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연합뉴스)
불법촬영과 유포 등 성폭력 범죄에 대해 새로 만들어질 양형기준을 두고 대법원 양형위원회 내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새 양형기준의 명칭부터 형량 감경·가중 사유와 집행유예 기준, 아동·청소년 음란물 범죄와의 종합 처리 여부 등을 두고도 논쟁이 가열되는 상황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전문위원단은 지난해 말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죄(제14조)와 통신매체이용음란죄(제13조)의 양형기준을 검토하면서 '디지털 성범죄'라는 명칭은 적절치 않다는 데 다수 의견을 모았다.
'디지털 성범죄'는 카메라·통신매체 등 '범죄 수단'을 언급한 법상 명칭이 실제 범죄의 내용과 심각성을 담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민사회와 법학계를 중심으로 나왔다. 최근 몇 년 새 불법촬영·유포 범죄의 수법과 양태가 진화하고 회복 불가능한 피해가 늘어나는 데 비해 성폭력처벌법 제14조와 제13조 죄목은 여전히 중한 범죄로 취급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전문위원단 다수는 디지털 기기가 아닌 범행 수단이 존재할 수 있고 디지털 성범죄 개념 정립에도 혼동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더 고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새 양형기준의 명칭도 '카메라·통신매체 등 이용 성범죄'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소수의견으로 '성범죄'가 아닌 '성폭력범죄'라는 표현을 써 해당 범죄의 폭력적 성격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유력하게 검토되진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인 '다크웹'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양형위원회가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 검토에 착수하면서 분위도 다소 달라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동·청소년 음란물 범죄를 카메라 등 이용 성범죄 양형기준에 포섭해 다룰지, 별도의 양형기준을 설립할지 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범죄들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하느냐를 두고 고민이 깊어진 것이다.
양형위 관계자는 "카메라·통신 범죄에 이어 아동 음란물까지 같이 다루게 돼 고민이 커진 상황"이라며 "법원이 양형기준을 설정하는 목적에 따라 국민에게 간명하고 상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는 명칭을 택해야 한다는 의견도 계속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초 양형위는 오는 4월 26일 전반기 임기 전까지 디지털 성범죄 관련 양형기준을 확정해 시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아동·청소년 음란물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 검토에 추가로 돌입하면서 오는 5월 중순까지 통합 공청회를 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사실상 초안 마무리 단계였던 디지털 성범죄 부분 양형에서도 시민사회·학계의 이의제기가 대폭 반영될지 주목된다. 지난해 말 양형위원회는 카메라등 이용 촬영 범죄의 기준형량 범위를 징역 6개월에서 1년 6개월 사이로 설정했다. 가중인자가 반영될 경우 징역 10개월에서 2년 6개월 사이다.
이에 대해 반성폭력 단체들은 성폭력처벌법상 불법촬영 형량이 '5년 이하의 징역형'인 것에 비해 기준형량이 너무 낮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집행유예를 선고해선 안되는 부정적 참작 사유로 10년 이내 집행유예 이상의 동종전과가 있는 경우를 든 것도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불법촬영 범죄 통계를 보면 실형이나 집행유예는 매우 적고 대부분이 벌금형이기 때문이다. 10년 이내 벌금형 동종전과가 있는 경우까지 포함해야 실제 재범을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지난 5일 국회를 통과한 일명 '딥페이크 포르노 처벌법'(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은 이번 양형기준 설정 대상에선 빠질 것으로 보인다.
양형위 관계자는 "해당 범죄의 처벌 사례나 재판 실무 등을 토대로 양형기준을 검토해야할 필요가 있어 신설 조항까지 포섭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