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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피는 꽃…'동백이'가 동백이어야 했던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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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에 피는 꽃…'동백이'가 동백이어야 했던 까닭

    "옛날 옛적에"…동백꽃에 얽힌 전설
    시대 발맞춰 변주한 드라마 '동백꽃…'
    사회적 편견 깨는 문화 콘텐츠 힘 증명
    "인간 향한 참된 가치매김 여정 길잡이"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스틸컷(사진=KBS 제공)

     

    동백(冬柏). 겨울에 피는 대표적인 꽃 이름이다. 이 꽃 자생지로 이름난 전남 여수 오동도에는 오래된 이야기가 하나 전해 내려온다.

    아주 옛날 오동도에 젊은 부부가 단 둘 살고 있었다. 하루는 남편이 고기 잡으러 나간 사이, 섬으로 몰래 숨어든 한 남자가 부인을 해치려고 달려들었다. 부인은 남편이 일하는 바닷가로 도망가다 절벽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는다.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부인의 주검을 발견했다. 그는 통곡하면서 부인을 섬에 잘 묻어 준 뒤로 슬픔에 못 이겨 그곳을 떠난다. 남편은 어느날 부인이 너무 그리워 다시 섬을 찾았고, 무덤 곁에서 자란 나무에 활짝 핀 붉은 꽃을 발견한다.

    전설 속 남편 눈에 띈 붉은 꽃은 동백이다. '진실한 사랑' '당신만을 사랑합니다'라는 꽃말 역시 이 이야기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졌다. 동백은 왜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울까.

    서예재 오동도 관리팀장은 "우리는 흔히 꽃이 따뜻할 때 피고 추울 때 진다고 여기는데, 동백나무는 난대식물로 여름과 가을에 걸쳐 꽃눈이 만들어지고 그해 12월부터 이듬해 3, 4월까지 꽃을 피우는 특성을 지녔다"며 "따뜻한 곳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주로 해안가에 많이 자생한다"고 설명했다.

    ◇ "결국 꺾일 운명" VS "강인한 생명력"

    동백꽃은 붉은 색감이나 겨울에 만개하고 송이째 떨어지는 특징으로 인해 여자의 곧은 절개, 이른바 '정조'를 강조하는 가부장적인 상징물 역할을 해 온 측면이 강하다. 앞에서 살펴본 전설과 꽃말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신화학자인 고혜경 치유상담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동백꽃은 겨울에 피고 붉은 상태로 떨어지기 때문에 엄청난 희생, 결국 꺾여야 하는 운명과 연관시켜 그동안 비극적인 상징으로 많이 쓰였다"며 "이와 반대로 척박한 환경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는 데서 강인한 생명력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평단과 대중을 아우르며 높은 지지를 얻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동백꽃이 지닌 긍정적인 상징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문화 콘텐츠로 꼽힌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드라마 제목에서 중요한 표현은 '필 무렵'인데, 이는 만개하지 못한, 뭔가 될 듯하지만 되지 않는 현실에 놓인 이들을 상징한다"며 "꽃말 역시 중요한 키워드인데, 극중 ('물망초'라는 술집 딸인) 향미(손담비)가 '나를 잊지 말아요'(물망초 꽃말)라는 비극을 대표한다면, 동백(공효진)은 결국 피어난다는 콘셉트로서 대비를 이룬다"고 전했다.

    이 드라마에서 전근대적인 사고가 발붙일 여지는 없어 보인다. 남자는 밖에 나가 돈을 벌고 여자는 그러한 남자를 내조하면서 육아와 살림 등을 전담한다는 말로도 쉽게 풀 수 있는, 가부장제와 같은 사회 시스템 말이다.

    고 교수는 "세상이 변하면서 인간 의식도 함께 변화하기 마련인데, 그 시대를 표현하는 이야기의 상징성 역시 우리네 의식과 공명할 수 있도록 변할 수밖에 없다"며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30, 40년 전에 나왔다면 '여자가 뭐 저렇게 되바라지냐'는 식의 반응 탓에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과거 '심청이'처럼 희생을 강요받는 여성 캐릭터가 나오면 지금 시대 사람들은 '무슨 시대착오적인 소리를 하냐'고 질타한다"며 "집단 의식이 진화하는 와중에 그러한 문화 코드를 가장 빨리 읽어내는 미디어가 시대에 발맞춰 변하는 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부연했다.

    ◇ 시대의 물음…"인간을 보다 자유롭게 할 시스템은 무엇인가"

    사진=KBS 제공

     

    결국 주인공 동백을 비롯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속 진취적인 캐릭터들은 우리네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물인 셈이다. 이 드라마가 여성·한 부모와 그 자녀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오랜 편견을 깨는 데 특별히 힘을 쏟은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정 평론가는 "극중 남자 주인공인 황용식(강하늘) 캐릭터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데, 동백은 자신이 결코 피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는 비관적인 생각을 지닌 캐릭터"라며 "용식은 그러한 동백이 꽃필 수 있도록 만드는 인물인데, 그 방식은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좋다'는 진실"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 방식은 ('동백꽃 필 무렵' 극본을 쓴) 임상춘 작가가 소외된 인물을 다루면서 일관되게 강조해 온 메시지"라며 "전작 '쌈마이웨이'(2017)와 마찬가지로 주류라는 비교 지점에 속하지 않았더라도 '당신은 지금 모습 그대로 충분하다'라는 위로를 전한다"고 덧붙였다.

    고 교수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는 '한 인간이 어떻게 해야 오롯이 참된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에 관한 답을 찾는 것"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러한 답을 찾아가는 데 문화는 추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억압이나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한다. 가부장제는 오랜 기간 인류를 지배해 온 공기 같은 것이다. 우리는 누구도 쉽게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이 여성이나 남성에게 어떠한 억압 구조로 작용했느냐라는, 결국 한 인간을 어떻게 착취해 왔느냐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문화 콘텐츠인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효과적인 길잡이로 삼을 수 있다는 데로 의견이 모인다.

    정 평론가는 "극중 동백은 굉장한 잠재력을 지닌 존재다. 편견과 선입견에 가로막혀 지금은 제대로 가치매김 되지 못했으나, 누군가 가치를 부여했을 때 확 치고 나올 가능성을 지닌 캐릭터로 봐야 한다"며 "결국 주변의 도움과 위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남녀로 각기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연결된 우리네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고 교수는 "가부장 문화는 여성성을 가치매김하지 않는데,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은 '나의 본래 힘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모델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며 "이와 동시에 가부장 문화는 남성들이 공감·포용 등으로 대표되는 자기 내면의 여성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빼았는다"고 지적했다.

    "가부장 사회는 여성에 대한 억압 이상으로 남성을 억압해 왔다. 가부장제는 남성성이 건강하게 발현되지 못하도록 억눌러 그것이 기울어지고 왜곡되도록 만들었다. 남성들에게 '본래 남성성이 지닌 가장 건강한 힘은 무엇일까' '성숙한 인간으로 향하는 길은 어디일까'라는 물음을 던졌을 때 더욱 막막해질 수밖에 없다."

    그는 "아직 그 답으로 향하는 길을 찾지 못한 채 익숙하지만 힘을 잃어가는 가부장제에 머물 수밖에 없는 남성들의 과도기적인 불안이 현재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며 "결국 여성이나 남성의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제가 과연 인간을 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는가'라는 물음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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