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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지않아' 안재홍, '웃기기'보다 중요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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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치지않아' 안재홍, '웃기기'보다 중요했던 것

    [노컷 인터뷰] '해치지않아' 태수 역 안재홍 ①

    지난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해치지않아' 태수 역 안재홍을 만났다. (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

     

    2009년 단편 '구경'으로 데뷔한 안재홍은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으나, 그에게 '결정적인' 필모그래피에는 늘 코미디가 있었다. 독립영화계의 샛별로 떠오르게 만든 '족구왕'(2014)의 만섭이 그랬고,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끈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의 정봉이 그랬다. '스물'(2014), '위대한 소원'(2016), '굿바이 싱글'(2016), '임금님의 사건수첩'(2017) 등 코미디 영화와도 인연이 깊었다. 지난해 특별출연한 '걸캅스'에서는 클럽 앞 덩치로 나와 깨알 웃음을 선사했다.

    빚 갚느라 동물도 다 팔아버린 망하기 일보 직전의 동물원을 살리기 위해, 사람이 동물 흉내를 낸다는 기상천외한 이야기 '해치지않아'(감독 손재곤). 안재홍은 동물원의 새 원장 태수와 콜라 먹는 북극곰 1인 2역을 맡았다. 맛깔나게 잘 뽑힌 예고편을 보고 기대감은 커졌다. 안재홍의 강점인 코믹 연기를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그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예상대로 웃겼지만, '대놓고 웃기려는' 연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안재홍은 코미디를 위해 더 힘을 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손재곤 감독이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연기를 주문했고, 본인도 그 생각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안재홍은 적재적소에 웃음을 만들어냈다. '가브리엘'이라는 별것 아닌 단어로도 웃겼다.

    ◇ 새롭고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이야기, 그리고 손재곤 감독

    시나리오 맨 앞장에 쓰여 있는 감독 이름. 안재홍은 손재곤이라는 세 글자를 보고 이 작품을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달콤, 살벌한 연인'을 좋아하고, '이층의 악당'을 "제일 좋아하는 영화"라고 소개하는 그는 손 감독을 너무너무 좋아하기에 "차기작을 받을 수 있어서 너무 신기하고 그 자체만으로 흥분됐다"라고 전했다.

    안재홍은 "시나리오 읽어봤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이 이야기는 너무 새롭고 가치있고 굉장히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꼭 참여하고 싶었다"라며 "태수가 동물 없는 동물원을 정상화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메인 플롯에 동물원, 동물권, 까만코라는 북극곰에 대해 넌지시 질문을 던지는 게 저는 참 좋았다"라고 말했다.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은 영화'여서 '해치지않아'가 좋았다는 안재홍은 "단순히 재밌고 웃긴 영화보다는 관객분들 기분 좋아지는 작품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동물에 대한 이야기와 메시지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어조는 아니지만, 느껴지게 하는 감독님의 의도가 느껴져서 좋았다"라고 부연했다.

    안재홍은 '달콤, 살벌한 연인'과 '이층의 악당'을 무척 좋아하고 손재곤 감독의 팬이었다고 밝혔다. '해치지않아'에 출연하게 된 이유도 손 감독의 영향이 컸다고 전했다. (사진=디씨지플러스, 어바웃필름 제공)

     

    평소 무척 좋아하는 감독에게 출연 제안을 받으면, 왜 본인을 선택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 텐데 안재홍은 캐스팅 이유를 굳이 묻지 않았다며 웃었다. 그는 "어떤 얘기를 하면서 함께하자는 말보다는 손재곤 감독님 차기작이고, 이 이야기의 힘 때문에 저는 이미 너무 하고 싶었다. 이 이야기가 엄청 재미있고 모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해치지않아'의 타이틀롤을 맡게 된 것을 두고는 "태수가 동산파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미션을 받게 된 게, 제가 '해치지않아'의 타이틀롤을 맡은 심정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 저의 모습과 자신감 혹은 패기, 갈망을 좀 이용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진짜의 모습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뭔가 희화화하거나 눈에 힘을 잔뜩 줘서 캐리커처를 그린다기보다 오히려 더 사실적으로, 진심으로 태수의 그런 모습들을 제가 (연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부분들이 참 (극중 인물과 실제 내 상태가) 많이 맞닿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를 캐스팅하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라고 전했다.

    "손재곤 감독님께서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제게 말씀해주신 게 있어요. 태수라는 인물이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의 이야기를 운반하는 역할이니,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연기했으면 좋겠다고요. 이를테면 코미디를 막 만들기 위해서 뭔가 힘을 준다거나 하지 않고요. 더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연기해야 다른 인물들, 혹은 동물들과 조화를 이루어서 영화가 조화로워지고 재밌어진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도."

    ◇ 근사해 보이지만 사실은 절박해서 예민했던 태수

    안재홍은 '해치지않아' 언론 시사회 때 태수를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계약직 수습 변호사"로 소개하며 "그 위태로움 속에서 이 친구가 가진 절박함과 갈망이 잘 드러나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거대 로펌의 변호사라는 겉모습은 근사하지만, 학벌 콤플렉스가 있고 고용 상태도 안정적이지 못한 게 극중 태수가 처한 현실이었다. 절박함으로 인한 짜증과 분노가 폭발하는 장면이 바로 엘리베이터 씬이다.

    같은 회사에 다니지만 계약직 수습인 본인과 달리, 정식 변호사로 일하는 대학 동기(박형수 분)와 우연히 마주친 엘리베이터 안. 데면데면한 사이에서 예상되는 평범한 대화가 오가다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터져나간 직설 때문에 분위기는 싸해진다.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언급했더니, 안재홍은 "뭔가 그런 불편한 상황을 마주칠 때가 있지 않나. 1층이 아닌데 내리기도 힘든 상황이고"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안재홍이 맡은 태수는 M&A 전문 변호사가 되고 싶어 하는 계약직 수습 변호사로, 망하기 일보 직전의 동물원 동산파크의 새 원장으로 오게 된다. (사진=디씨지플러스, 어바웃필름 제공)

     

    이어, "친구 변호사는 '동문회 좀 나와.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지 않겠냐'라고 하는데, 그런 누군가의 손 내밈도 싫을 때가 있지 않나. 날 그냥 혼자 뒀으면 좋겠고, 나 이렇게 처량한 것 모르는 체해줬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라고 부연했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흔히 머릿속에서 '와~' 할 만큼 엄청나게 좋은 직업이지만, 그래서 무시 당할 때 느끼는 절박감은 더 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고 더 불안해하고 더 결핍이 크다고 생각했죠. 그게 클수록 동산파크 갔을 때 동물 탈 쓰자고 제안하는 태수의 마음이 성립된다고 생각했어요. 그 절박함이 크지 않고 '우리 한번 이렇게 해 보는 게 어떨까요? 재밌지 않을까요?' 하면 이 영화가 힘을 잃는다고 봤어요.

    태수의 갈망이 클수록 이 영화의 동력이 강력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실제 로펌 다니는 친구들과 많이 얘기했어요. 최대한 이해하려고 질문도 대화도 많이 했어요. 이 인물이 생각하는 성취욕이 어느 정도일까, 하고요. 이 프로젝트를 마치고 다시 로펌에 돌아갔을 때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동물원 밀어버리고 리조트 들어선다고 했을 때 이 인물이 느끼게 되는 공허함이라든지, 동물원과 로펌 중 어느 선에 자기가 서야 할지 갈등하는 그 마음을 잘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토록 바라던 정직원이 됐지만 동산파크 직원분들과 함께 해냈던 성취감을 저버릴 수 있을까요? 모든 걸 이뤄냈는데 모든 걸 다 잃은 듯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후반부에 태수가 JH(로펌)에 설 것인지 동산파크 직원 편에 설 것인지도 두 마음을 다 가져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 갈등이 커질수록 태수가 더 입체적으로,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전 작품보다 좀 더 호리호리한 모습을 유지한 것도 안재홍의 계산이었다. 그는 "(태수가) 제가 이전에 한 인물과 조금 다른 지점이 있다면 예민함을 많이 드러내는 인물이라는 거다. 예민함, 열등감을 많이 가진 인물이라서 그런 것들이 외형으로 보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약간 둥글둥글해 보이는 걸 조금은 깎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비쩍 마른 건 아니지만, 외적으로도 예민함, 열등감, 갈망이 보였으면 했다"라고 밝혔다.

    오래 사귄 연인이 있지만 신혼집 마련할 돈 정도는 모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결혼을 미루는 주만('쌈, 마이웨이'), 예능국의 흥행 보증 수표로 불리지만 사실은 지질한 부분을 숨기고 있는 범수('멜로가 체질'), 난방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사랑의 몸짓을 미루고 결국 돈 벌로 해외로 떠나는 한솔('소공녀') 등 현실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캐릭터를 꾸준히 선보인 안재홍.

    이번 '해치지않아'에서도 그런 모습이 나타난다. 다소 얄밉고 이기적인 부분이 있어도 끝내 관객을 자기 편으로 설득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안재홍은 태수의 '짠함'을 굳이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했던 건 '태수라는 인물을 사실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리는 것'이었다고. 안재홍은 "편집본을 보니 제가 의도했던 것과는 다르게 조금 짠한 맛, 발버둥치는 청춘의 모습이 잘 보이더라"라면서도 "누구나 공감하는 우리의 얼굴이지 않나"라고 전했다. <계속>

    배우 안재홍 (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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