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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마지막 기회" 아들 눈물에 70대 노병은 마음을 돌렸다



사회 일반

    [단독]"마지막 기회" 아들 눈물에 70대 노병은 마음을 돌렸다

    [인터뷰]5·18조사위 허연식 조사2과장

    40년 만에 '5·18 암매장' 자백한 사람들
    조사관 삼고초려·아들 설득에 증언 결심
    일곱 번까지 찾아갔지만 문전박대한 경우도
    "조사기간도 인력도 부족…법 개정 촉구"

    (사진=5.18 기념재단 제공)

     

    10월 중순의 어느 날 밤. 강원도의 한 식당에 다섯 명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일흔을 훌쩍 넘긴 김정태(가명)씨는 자꾸 술잔을 멍하니 응시하거나 이어가던 대화를 멈췄다. 그럴 때마다 아내와 아들은 김씨 눈치를 봤다. 불편한 공기가 테이블을 휘감았다.

    '조사관'이라는 사람들이 김씨 가족을 찾아온 건 그날로 세 번째였다. 두 달 전 8월 불쑥 등장한 그들은 저번 달에도 서울에서 수백리 길을 달려오더니 김씨와 저녁을 먹고 돌아갔다. 미안한 감정이 조금 생긴 상태로 시작된 술자리. 그날의 대화는 그 전과는 달랐다. 아들 현창(가명)씨가 먼저 적막을 깨고 나섰다.

    "아버지. 아버지는 명령대로 했을 뿐이잖아요.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텐데…. 털어버리시면 어떠세요."

    마흔을 앞둔 아들의 진심 어린 말에 김씨의 눈이 흔들렸다. 40년이었다. 무려 40년 동안이나 아내는 물론 그 누구에게도 꺼낸 적 없는 이야기였다. 김씨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그날 식당에 있던 다섯명은 소리 없이 울었다.

    ◇진실 앞 침묵하는 사람들…일곱 번 찾아갔지만 단 한마디 못 들었다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조사위) 조사 활동은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이다. 사전에 연락을 해 조사 일정을 잡으려고 하면 인터뷰에 실패할 확률은 사실상 100%. 대부분 찾아온 조사관을 문전에서 박대하거나 심한 말을 하며 쫓아낸다고 한다. 5·18조사위 허연식 조사2과장은 "주소지를 확인한 뒤 무작정 가서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허 과장은 최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40년 전 광주 일대에서 벌어진 시신 암매장 의혹과 관련해 특전사 3공수여단 소속 부대원 350명을 전수조사했다"고 밝혔다. 이렇듯 어렵게 부대원을 만나더라도, 조사에 도움이 될 만한 진술을 얻는 경우는 아주 적다고 한다.

    "한 명을 일곱 번까지 찾아간 적이 있어요. 분명히 집 안에 있는 것을 확인했는데 문을 안 열어주고 안에서 말도 없어. 그러면 기다려요. 몇 시간 기다려도 꿈쩍도 안 하면 돌아올 수밖에요. 그렇게 일곱 번을 했는데도 아직 말 한마디를 못 들었어요."

    ◇암매장 진술 20여건 확보…특전사 모임에 '조사 방해' 글 올리기도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지금까지 5·18조사위가 확보한 시신 암매장 관련 진술은 총 20건 정도다. 조사관들의 끈질긴 방문과 설득 끝에 일부 공수부대원이 40년 전 일에 대한 얘기를 꺼내놓은 것이다.

    허 과장은 "말을 하는 경우는 극히 소수다. 몇 사람에 불과하지만 자신이 당시 광주에서 목격한 일을 확인해주고, 당시 상황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을 소개해주기도 한다"라며 "그런 분을 만나면 다시 힘을 내 움직이게 된다"고 말했다.

    반대로 대다수가 입을 열지 않거나 조사관을 만나주지도 않는다. 찾아온 조사관에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많다. 전국에 형성돼 있는 특전사 동지회 등을 통해 조사위의 방문 사실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조사 방해 행위를 한 사람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심지어 어렵게 증언을 결심한 옛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절대 협조를 하지 말라면서 심한 모욕감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허 과장은 "'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 '5·18 가짜 유공자 문제가 심각하다는데 그런 부분은 조사 안 하고 죄 없는 우리만 조사하느냐'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대부분 60~70대 고령이다. 사실상 이번 조사가 진상규명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허 과장은 40년 전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은 가해자들에게도 굉장히 괴로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하는 일은 가해자 자신도 고통스러운 기억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면서 "많은 분이 조사 취지를 오해하고 있다.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거나 어떤 보복을 하려는 목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회 특별법 개정, 조사위 인력·기간 늘리고 정부 공동조사 진행"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지난해 12월 첫발을 내디딘 5·18조사위가 출범 1년을 앞두고 있지만, 5·18민주화운동의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 활동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계속 있었다. 올해 초 시작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대면조사나 현지조사 계획은 미뤄졌고, 수사권이나 강제조사권이 없는 현실에서 진술 하나를 얻는 데 조사관들이 들이는 시간과 노력도 상당하다.

    지난달 30일 1심에서 사자명예훼손 혐의 유죄(징역 8월·집유 2년)를 받은 전두환씨에 대한 조사도 쉽지 않은 상태다. 허 과장은 "동행명령장 정도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이를 거부해도 과태료 3천만원을 부과하는 게 전부"라면서 "국가 권력을 강점한 시기 축적한 부에 비하면 3천만원은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는 조처"라고 말했다.

    조사인력이나 기간도 부족한 상태다. 법정 조사인력 50명 중 실제 조사업무에 투입되는 사람은 30명 수준. 최장 3년 안에 방대한 규모의 조사 활동을 마무리하고 종합보고서와 백서까지 발간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은 인력이다. 허 과장은 "현재 위원회 내 소분류된 조사 주제만 120개에 달하고 더 늘어날 수도 있다"며 "50명 모두가 조사에 투입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조사가 진행되고 백서를 내기까지 최소한 4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결국 제한된 권한 내에서 최대한 실효적인 조사를 할 수밖에 없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특별법 개정안이 하루라도 빨리 통과돼야 하는 이유"라면서 "여성가족부와 행정안전부, 외교부 등에 특별 기구를 만들어 5·18조사위와 공동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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