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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후퇴한 중대재해법…"정부가 누더기 만들어"



국회/정당

    더 후퇴한 중대재해법…"정부가 누더기 만들어"

    정부, 100인 미만 사업장 유예 방안 제출
    "기업 부담…규모 따라 단계적 적용해야"
    포괄적 책임 좁히고 인과추정 조항 삭제
    국회 법안 심사에 기초 자료로 쓰일 듯

    정세균 국무총리가 27일 국회 본관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17일째 단식농성 중인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씨,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운동본부 이상진 집행위원장을 만나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정부는 국회가 제정 논의 중인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을 두고 '단계적 적용'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산재 사망사고 때 사업주나 원청을 처벌할 수 있게 하는 법 조항에 일종의 절충안을 제시한 셈이다.

    하지만 그러잖아도 논의 과정에서 잇달아 후퇴하던 여권 핵심 개혁 과제가 정부 손을 거치면서 누더기가 됐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곧바로 제기된다.

    ◇ 50~100인은 2년 뒤, 50인 미만 4년 뒤부터

    법무부가 관련 부처 입장을 모아 28일 국회에 제출한 문건에는 "기업의 부담을 신설하는 법안이므로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적혔다.

    이에 정부는 중대재해법 부칙에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은 공포 후 2년 뒤부터 시행한다'는 조항을 추가하자는 뜻을 전했다.

    정부안이 수용되면 100인 이상 사업장은 공포 1년 뒤, 50~100인은 2년 뒤, 50인 미만은 4년 뒤부터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어 "일반적으로 노동관계 법률에서는 기업의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박주민 의원 발의안(案)이 50인 미만 사업장 시행 유예 전제 조건으로 적시한 '안전·보건조치 의무 이행을 위한 제도 마련'이라는 문구는 삭제하자고 했다. 명확하지 않은 기준으로 유예 여부로 결정하기는 곤란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24일 국회에서 중대재해법관련 법사위 소위가 열렸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회의실로 이동하고있다. (윤창원기자/자료사진)

     

    ◇ 정부·지자체는 책임에서 쏙 빠져

    정부는 아울러 법안 대다수 조항에 의견을 달았다.

    먼저 산재 사망사고 때 사업주나 원청에 부여되는 이른바 '포괄적 책임'의 범위를 좁혔다.

    경영 책임자를 두고는 "법인 대표이사 등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및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이사"로 한정했다.

    동시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경영 책임에서 아예 빼 버렸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행정이 포괄하는 영역이 넓은 반면 민간과 같은 정도의 관리력과 지배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또 "자칫 소극적 행정이 발생한다면 국민 생활에 필요한 행정 작용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다수 부처 의견'이라고 강조했다.

    박주민안이 원청에 부여한 '공동 의무'에 관해서는 '원청이 시설이나 설비를 소유하거나 장소를 관리할 책임이 있는 경우'로 제한했다.

    고용노동부는 이어 "발주만으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과잉"이라며 발주처에 지워지는 안전 의무를 삭제하자는 의견을 냈다.

    백혜련 법사위 소위원장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 참석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번 소위에 불참했다. 윤창원기자

     

    ◇ '인과 추정' 조항도 삭제하자는 의견

    법 제정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였던 '인과관계 추정'에 대해서도 삭제해야 한다는 입장이 더해졌다.

    법무부는 "인과관계 추정은 형사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할 소지가 있고 형사 재판에서 범죄 사실의 인정은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에 의하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주민안에서는 사업주가 '위험 방지' 의무를 5년새 3차례 위반했거나 증거 인멸 수사로 방해한 사실이 확인됐을 경우에 한해, 사업주 책임을 '추정'할 수 있게 했었다.

    다만 정부는 사망사고에 더해 같은 원인으로 부상·질병이 10명 넘게 발생할 경우에도 법을 적용하자고 했다. 부상자나 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할 때 적용하자는 박주민안보다 대상을 넓힌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사건 같은 대형참사를 막아야 한다는 입법 취지를 감안한 조처다.

    28일 오전 국회 본청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촉구 단식농성장에서 열린 정의당 대표단회의.왼쪽부터 정의당 이은주의원(서 있는 사람) 강은미 원내대표,,김종철대표,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이사장, 고 이한빛PD 아버지 이용관씨. 박종민기자

     

    ◇ 정의당 "국민 죽어나가는 것 손 놓나"

    정부안이 공개되자 중대재해법에 당의 명운을 걸었던 정의당은 실망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정의당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참담한 수준의 누더기 법안"이라며 "사람이 먼저라던 정부가 기업 이익을 앞세워 국민들 죽어나가는 것 손 놓고 보자는 것 아니냐"고 성토했다.

    국내 전체 사업장 중 98.8%가 50인 미만이라는 점에서 100인 미만 사업장까지 유예한다면 사실상 생색내기용 개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9일 법안소위를 열어 정부 입장을 확인하고 각 조항의 세부 내용을 조율할 방침이다.

    여당 의원들은 "정부 차원의 의견일 뿐"이라며 의미를 축소하지만, 정부안은 법사위 법안 심사에 기초 자료로 쓰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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