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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화재·쿠팡 감염…'안전 사각지대' 내몰린 일용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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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천 화재·쿠팡 감염…'안전 사각지대' 내몰린 일용직

    물류센터, 고용부담 적은 '일용직 근로자' 선호
    안전사고·방역은 나몰라라…우리사회의 약한고리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 쿠팡 물류 단기알바를 문자메시지로 신청한 A씨. 신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면접도 보지 않았지만 출근하라는 '확정 문자'가 왔다. 물류센터를 들어갈 때 핸드폰은 반입할 수 없었고, 장갑이나 투명한 물통은 가지고 들어갔다. 마스크 착용 등 안전교육을 받았지만 일을 하는 사람 중엔 답답해서인지 마스크를 턱 밑까지 내리고 작업하는 사람도 있었다. 작업하는 근로자들 사이 간격은 있었지만 그야말로 '코로나19 방역안전 사각지대'였다.

    #. B씨는 지난 4월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참사가 남일 같지 않다. 그는 지난 2018년 2월 같은 지역 다른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중 화재가 발생해 대피하려 했지만 현장 관계자들이 "업무시간 중에 자리를 이탈하지 마라"고 호통을 쳐 일을 계속 했다. 화재는 한 근로자가 버린 담배꽁초가 종이박스에 옮겨 붙으면서 났던 것으로 조기 진압됐지만, 아직도 당시 현장 관리자들의 대처가 이해되지 않는다.

    안전이나 전염병 사고가 날때마다 피해가 집중되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다.

    물류센터 등에선 일용직 노동자들을 필요할 때 불러다 쓰지만 안전 관리는 뒷전으로 미루기도 한다. 이들은 보호해줄 노동조합도 없고, 하루하루 소모품처럼 쓰이다보니 회사에서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고용 자체가 매우 불안정하다보니 사측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안전이 담보 되지 않은 사업장을 이리저리 옮겨다니기도 한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문 앞에 놓고 가세요"…'비대면 시대' 연 일용직들 근무여건 여전히 '최악'

    쿠팡 물류센터발 코로나19 연쇄감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언택트(비대면) 문화'를 가능하게 만든 일용직 노동자들은 마스크 착용 등으로 근무 환경이 더욱 열악해졌다고 호소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장지동 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일한 바 있는 김모씨는 "마스크를 낀 채 쏟아지는 물품들을 옮기다 보면 마치 100m 달리기를 한 듯 숨쉬기가 버겁다"며 "땀도 나고 숨도 가빠지면 자연스레 마스크를 턱 밑에 걸치게 된다"고 말했다.

    같은 장소에서 일했던 방모씨는 "대량의 박스들이 이곳저곳에 팽개쳐지면서 나오는 먼지를 흡입하면 종종 재채기가 나온다. 물품에도 침이 묻을 수 있다는 뜻"이라며 "요즘 같은 시국에 마스크를 언제나 착용하고 있어야 하지만 폐쇄된 공간에서 반복적인 노동을 하면 (방역지침을) 100% 지키기는 정말 힘들다. 마스크를 내린 채 갑자기 기침이 나오면 당연히 함께 일하는 사람들 눈치도 보인다"고 전했다.

    쿠팡 인천 물류센터에서 1년 이상 단기 아르바이트로 근무한 최모씨는 "단기 알바도 출근 때 다음날 출근 가능 여부를 체크한다. 만약 일이 있거나 몸 상태가 안 좋아서 빠지게 되면 다음에 일을 다시 잡기 쉽지 않다"면서 "쿠팡 알바 지원자는 늘 많기 때문에 몸 상태가 안 좋아도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참고 나가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이 현장에서 몸을 주로 쓰는 노동자들의 경험담은 코로나 방역과 작업이 병립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좀더 철처한 노력이 없다면 코로나 방역에 언제든지 구멍이 뚫릴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물류센터 관리자들은 "일용직 노동자들이라 매번 신경 쓰긴 힘들다"는 입장이다.

    한 e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 대다수가 단기, 일용직 노동자다. 근무하기 전 이들에게 안전 교육을 하고 있지만 회사 소속이 아니라서 지키지 않더라도 강력히 제지하기는 힘든 상황"이라며, "일하러 셔틀버스를 타고 물류센터까지 온 일용직 노동자들을 지침을 어겼다고 돌려보낼 수는 없지 않나. 마스크, 장갑 착용을 안내해도 안 보이는데서 지키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회사에 소속돼 있지 않거나 매일 출근하지 않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하루 일하고 다른 업체나 장소로 근무처를 옮기기 때문에 코로나19 감염자가 산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기 고양시 쿠팡 물류센터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왜 계약직·단기 직원을 선호할까…현실적 대안은?

    이번에 문제가 된 쿠팡과 같은 e커머스 물류센터의 경우 전반적으로 업태 특성상 정규직 외에 계약직이나 단기 직원 등 고용 형태가 다양한 편이다.

    쿠팡의 경우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일용직 근로자를 별도의 절차 없이 일을 시켰고, 일부 업체들도 정규직 외에는 도급업체를 통해 인력을 공급받아 왔기 때문에 직접 관리에 한계가 있었다. 실제 지난달 24일에 나온 쿠팡 첫 확진자와 27일에 나온 마켓컬리 확진자도 일용직 노동자였다.

    물류업계 한 관계자는 단기 고용 형태가 물류센터를 안전관리 사각지대로 모는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확진자가 발생한 부천 쿠팡물류센터는 지하 1층부터 지상 7층까지 건물면적만 3만 3천여㎡다. 규모가 큰 만큼 물량도 많고 이에 따른 인력도 상당한 수준"이라며 "쿠팡 같은 기업에게 정규직 고용은 고정비용의 증가다. 당연히 직원을 매번 채용할 수 없고 매일 쏟아지는 물량에 따라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단기·일용직 근무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관계자는 코로나 감염을 차단할 수 있는 실질적인 안전책을 촉구했다.

    이 관계자는 "택배회사들의 1분기 영업이익은 코로나19 특수 때문에 대부분 전년대비 2배 이상의 상승했다"며 "반면 방역은 형식적 방역에 그치고 있고 마스크조차 제대로 지급조차 되지 않는 곳도 있다. 정부측도 일선 현장에선 적용하기 어려운 권고안만을 발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에 문제가 된 물류센터에서도 내부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일을 하고 있지만 문제는 대다수가 단기알바 등 일용직라는 것"이라며 "불안한 고용형태가 안전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다.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택배노동자들에게 휴식을 보장하고 빠른 배송이 아닌 현실적 지연 배송정책을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택배회사들은 회사 차원이 아닌 정부가 나서야 할 때라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안전문제는 오늘내일 일이 아니다. 하청과 재하청 등 복잡한 계약구조에서 하청업체가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 하다"며 "현장에 처음 투입된 일용직 근로자들은 위험성과 안전성에 대한 의식이 거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업체 입장에선 안전관리 교육을 해도 일용직 근로자들은 받아들이는 수준이 모두 다르다"며 "정부가 일용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현실적인 안전교육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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