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사진=연합뉴스)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정위 기업집단국은 지난달 말 3주년을 맞아 떡을 맞춰 청내 각 부서에 돌렸다. 특정 단위 부서가 조직 출범을 기념하는 것도, 기념 떡을 돌리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조직의 칼날 앞에서 재벌 기업이 벌벌 떤다 해도 조직 생사여부가 앞으로 1년 안에 판가름 나는 만큼 생존을 향한 간절한 바람이 드러난 것으로 읽힌다.
◇공정위 기업집단국…문재인 정부 재벌 개혁의 상징으로 탄생
공정위 기업집단국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9월 22일 출범했다. 일감 몰아주기로 대표되는 재벌 총수의 탈·불법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나아가 재벌개혁의 핵심과제인 기업지배구조 개편까지 이끌겠다는 정책방향에 따라 신설됐다. 문재인 정부 초대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인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도했다.
조직 출범 직후 하이트진로의 일감몰아주기 혐의에 대해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하이트진로가 총수 2세에게 100억원대 부당지원을 한 내용을 밝혀내고 과징금 107억원을 부과했다. 총수 2세인 박태영 경영전략본부장에 대해서는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올해 들어서도 미래에셋그룹과 SPC, 금호아시아나 등 주요 재벌기업의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조사결과를 잇따라 내놓았다.
이렇게 출범이후 지금까지 3년간 처리한 재벌관련 사건은 모두 30건에 이른다. 이에 따라 부과한 과금만해도 총 1천 506억원에 달한다. 또 법인 38개를 비롯해 재벌총수 등 개인 25명을 고발하기도 했다.
특히 재벌 그룹의 경영권 승계의 통로로 악용된 재벌 그룹내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공정위의 제재는 기업집단국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 기업집단국 신설이전엔 4건에 불과했지만 이후엔 11건으로 늘었다. 이와 관련해 부과한 과징금도 1천 445억원으로 전체 과징금의 95%를 넘는다.
◇삼성과 SK도 겨누는 공정위 칼날공정위 기업집단국의 조사가 항상 완벽하게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한화그룹 일감몰아주기 사건의 경우 5년간 조사에도 한화그룹 총수 일가의 전산서비스 관리 등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 대해 혐의점을 입증하지 못해 결국 무혐의 결론이 내려지기도 했다.
또 검찰 수사단계나 법원 판결에서 뒤집히는 경우도 있다. 조사 역량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다.
하지만 공정위는 올해도 대기업 사익편취 행위 등에 대한 조사 의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삼성과 SK 등 주요 대기업의 내부거래 혐의에 대한 조사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사진=공정위 제공)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삼성과 SK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과 관련해 "특정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공정위가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한 법 위반 행위를 조사하고 있고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빠르고 신속하게 조사 결과를 처리하는 부분이 분명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의 경우 그룹 계열사가 단체급식업체인 삼성웰스토리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인데, 공정위가 혐의를 포착해 현장 조사에 나서기도 했던 사안이다. SK그룹 사건은 현재 SK텔레콤의 계열사 밀어주기를 통한 이익편취 혐의에 대한 조사이다.
두 회사가 경제계에서 차지하는 위상만큼 재계의 관심이 높다. 공정위가 정조준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힌 만큼 앞으로 진행할 재벌기업의 일감몰아주기 조사에 관심이 쏠린다.
◇재계 저승사자의 아픈 기억들…재벌 잡아 생존하기 전략?공정위에는 기업집단국 이전에도 대기업 조사를 전담했던 조직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시절에는 공정위에 조사국을 설치해 주요 재벌그룹의 부당 내부거래를 집중 조사했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반발하면서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해체됐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 공정경제 정책 추진에 따라 재벌개혁을 추진하는 공정위내 조직으로 설립됐지만 공정위 기업집단국은 정규조직이 아닌 '한시적인' 조직이다.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정부 부처내 조직을 신설할 때는 2년간 한시 조직으로 운영하고 행정안전부가 실적 등을 거쳐 정규 조직 여부를 결정한다. 이에 따라 기업집단국도 출범 2년째인 지난해 행안부의 평가를 받았지만 '뚜렷한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정규 조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평가기간을 내년까지 2년 더 연장한 실정이다.
내년 행안부 평가 결과에 따라서 조직 생존 여부가 갈릴 가능성이 높다. 자칫 지난 2005년 조사국 폐지 때처럼 뼈아픈 경험을 다시 반복할 수 있을 수도 있다.
최근 대기업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제재가 잇따라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위기의식에서 나오는 것 아니냐는 재계의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측은 물리적 조사기간이 있는 만큼 2-3년 전 착수한 사건의 조사 결과가 최근 집중되는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조직 생존 여부가 조직 내 화두인 것은 사실이다.
조 위원장도 기업집단국 정규조직화와 관련해 "재벌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도를 감안하면 기업집단국은 정책과 사건 처리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조직 유지의 필요성을 분명히 했다.
특히 "정책 목표를 충실히 추진해나가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집단국의 정규조직화가 재벌 제재 성과와 비례 관계임을 드러낸 대목이다.
공정위 기업집단국이 남은 기간 조직 역량을 발휘해 시장 지배자인 재벌에 어느 정도 칼을 댈 수 있을지 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