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친밀한 관계 내 폭력, 피해범주 넓혀야…법제 보완 시급"

뉴스듣기

페이스북공유하기 트위터공유하기 밴드공유하기



사건/사고

    "친밀한 관계 내 폭력, 피해범주 넓혀야…법제 보완 시급"

    뉴스듣기

    한국여성의전화, 17일 토론회 개최…코로나 고려 '줌' 도입
    "국내선 주로 '가정폭력'으로 다뤄…극히 일부에만 초점"
    "UN·WHO 등 해외에선 IPV(친밀한 관계 내 폭력) 주요의제"
    '이성애·혈연' 중심 관계 집중, '집=안전한 공간' 인식도 지적

    17일 한국여성의전화와 여성인권실현을 위한 전국가정폭력상담소연대는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을 이용해 '친밀한 관계는 어떻게 폭력을 지우는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사진=화면 캡처)
    #1. "전(前) 남자친구하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런 걸 다 물으면서 전 남자친구한테는 이렇게까지 했는데 자기는 왜 그렇게 안 하냐, 그러니까 나는 너한테 서운함을 느낄 수밖에 없고, 그래서 이렇게 자기는 화가 난다는 식으로 말하거나 '네가 이걸 유발했으니 내 화도 받아줘야 된다'는 식으로 폭력을 정당화했어요. 사랑이 아니면 폭력이다, 둘 중 하나로만 생각하니까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니 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사례자 A씨)

    #2. "모임에 못 가게 하고 '모임 멤버 누가 별로다. 너한테 도움이 되지 않는 모임이다, 가지 마라' 하면서 제 지인들을 비난했어요. 전 남자친구에 대해 자꾸 물어보고, 날마다 만나자 해 미안해서 나갈 수밖에 없게 했었죠. 화가 나면 당장 자기네 집으로 오라고 협박하고, 물건을 집어 던진다거나 발로 차거나, 운전을 난폭하게 하면서, 싸우면 다 저 때문이란 말을 하면서 제 탓으로 돌렸어요. 화나면 잠을 안 재우고 계속 통화를 해 밤새워 통화한 적도 두세 번 있었어요."(사례자 B씨)

    한국여성의전화 부설 여성인권상담소가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피해자 10명에 대해 표적집단 면접조사(FGI·Focus Group Interview)를 진행한 결과 중 일부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애인, 동거인 등 혼인으로 묶이지 않는 숱한 '친밀한 관계' 내 여성 대상 폭력이 법적으로 온전히 제재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17일 여성인권실현을 위한 전국가정폭력상담소연대와 함께 토론회를 열었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지난 2019년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88명, 범죄가 미수에 그쳐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108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범행 과정에서 피해여성의 자녀와 부모, 친구 등 주변인이 중상을 입거나 사망한 경우도 최소 33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또 지난 2018년 대검찰청의 범죄분석을 살펴보면 같은 해 살인범죄 총 849건 중 가해자가 연인인 사건이 7.8%로 나타났다. 정확한 관계를 알 수 없는 가해자에 의해 발생한 사건(20.3%)을 제외하면 연인에 의한 살인비율은 약 10%에 달했고, 성폭력과 폭행·상해범죄에서도 연인을 대상으로 한 사건은 각각 9%,11%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효정 부연구위원은 "지난해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 배우자로부터 신체적·성적·경제적·정서적 폭력을 경험한 응답자가 그 당시 또는 이후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단 2.3%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실제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 정도는 통계에 드러난 것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지난 1997년 12월 제정한 가정폭력처벌법을 통해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을 주로 다뤄왔지만, '1인 가구'가 최대 가족구성을 차지하고 '비혼 인구'가 급증하는 등 급변하는 사회 세태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단적으로 사실혼 관계나 동거 또는 비동거 중인 애인으로부터 당한 폭력은 일반 형사사건으로 처리돼야만 하는 실정이다.

    17일 한국여성의전화 등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사회를 맡은 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사무처장이 발언하고 있다.(사진=화면 캡처)
    김 부연구위원은 "한국에서는 가정폭력방지법 등 가정폭력이란 용어가 주로 사용되고 있지만 UN(국제연합)이나 WHO(세계보건기구) 등 해외의 경우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IPV·Intimate Partner Violence)'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며 "유럽성평등연구소(EIGE) 역시 이를 젠더기반 폭력으로 설명하면서 대면관계에서부터 온라인 공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행해질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IPV의 개념은 파트너 관계의 현재적인 상태, 혼인 여부, 주거지 공유 여부, 피해자 및 가해자 성별의 제한 없이 적용된다"며 "흔히 여성들에게 집중되는 성별화되는 경향을 보이긴 하나, 남성 또는 동성 간의 관계에서도 발생 가능하단 점이 고려되고 있다"고 부연했다.

    토론 참가자들은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사소하거나 사적인 일'로 치부해온 한국사회의 통념을 비판하며, 이를 단발성 사건으로 바라보기보다는 그 폭력을 가능케 한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최선혜 소장은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은 관계를 맺어온 시간만큼이나 그러한 폭력들이 발생하는 '맥락'들이 존재한다"며 "이를 통시적으로 바라보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어떻게 통제해왔는가, 에 대한 접근이 있을 때 피해자가 경험한 폭력의 본질에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가해자들은 피해자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하기 위해 피해자를 고립시키는 전략을 사용한다. 피해자는 '아끼는 존재'를 지키거나 가해자의 비난과 폭력을 피하기 위해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게 된다"며 "사회적 지원망이 부족한 사회에서 친밀한 관계 내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피해자 개인의 몫이 되기 쉽다"고 설명했다.

    가정폭력처벌법 등의 입법 취지가 폭력이 일어난 가정을 회복, 유지하기 위한 데 그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특히 코로나19로 '재택'이 방역을 위한 기본값이 됐지만, 모든 여성에게 집이 안전한 공간이 될 수는 없다는 한계 또한 언급됐다.

    장애여성공감 이진희 공동대표는 "'친밀한 폭력'은 '친밀한 통제' 안에서 일상적으로 용인되고 돌봄이나 의존, 관리, 보호, 교육 등의 명목으로 묵인돼 왔다"며 "기본적으로 '가정은 안전한 공간'이라는 허구가 깨져야 한다. 장애여성의 사례를 말씀드리면 (친밀한 관계 내) 학대 발생장소의 35%가 거주지였다"고 밝혔다.

    국회입법조사처 전윤정 입법조사관 역시 "데이트폭력이나 스토킹 범죄는 (시간이 갈수록) 강화되는 특성상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건 발생 전 단계부터 (국가가) 개입하는 게 효과적"이라며 "지난 2018년 제정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서는 '친밀한 관계 내 폭력'이라는 개념은 들어왔지만, 그 구체적 내용은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여성폭력의 피해자 개념을 구체화하고 관련된 긴급조치·보호제도를 세분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화상회의 플랫폼인 줌(Zoom) 서비스를 이용해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최다 인원 접속 시엔 200명 가까운 참여자들이 토론회에 참석해 채팅창으로 활발한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이 시각 주요뉴스

    김현정의 뉴스쇼

    정관용의 시사자키

    에디터가 추천하는 꼭 알아야할 뉴스


    많이본 뉴스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