혁명, 2013년 '유로마이단' 이후에는 유럽(미국)에 줄을 섰다. 러시아와는 완전한 결별에 나섰다.
     
    키예프의 '모스크바' 거리는 나치에 협력한 우크라이나 반란군 지도자 '스페판 반데라' 이름으로 바뀌었고, 러시아 혁명가 '레닌'의 이름을 딴 거리엔 '존 레논' 이름이 대신 나붙었다.
     
    러시아어 퇴출 작업도 진행됐다. 
     
    이른바 '언어 3법'을 통해 방송 프로그램, 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금지시키고, 공무원들의 경우 러시아어를 사용하면 처벌받도록 강력히 규제했다.
     
    소련연방시절 이주정책 등으로 국민의 17%가 러시아인들이고, 양국가간에 혈연적 유대가 깊어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쓰고 있는 국민들이 많은 현실을 부정한 급진적인 정책이었다. 
     

    2019년 5월 집권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국가의 운명을 걸고 세계 군사력 2위의 러시아를 상대로 본격적인 도박에 나선다.
     
    그는 후보 시절부터 러시아의 역린이랄 수 있는 EU 및 나토(NATO)가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사실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독일과 프랑스 등 EU 중심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꺼려왔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완충지대로 남아있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2024년이라는 구체적인 목표연도까지 정하고 대국민 마케팅전(나토 가입 액션플랜 2024)을 펼쳤다. 동시에 러시아의 자매국가로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연합뉴스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연합뉴스특히 그는 푸틴 대통령을 공개리에 '적'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2019년 8월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유일한 공통점은 국경이라고도 했다. 러시아를 배격한 것도 모자라 경시하기까지 한 것이다. 
     
    2014년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돈바스 반군을 지원한데 대한 응징 차원이었겠지만 그럴수록 우크라이나의 전쟁 위협은 커져갔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의 참화를 막고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는 길 가운데 하나는 핀란드 같은 중립국화라는 충정어린 충고도 묻혔다.
     
    우크라이나에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지 정확히 2년이 지난 작년 4월부터였다. 
     
    휴전중이던 돈바스 전선의 평온이 깨지고 러시아군의 집결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에 대한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은 낮게 보는 비현실적인 태도를 취했다. 
     
    서방국가들의 전쟁관측이 높아지던 2월 2일 그는 친러시아 TV방송국을 그것도 3개씩이나 폐쇄시켰다.
     
    폐쇄 방침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하며 "정보는 탱크나 미사일만큼 강력한 무기"라고 호기롭게 썼다.
     
    키예프 주재 미국 대사관이 TV방송 폐쇄를 환영하는 메시지를 트위터에 올린 것은 그의 자신감을 더욱 고취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친러 매체에 대한 제재 이후 러시아의 위협은 최고조로 치달았다. 
     
    러시아 침공 위험 경고를 경시하는 사람은 젤렌스키 뿐이었다. 국민들을 안심시키려는 의도였다고는 하나 지도자의 한가로운 판단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전쟁 준비는 그만큼 지연됐다.

    이 같은 사실은 시간이 지날 수록 진가를 발휘중인 영토방위군(의용군) 조직이 늦어진데서도 밝혀진 바 있다.

    우크라 수도 북부 이동하는 대규모 러시아 지상군 병력. 연합뉴스우크라 수도 북부 이동하는 대규모 러시아 지상군 병력. 연합뉴스푸틴이 전쟁개시를 선언하기 불과 닷새전인 지난 25일 젤렌스키는 더욱 도발적으로 나왔다.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그는 전쟁에 반대한다면서도 러시아를 전쟁이 터진 뒤에 제재할 것이 아니라 전쟁이 나기 전에 제재를 가하라고 목청을 높인 것이다. 
     
    제재만이 전쟁을 멈출 수 있다는 논리였지만 푸틴이 방아쇠를 당기게 한 발언이었을 가능성이 오히려 커보인다.
     
    그리고 전쟁이 터지자 젤렌스키는 러시아와 협상에 임하며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 논의를 할 수 있다고 그제 서야 말했다. 
     
    이번 우크라이나전쟁을 일으킨 주체도, 주범도 모두 푸틴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우크라이나가 지도자를 잘 만났다면 민간인 사망자 102명, 피란민 66만명(1일기준)의 희생을 내고 있는 전쟁의 악몽은 비켜갔을 지도 모른다.
     
    홍완석 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가 세종정책브리프 2월호에 밝힌 우크라이나 사태의 지적은 깊이 새겨들을 만하다.
     
    "미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충돌하고 민감하게 교차하는 지정학적 공간인 우크라이나에서 외교 노선의 양자택일은 결국 스스로의 대외정치적 입지를 좁히고, 국익을 침식시켰으며, 안보위기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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