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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제주 4·3 수장 학살'…일본인이 세운 위령탑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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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어둠 속 '제주 4·3 수장 학살'…일본인이 세운 위령탑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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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도가 품은 제주 4·3 ⑦] 70년째 어둠 속에 묻힌 수장 학살
    재판 없이 수장…지금껏 단 한 차례도 진상규명 이뤄진 적 없어
    추가 진상조사 담은 4·3 특별법 개정안, 국회 정쟁 속 2년째 표류
    대마도엔 일본인들이 세운 위령탑만…유족 "우리 손으로 세워야"

    ※ 제주 4‧3 당시 군‧경에 의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만 3만여 명. 이 중 '수장' 학살된 사람은 기록도 없을뿐더러 먼 타국 대마도까지 시신이 흘러가 여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제주CBS는 대마도 현지에서 '역사의 어둠 속에 묻힌' 그들을 추적했다. 3일은 마지막 순서로 7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진상규명도 이뤄지지 않고 우리 손으로 세운 위령탑조차 없는 현실을 보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생(生)의 기억조차 말살…제주 4·3 수장 학살의 비극
    ② "손발 철사로 묶여…" 대마도로 흘러간 제주 4·3 희생자
    ③ '시신 태우는 곳', 대마도에 남은 4·3 수장 희생자 흔적
    ④ 4·3 수장 시신 흘러간 대마도, 지금은 제주 쓰레기가…

    ⑤ 대마도에 떠오른 시신, "밀항한 제주인과 닮아"
    ⑥ 바다에 버려진 제주 4·3, 대마도가 품다
    ⑦ 어둠 속 '제주 4·3 수장 학살'…일본인이 세운 위령탑만
    (끝)

    4·3 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묘지에서 한 유가족이 통곡하고 있다. (사진=자료사진)
    제주 4‧3 당시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 수장된 희생자들은 일본 대마도까지 흘러가 먼 타국에서 제대로 눈을 감지 못하고 있다.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들이 왜, 어떻게, 얼마나 희생됐는지조차 모른다. 대마도에는 일본인이 세운 공양탑만 있을 뿐 우리 손으로 세운 위령탑도 없다.

    ◇ "왜 죽였나?" 지금껏 4·3 수장 학살 진상규명 없어

    제주4·3희생자유족회 송승문 회장이 지난 9월 29일 대마도 사고만에서 열린 '제3회 제주도 4·3사건 희생자 쓰시마·제주 위령제'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수장 희생자 유가족 대부분이 부모나 형제자매들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

    송승문(70) 제주4‧3희생자유족회 회장이 2일 제주CBS 취재진에게 한 말이다. 4‧3 수장 학살이 벌어진 지 70년이 지났지만, 여태껏 제대로 된 진상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4‧3 수장 희생자와 목격자 증언을 토대로 군‧경이 초토화 작전을 벌이던 1948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 사이 제주 전역에서 수장이 이뤄지거나, 1950년 한국전쟁 직후 예비검속 된 제주읍‧애월면‧조천면 주민 500여 명이 제주항 앞바다에서 수장된 사실만 전해진다.

    아울러 정식재판 없이 불법적으로 수장이 이뤄졌기 때문에 관련 기록도 현재로선 드러난 게 없다. 군‧경이 무더기 학살로 나중에 후환이 있을까 봐 청소하듯 시신의 흔적까지 없앤 것이다. 이때문에 수장 학살의 진상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르는 수장 학살 기록을 찾아내고, 살아 있는 목격자 증언을 확보해 수장 학살의 진상을 드러낼 의무가 있었다. 지난 2000년 '제주 4ㆍ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 특별법)'이 제정되고,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폭력에 대해 사과까지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4·3 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사진=자료사진)
    하지만 지금껏 수장 학살과 관련해 진상조사는 단 한 번도 없었다. 2003년 한 차례 4‧3에 대한 전반적인 진상조사 외에는 개별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제주도 또한 수장 학살 희생자 규모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다.

    무고한 양민이 공권력에 의해 대규모로 잔인하게 수장된 사건은 7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바닷속에 버려져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추가 진상조사 내용 등이 담긴 '4‧3 특별법 개정안'은 2017년 12월 더불어민주당 오영훈(제주시 을)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후 2년 가까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여‧야의 극심한 대립 속에 4‧3특별법 개정안은 처리되지 않고 있다. 지금으로선 연내 처리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송승문 4‧3희생자유족회장은 "피해자 유가족의 연세가 많은 상황이어서 하루빨리 수장 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가 필요하지만, 정쟁으로 추가 진상조사 내용이 담긴 4‧3특별법 개정안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출했다.

    ◇ "일본인이 세운 위령탑서 제를…우리 손으로 세워야"

    지난 9월 29일 대마도 북서쪽에 있는 에토 유키하루(62)씨가 세운 공양탑. 공양탑 앞에서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4·3 희생자를 추도하고 있다. 에토 씨는 70년 전 한국인 시신을 수습한 아버지 故 에토 히카루 씨의 뜻을 이어 지난 2007년 공양탑을 세웠다. (사진=고상현 기자)
    70년 전 4‧3 수장 시신이 흘러간 대마도에는 우리 손으로 세운 위령탑조차 없다. 70년 전 한국인 시신을 매장하거나 화장하는 등 장례를 치러준 대마도 현지인이 대를 이어 세운 위령탑만 있을 뿐이다.

    제주CBS 취재진이 지난 10월 15일부터 19일까지 일본 대마도 현지에서 확인한 희생자 위령탑은 대마도 서쪽 오우미 마을의 '대마도해협 조난자 추도비', 북서쪽 사고만에 에토 유키하루(62)씨가 세운 '공양탑' 등이다.

    특히 에토 씨는 70년 전 한국인 시신 수백 구를 수습해 장례를 치러준 아버지 故 에토 히카루(2007년 81세로 사망)씨의 뜻을 받들어 희생자를 위한 공양탑을 자비 250만 엔(한화 2600만 원)을 들여 세웠다.

    대마도 이즈하라 태평사에 있는 <표류자지령위>. (사진=고상현 기자)
    이밖에 대마도 남서쪽 이즈하라 시내에 있는 태평사에 '표류자지령위'와 '무연지제령'이 있다. 이 비석 아래에는 4‧3 당시 이즈하라 해안에 떠오른 한국인 시신 50~60구의 유골이 안치됐다.

    이처럼 우리 손으로 세운 위령탑이 없다 보니 4‧3 수장 학살 희생자 유가족은 현재 일본인이 세운 위령탑 앞에서 희생자를 추도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로 현재까지 4‧3 유가족이 대마도를 3차례 찾았지만, 그때마다 위령제를 연 곳은 모두 일본인이 세운 위령탑 앞에서였다.

    홍성효(72) 제주 북부예비검속 희생자유족회 회장은 지난 9월 29일 에토 씨가 세운 공양탑이 있는 대마도 사고만에서 열린 희생자 위령제에서 취재진을 만나 '우리 손으로 세운 위령탑이 없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다른 나라 사람이 세운 위령탑에서 제를 지내는 상황이 유가족으로서 굉장히 가슴이 아프다. 위령탑을 반드시 대마도에 세워야 하는데, 한‧일 양국 간 이해관계가 없으면 안 되고, 부지 등 예산도 들어가는 문제라 정부나 제주도가 나서줬으면 좋겠다."

    4‧3 당시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 제주 바다에 버려지고 일본 대마도까지 흘러간 희생자들. 정부와 제주도의 무관심 속에 유가족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다.

    지난 9월 29일 대마도 사고만에서 열린 4·3 수장 학살 희생자 위령제에서 서순실 심방이 희생자 넋을 위무하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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