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사무실에서 불을 밝히고 야근하는 직장인들 모습. (사진=연합뉴스)
노사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을 미리 정해 예정된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의 '포괄임금제'가 회사 측이 직원들을 '공짜 야근' 시키는 데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13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포괄임금제는 어떻게 공짜 야근을 만드는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하며 "포괄임금제가 시간 외 근로를 당연히 전제하고 있으니 노동자는 회사에서 지시하는 연장근로를 거부하기가 힘들어지고 야근이 당연시된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해당 보고서는 직장갑질119가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받은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2662개 중 포괄임금 제보 사례 65건을 분석해 만들었다. 근로계약서, 계약 내용, 임금 지급 실태 등 실제 사례를 분석해 포괄임금제의 위법성과 대처 방안, 제도 개선 방안 등을 다뤘다.
일부 회사는 포괄임금제를 악용해 직원들에게 '무제한 야근'을 시키거나 일한 만큼 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있었다.
한 직장인 A씨는 "회사에서 오후 9시 넘어서까지 야근해야 1일 1만원(저녁값 개념)을 야근수당으로 지급한다고 한다. 9시 이전에 퇴근하면 야근수당은 없고, 11시까지 일해도 똑같이 1만원을 지급한다"고 주장했다.
또 "아무 때나 갑작스러운 야근을 지시하고 주말 근무를 강요하지만 포괄임금제라는 이유로 거절할 수가 없다", "포괄임금제라면서 야근을 시키는데, 한 달 근로시간이 241시간을 넘어간다" 등의 제보도 있었다.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지 않은데도 포괄임금제를 강요하는 곳도 있었다.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 한해야 하고, 노사의 명확한 합의와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만약 이를 어길 경우 포괄임금제 약정은 무효가 될 수 있다.
직장인 B씨는 "저희 회사 직원들은 기본적으로 사무직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근무시간이 명확하지 않거나 기록이 불가능한 직종이 아니다. 사내 프로그램을 통해 명확한 출퇴근 기록 및 관리가 가능하다"며 "그럼에도 기본급과 연장·야근수당이 포함돼 있는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추가 수당 지급을 회피하기 위해 출퇴근 기록을 조작하는 곳도 잇었다. C씨는 "업무상 오전 6시 출근을 해도 '포괄임금제'라며 일찍 출근한 만큼의 연장근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며 "출퇴근 기록을 남기지 말라고 지시한다. 실제 출근을 7시에 했는데 출퇴근 지문기록은 8시 30분에 하도록 하고, 퇴근시간은 포괄임금제 위반되지 않도록 18시에 퇴근기록 등록 후 업무연장한다"고 밝혔다.
직장갑질119는 "포괄임금제로 약정된 '시간 외 근로' 시간보다 더 일하는 경우에는 추가로 수당을 지급해야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업장은 매우 드물었다"며 "포괄임금제에 포함된 '시간 외 근로' 시간은 형식적인 것이 돼 실제로는 '무제한 야근'이 이뤄지는 한편 그에 따른 추가 수당은 그대로 체불 임금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는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을 위한 칼퇴근법'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출퇴근시간기록의무제와 포괄임금제도 규제, 퇴근 후 카톡 업무지시 근절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며 "하지만 3년 6개월이 지나도록 고약은 청와대 서랍에서 잠자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불법과 편법인 포괄임금제가 노동 현장에서 사실상의 제도로 기능하고 있기에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입법으로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며 "입법과는 별도로 고용노동부의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지 않은데도 포괄임금제를 활용하고 있는 사업장을 집중적으로 단속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