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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바뀌었지만…"휴게실 개선 말하기 어려워"



경인

    법은 바뀌었지만…"휴게실 개선 말하기 어려워"

    [갈길 먼 휴게공간 정상화]①
    화장실 앞 비좁고 추운 '자투리 휴게실'
    고된 노동에 몸은 녹초…쉬면서도 '한숨'
    파견 비정규직, 회사 눈치에 참을 수밖에
    의무화에도 경제부담으로 사업주는 미온적
    "법개정 현실 적용 미비, 실태파악도 난항"

    경기도 수원의 한 복합상가 내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화장실 바로 앞 자투리 공간에 마련돼 있다. 박창주 기자경기도 수원의 한 복합상가 내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화장실 바로 앞 자투리 공간에 마련돼 있다. 박창주 기자지난 7월 노동자 휴게실 설치가 의무화됐다. 다만 본격 시행은 내년 하반기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창고나 계단 밑 같은 비좁고 열악한 곳에 머물러 있다. 법 개정에도 좀처럼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공공보다는 민간이, 대규모보다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더 더디다. CBS노컷뉴스는 이 같은 실태를 드러내 노동자 휴게실 정상화를 다시금 촉구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글 싣는 순서
    ①법은 바뀌었지만…"휴게실 개선 말하기 어려워"
    (계속)

    "잠깐 앉을 데라도 있는 게 어디예요. 괜히 불평했다가 잘리기라도 하면 어떡합니까…"
     
    경기도 수원시의 한 상가건물 청소노동자 A(62‧여)씨의 휴게실은 화장실 옆이다. A씨는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밥을 먹기도 하고 앉아 쉬기도 한다. 무엇보다 화장실 옆이다 보니 볼일을 보러 오가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민망하기 일쑤다.
     
    A씨는 "공간이 비좁아 밥을 먹다가도 사람들이 화장실을 가러 들어오면 일어나 비켜줘야 한다"고 했다.
     
    제대로 된 공간이 아닌 탓에 냉난방 시설은 꿈도 못 꾼다. 영하 5도 안팎의 추위가 닥친 지난 13일에도 A씨는 담요 두 장으로 추위를 달래야 했다.
     
    그렇다고 파견업체에 휴게실을 좀 옮겨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A씨는 "건물에 별도 공간이 없어 겨우 임시로 만든 휴게실이라 딱히 방법이 없는 것 같다"며 "괜히 불평했다가 계약을 안 해줘 잘릴까봐 겁나 말도 못 꺼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불평해봐야…" 10명 다닥다닥, 쉬기 힘든 '쉼터'


    아파트 지하주차장 한편에 마련된 서너평 남짓한 휴게실에서 청소노동자 10명이 다닥다닥 붙어 다리를 뻗고 쉬고 있었다. 박창주 기자아파트 지하주차장 한편에 마련된 서너평 남짓한 휴게실에서 청소노동자 10명이 다닥다닥 붙어 다리를 뻗고 쉬고 있었다. 박창주 기자수원의 한 대단지 아파트 청소노동자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2개 단지, 1100세대를 청소하는 인원은 10명. 1인당 50~60층을 맡아 하루 여섯 시간을 일한다.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이 나면 이들은 지하주차장의 한 작은 창고에 모여든다. 천장엔 배수관과 전선이 얽혀있고, 외부와의 연결구멍은 환풍기 하나가 전부다. 이마저도 먼지가 덕지덕지 붙어 제 기능을 못한 지 오래다.
     
    여럿이 밥을 먹고 쉬기엔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다닥다닥 붙어 나란히 다리를 뻗어야 겨우 앉을 수 있을 정도다.
     
    쉬는 시간이 점심 때로 한정돼 있어 인원을 나눠 쉴 수 없는 데다, 소속이 다른 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 휴게실을 더 늘리거나 바꿔달라고 말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이곳의 청소노동자 B(57‧여)씨는 "사람은 많은데 쉴 곳은 달랑 한 곳이라 방역은커녕 옷 갈아입을 공간도 부족하다"며 "그렇다고 말해봤자 나아질 것도 없을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아파트 청소노동자 휴게실 천장 부위에는 오폐수가 흐르는 배수관과 전기선 등이 어지럽게 얽혀 있다. 박창주 기자아파트 청소노동자 휴게실 천장 부위에는 오폐수가 흐르는 배수관과 전기선 등이 어지럽게 얽혀 있다. 박창주 기자 

    '휴게실 의무화'에도…제도에 뒤처진 현실

     
    16일 고용노동부와 각 산업현장에 따르면 올해 7월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된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열악한 휴게환경에 놓여 있다.
     
    청소, 건설, 급식조리 사업장 등에서는 대부분 노동자들이 하청업체에서 파견된 비정규직이다 보니, 관리 주체가 불명확하고 종사자들은 해고 등을 우려해 회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사업주들은 경제적 부담과 충분한 공간 확보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제대로 된 휴게시설을 조성하는 데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때문에 휴게시설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과 운영 관리에 한계가 따른다는 지적이다.
     
    안정된 휴식 제공으로 노동인권과 업무효율을 높이려 관련 법을 정비했지만, 내년 8월 본격 시행에 앞서 비좁고 비위생적인 휴게 환경을 선제적으로 개선하기는 힘든 구조다.
     
    B씨가 근무하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인데 지금 형편에서는 최대한의 시설을 갖춘 것"이라며 "이보다 더 개선할 공간도 여력도 없다"고 말했다.
        

    낙후된 휴게환경 '불만'↑, "실태 파악조차 어려워"

     
    이 같은 현실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지난달 발표된 '2021 보건의료노조 휴게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대상 400여 명 중 절반가량(48.1%)은 사업장에 공식적인 휴게실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게시설에 '매우 불만'이라는 청소노동자들은 65%에 달했다.
     
    휴게실이 있더라도 채광과 통풍이 되지 않는 창고(23.2%)와 계단 밑(22.2%) 등 임시 공간인 경우가 많았고, 10곳 가운데 7곳은 세면과 샤워 시설 등을 갖추지 못했다. 환기장치도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5곳 중 3곳은 이산화탄소, 미세먼지 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했다.
     
    민주노총 경기본부 한창수 노동안전부장은 "사회적 이슈화로 제도 개선은 이뤄졌지만 실제 현장에서의 인식이 따라주지 못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업종별로 다양하게 흩어져 있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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