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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리 이해 못한 수사심의위, 이재용 기소 판단 무리였다



법조

    법리 이해 못한 수사심의위, 이재용 기소 판단 무리였다

    심의위원, 이 부회장에 적용된 혐의 개념 이해부터 난항
    검-변 공방 배제된 의견진술로 양측 논리 비교 더욱 어려워
    법리 이해 힘들자 법리 이외 기준이 판단에 영향 미치기도
    영장전담 판사 재판 필요성 발언에도 압도적 표차로 삼성측 손 들어줘.

    이재용 부회장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이미지=연합뉴스)

     

    26일 개최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를 중단하고 기소조차 하지 말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검찰이 코너에 몰렸다.

    위원회는 이날 9시간이 넘는 회의 끝에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중단과 불기소 결정을 의결했다. 더 나아가 김종중 전 삼성 미래전략실 전략팀장과 삼성물산도 기소하지 말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시작한 위원회는 당초 예정됐던 저녁 5시50분의 마감시한을 2시간여 가까이 넘기며 결정에 진통을 겪고 있다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투표 결과는 총 투표인 수 13명 가운데 이 부회장의 기소를 찬성하는 표가 3장에 불과했을 만큼 이 부회장 측의 압승이었다.

    검찰의 장기간 수사 끝에 두 번째 구속 위기까지 내몰렸던 이 부회장의 마지막 카드가 ‘대박’을 친 셈이다. 지난 2017년 말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제도가 도입된 이래 현재까지 소집된 8차례 전례를 살펴봐도 대부분 심의위가 검찰 손을 들어줬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례적인’ 결과였다.

    ◇ 적용 법리 이해서부터 난항…'여론재판' 우려 현실됐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전격 수사심의위 소집을 신청할 당시부터 여론재판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강하게 제기됐다. 1년6개월여의 수사를 거쳐 마무리 단계에 이른 사건인 만큼 그 내용이 복잡·다단한데, 이를 다루지 않았던 외부인들이 기소 여부를 단기간에 판단할 경우 객관성이 담보될 수 있느냐는 물음표가 그것이었다.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조금씩 드러난 이날 심의위 진행상황은 이같은 우려가 기우가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심의위원들은 수사팀이 이 부회장에 대해 적용한 자본시장법 제178조 '사기적 부정거래' 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크게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심의위가 다뤘던 업무상과실치사, 피의사실공표, 뇌물수수, 업무방해 등의 사건들은 법률 전문가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비교적 이해가 쉽고 직관적으로 판단이 용이한 사안들이었다.

    이런 현상은 제도 도입 취지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수사심의위 제도를 도입하면서 “그간 (검찰)수사 착수 동기가 무엇이냐부터 의심 받는 경우가 많았다”며 “위원회에서 수사 과정에 관해 문제 제기가 있으면 최대한 검찰 제도로 수용하는 절차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즉 검찰의 정치적 편향성을 외부인사를 통해 걸러내겠다는 것이 제도 도입의 근본 목적이었다.

    삼성과 같은 거대 글로벌 기업의 경영권 편법 승계 같이 방대하고 정교한 법리 논쟁이 필요한 사건은 애시당초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던 것이다. 제도 입안자인 문무일 전 총장도 수사심의위가 이재용 사건의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장면은 상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제도 도입의 실무책임자였고 대검 2인자였던 봉욱 전 대검 차장은 현재 삼성 준법감시위의 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 이재용 측 유·무죄 논쟁 피하고 "지금 판단할 필요 없다" 심의위원 설득

    하지만 이 부회장 측은 제도의 허점을 영리하게 파고 들었다. 검찰 특수통 출신인 김기동 변호사는 '분식회계 혐의 등이 문제라면 실무진이 죄가 있는지 먼저 따져본 후 이 부회장 기소를 검토해야 한다'며 법리 이해에 힘들어하는 심의위원들을 공략했다. 이 부회장이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대신, '반드시 지금 죄를 따질 필요가 있느냐'고 설득한 것이다. 가뜩이나 법적 판단에 자신감이 없던 심의위원들에게 매력적인 논리가 아닐 수 없었다.

    검찰과 변호인 순으로 진행된 의견진술 방식은 심의위원들이 쟁점사안을 이해하기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법정과 같이 공방 형식으로 진행됐다면 양측 주장의 허실이 선명하게 드러났겠지만 순서를 정해 프리젠테이션 형식으로 진행하면서 양측 주장의 차이를 찾아내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이 부회장 혐의에 대한 이해가 힘들다 보니 어려운 경제상황에 대한 우려나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사법처리를 받았다는 등의 심리적 요인들이 심의위원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여지가 커졌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새벽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 심의위원 공정성 확보방안, 삼성 사건에서도 작동했을까

    150명에서 250명에 이르는 심의위원단에서 무작위로 추첨한다는 심의위원 선정 방식이 과연 ‘삼성 사건’에서 제대로 공정성을 담보했는지도 의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이번 사안의 심의위원장을 맡을 '뻔' 했던 양창수 전 대법관이다.

    양 전 대법관은 유력한 사건 관련자인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 팀장과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라는 CBS노컷뉴스 단독보도가 나간 뒤 “최 전 실장과 오랜 친구사이였다”며 스스로 위원장 직에서 물러났다. 양 전 대법관이 물러난 대신 전직 교사, 종교인, 언론인, 법조인, 교수 등 14명의 인사가 이 부회장 수사와 기소 정당성을 따졌다. 하지만 학술, 종교, 언론, 법조 모두 삼성의 영향력이 막대한 분야라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번 심의위원들 가운데 친(親)삼성 인사들이 다수 포함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부회장의 결백을 확신하던 심의위원들에게도 이 부회장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남긴 발언은 최후의 장애물이었다. 원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을 내린 뒤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와 그 정도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심의위원들은 막판까지 이 발언의 의미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원 부장판사 역시 영장 기각이 심의위원들에게 곧 ‘혐의 없음’으로 비춰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번 기울어진 심의위원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법관의 우려대로 다수의 심의위원들은 사실상 이 부회장의 혐의를 지워버리며 검찰의 추가 수사 여지마저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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