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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들기]4년 묵은 '롤린'으로 쓴 브레이브걸스 역전극



문화 일반

    [파고들기]4년 묵은 '롤린'으로 쓴 브레이브걸스 역전극

    군부대 행사에서 특히 더 인기 끈 '숨은 명곡'
    무대+댓글 모음 영상과 댓글 놀이로 화제된 후 각종 음원 차트 1위 석권
    '롤린' 역주행, 오랫동안 빛 보지 못했던 그룹 자체의 생명력까지 좌우
    코로나19로 대면 행사 불가한 상황…열광적 응원 장면 더 주목받아
    "음악뿐 아니라 문화산업 전반에 '서사'가 미치는 영향력 커진 듯"
    "새로운 기회 열어준 셈…좋은 곡과 무대 재조명하는 문화 생겼으면"
    "극적 사례이지만 허약한 걸그룹 시장 반영하기도"

    4년 전 발표한 곡 '롤린'으로 음원 차트 역주행에 성공하며 화제몰이 중인 걸그룹 브레이브걸스. 엠넷 제공

     

    요즘 어딜 가도 나온다는 노래 '롤린'(Rollin')은 2017년 3월 7일 발매된 브레이브걸스의 네 번째 미니앨범 타이틀곡이다. 용감한 형제 사단이 만든 경쾌한 업템포 곡으로, 발매 당시에도 '노래 좋다'는 소소한 반응이 있었으나 대세는 아니었으며, 곡이나 그룹을 대중에게 각인시키지는 못했다. 신나고 청량한 노래와는 딴판인 뱀파이어 콘셉트나 선정적인 뮤직비디오가 아쉽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듬해 여름 '뉴 버전'으로 새로 '롤린'을 내놨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롤린'이 '역주행'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건 지난달 말이었다. 2월 24일 '댓글 모음 영상'을 주요 콘텐츠로 하는 유튜버 비디터 계정에 올라온 [브레이브걸스_롤린_댓글모음] 영상이 말 그대로 '터졌다'. 재치 있는 댓글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은 '롤린'을 열창하며 춤동작까지 따라 하는 군인들 모습이었다. 브레이브걸스가 군부대 행사를 자주 해 군인들에게 특히 사랑받았던 그룹이기에, 군인 시절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놓는 댓글이 잇따랐다.

    '롤린' 영상의 관전 포인트는 여럿이다. △금세 흥얼거릴 수 있는 중독성 강한 후렴이 있는 노래 △대면 행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열기와 함성, 환호 △이를 듣고 더 힘내서 무대를 즐기는 가수의 모습 △기발한 비유와 표현력에 무릎을 치게 되는 댓글 등이 조화를 이뤘다. 노래 자체가 좋아서 '역주행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이 담긴 반응도 많았다.

    반응은 빠르게 왔다. 영상 조회수가 높아질수록 '롤린'의 음원 차트 순위도 올라갔다. 벅스, 지니, 플로에서 차례로 1위를 차지하더니 오늘(11일)은 멜론의 24 Hits에서도 1위에 올라 주요 차트를 석권했다. 멜론 개편 이후 24 Hits에서 걸그룹이 1위를 한 것은 브레이브걸스가 처음이다. 브레이브걸스는 소속사를 통해 "꿈만 같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노래를 사랑해주는 모든 분들이 준 기회를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더욱 겸손하고 열심히 하는 브레이브걸스가 되겠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소속사 수장이자 '롤린'을 만든 프로듀서 용감한 형제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음원 차트 현황을 공유하며 역주행을 자축했다. 용감한 형제는 이날 '롤린'과 '운전만 해'가 각각 1, 2위를 차지한 벅스 차트 사진과 함께 "감사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랑, 관심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라고 썼다.

    '롤린'의 역주행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한때 해체까지 생각했다는 브레이브걸스는 현재 방송가 섭외 1순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주부터 '롤린'으로 음악방송을 돌며, '런닝맨' '유 퀴즈 온 더 블럭' '주간 아이돌'까지 다양한 예능 출연을 알렸다. 노래와 무대 영상의 화제성이 그룹을 향한 호감으로 이어진 셈이다.

    ◇ 4년 전 나온 '롤린'의 역주행, 곡과 그룹 재조명된 사례에 업계 '환영'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는 "음악적으로나 화제성 면에서 취약한 편에 속했고, 해체까지 생각했던 그룹이 급상승했다는 면에서 극적인 사례다. 이런 역주행은 주로 걸그룹, 특히 군대 위문 공연이나 행사 위주로 활동하는 경우에 한정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 유튜버의 흥미 유발 편집, 댓글, 알고리즘이 1차 촉발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억압과 통제를 기반으로 하는 한국의 특수한 군대 문화와, 코로나19로 대면 공연·행사가 불가능한 상황을 기반으로 한 현상 같다"라고 진단했다.

    브레이브걸스 '롤린' 역주행에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는 유튜버 '비디터'의 '댓글 모음 영상' 캡처

     

    가요계 관계자 A씨도 "코로나 시국 때문에 이제 공연장에서 환호하고 함성 지르는 모습을 거의 볼 수가 없다. ('롤린' 영상을 보며) '아, 예전에 이랬지' 하면서 새롭게 재밌게 볼 수 있는 거다. 팬들의 응원법이나 반응이 영상을 볼 때 포인트가 되는 경우가 있지 않나. 그래서 이 영상이 더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라고 전했다.

    '롤린' 발매 당시 쇼케이스 현장을 취재했던 유튜브 크리에이터 정진영씨는 "'롤린'은 꽤 파격적(으로 선정적)인 콘셉트라 기억난다. 쇼케이스 때 듣고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도 '롤린 롤린 롤린' 하는 후렴구는 기억에 남았다. 그만큼 귀에 꽂히고 대중성을 갖춘 노래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정씨는 "'롤린'은 '우리집 준호' '깡'처럼 '댓글 반응' 콘텐츠 인기로 붐업이 됐다. '위아래'나 '옥탑방' 등 지금까지 역주행한 많은 노래가 그랬듯 온라인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스트리밍까지 이어져서 수치적인 결과물을 남긴 건 결국 노래가 좋기 때문이라고 본다"라며 "대면하지 못해 현장을 즐길 수 없는 시기가 계속된다면 '댓글 반응'으로 인한 역주행 스타는 또 발굴되지 않을까"라고 분석했다.

    최태섭 문화연구자는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 사례를 언급하며 "최근 대중음악에서 '서사'를 중시하는 흐름이 눈에 띈다. 하나의 무대를 볼 때도 '서사'라는 안경을 끼고 따라가기 시작하면 노래 한 곡, 무대 한 번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금까지 변해 왔던 것이 감상에 추가되니 다르게 보이는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어 "아예 대형 기획사의 대형 뮤지션이 아니면 트렌드를 결정하는 건 서사이고, 사람들은 그냥 음악보다는 사연이 있는 음악을 좋아하고 있다고 본다. 물론 음악이 너무 별로면 통하지 않는다. 음악이 어느 정도 상향 평준화된 것은 분명하니까, 그 나머지를 채우는 것은 결국 서사이고 음악뿐 아니라 문화산업 전반에 깔린 경향성 같다"라고 부연했다.

    업계에서는 뒤늦게 빛을 본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 사례를 반겼다. 가요계 관계자 A씨는 "이 친구들이 몇 년 동안 너무 고생한 팀이라는 건 업계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다. 그래서 더 축하할 일이라고 본다. 과거 EXID처럼 이번에는 브레이브걸스가 또 하나의 좋은 기회를 만들어준 것 같다"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 B씨는 "예전에는 가수들이 앨범 내면 활동을 두세 달씩 했지만 요즘은 길어야 한 달이다. 그만큼 활동·홍보 기간이 짧다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 그런데 '롤린'은 시간이 지난 상황에서 대중이 인정해 재조명된 사례이다 보니, 참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 신곡이 나와도 대중이 채 평가하기도 전에 활동이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유튜브가 보편화돼 사람들이 곡을 인지하고 평가할 여유가 좀 더 생긴 것 같다. '다음 역주행은 누구?' 하는 식으로 좋은 곡과 무대를 주목하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라고 바랐다.

    ◇ 한편으로 걸그룹 시장의 취약함 노출한 면 있기도

    브레이브걸스 '롤린'은 멜론, 지니, 플로, 벅스 등 주요 음원 사이트 1위를 석권했고, 지난해 여름 발매된 '운전만해' 역시 차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브레이브걸스 공식 페이스북

     

    크리에이터 정진영씨가 언급했듯, 브레이브걸스는 '롤린' 발매 당시 상큼하고 신나는 트로피컬 하우스 장르의 곡과는 다소 동떨어진, 파격적인 섹시 콘셉트를 선보였다. 애슬레저 룩을 활동 의상으로 입기도 했다. 그러나 선정성에만 몰두한 홍보 방식은 결국 외면받았다. 큰 사랑을 받은 위문 공연 영상 안에서 브레이브걸스는 훨씬 더 편한 차림을 하고 있다.

    정씨는 "무리한 섹시 콘셉트를 연이어 선보이면서 (당시) 그룹이나 곡을 향한 관심을 희석한 게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최 평론가도 "'롤린'은 발매 당시 음악적 내용보다는 '뱀파이어 콘셉트' 아래 흑발, 타이트한 검은색 계열 의상 등 비주얼적 요소가 더 관심을 받았다. 당시 가장 부각된 건 추가 제작한 '19금 뮤직비디오'였다. 최근 업데이트된 버전은 기존과 다르지 않나. 대중적으로 소비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과도한 섹시 전략이 무모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라고 밝혔다.

    음악 시장에서 보이그룹보다 취약한 걸그룹의 위치를 노출한 사례라는 지적도 나왔다. 최 평론가는 이번 '롤린' 역주행 사례를 "보이그룹이 팬덤을 바탕으로 작동하는 반면 여성 아이돌이 '대중적'으로 소비된다는 통념의 명확한 방증이 아닐까"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보이그룹이 앨범, 공연 등의 순환적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면, 아주 인기 있는 소수를 제외하면 걸그룹은 그런 구조가 거의 없다. 이런 우발적인 '사건'이나 음악 '외적인' 요소에 더 영향받는 걸그룹 시장의 허약함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현상으로 보인다"라고 바라봤다.

    '롤린' 외에도 지난해 발매된 '운전만해'가 음원 차트에서 순위 상승 중이고, 예능과 인터뷰 섭외 요청이 끊이지 않는 등 브레이브걸스를 향한 관심과 호감이 높아진 현 상황만큼, '그 이후'가 중요하다는 것은 공통된 시각이다. 가요계 관계자 A씨는 "섹시한 느낌의 걸그룹이 많이 없어서 더 색다르게 느낀 면도 있는 것 같다. 브레이브걸스의 '다음'이 정말로 중요해졌다"라고 전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정씨는 "최근 선미나 제시 등 한동안 주류에서 밀려난 섹시 콘셉트가 다시 관심받기 시작하는 듯한데, 이런 분위기도 브레이브걸스에게는 호재가 되지 않을까. 직캠이나 현장 사진이 사라진 상황에서, 생각보다 덜 알려졌지만 노래와 무대가 준수한 브레이브걸스는 대중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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