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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감독 "완벽주의자 아니어서 현장 더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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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영 감독 "완벽주의자 아니어서 현장 더 즐거워"

    [노컷 인터뷰] 영화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 ②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을 만났다. (사진=황진환 기자)

     

    정지영 감독은 곧 74세가 된다. '가위, 바위, 보', '웃음소리' 등의 조연출을 맡고 '하얀 미소', '여자의 함정' 각본을 쓰던 그는 1982년작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로 데뷔했다. 이후, '추억의 빛', '거리의 악사', '위기의 여자', '산배암', '남부군',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 가지 이유', '블랙잭', '까' 등을 연출했다.

    비교적 최근 정지영 감독을 알게 된 관객들에게 그는 사회 고발적인 영화를 주로 만들어 온 인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한 사립대학에서 일어난 '석궁 테러 사건'을 바탕으로 한 '부러진 화살'(2012), 故 김근태 의원이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게 고문당한 이야기 '남영동 1985'(2012) 등이 최근작이기 때문이다.

    왜 다음 작품을 내놓는 데 7년이나 걸렸을까.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사태를 다룬 '블랙머니' 시나리오 작업에 오랜 시간이 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 준비하던 작품 두 개가 엎어졌다. 나이를 먹어서, 혹은 실력이 없어서 사람들이 날 안 찾는구나 하고 넘겼는데 알고 보니 그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불이익을 당한 것이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지영 감독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관해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라며 "바보 같은 짓"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영화 연출 외에 다른 걸 잘하지 못한다며 "나 영화감독 하고 싶어"라며 웃었다.

    일문일답 이어서.

    ▶ 이하늬는 테이크마다 직접 달려오는 감독은 처음 봤다며, 자기가 그 나이가 되어도 그런 열정적인 창작자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나는 다른 감독들이 어떻게 찍는지 잘 모르지 않나. 모니터를 보고 나서, 배우한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감독이 목소리로만 전달하면 '그렇게 해서 전달이 될까' 싶다. 연기자 눈 마주치면서 얘기하지 않으면 뭘 얘기하는지 모를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까이서 눈을 서로 마주 보면서 교감해야만 상대방 말뜻과 마음속까지 들여다보고 그걸(디렉션을) 소화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직접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 '남영동 1985'에 이어 이경영이 여기서도 악역으로 나온다. 캐스팅 배경은.

    '남영동 1985'에서도 나쁜 사람이었고, '부러진 화살'에서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고, 여기서도 나쁜 사람인데, 나쁜 사람을 일부러 한 건 아니다. 친하기도 하지만, 이경영 눈빛에서는 우리가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 무슨 역할이든, 선한 역할이든 악한 역할이든 이경영에게 맡기면 믿을 수 있다.

    ▶ 주연뿐 아니라 조연진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나는 한국에, 한국 영화에 좋은 자산이 있다면 그건 연기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좋은 연기자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게 흐뭇해. 영화 완성시키는 데도 상당히 커다란 자산이다. 내가 80년대부터 영화를 했잖아. 그때는 캐스팅하려면 힘들어. 안성기가 다른 영화에 출연하면 '쓸 사람이 없어~' 그랬다고. (일동 웃음) 요즘은 진짜 좋은 연기자들 너무 많아. 조한철, 허성태라는 사람은 이번에 처음 만났는데, 남들이 다 추천해서 그들이 나온 영화 보고 만나서 인터뷰해보고 그렇게 캐스팅한 거다.

    ▶ '남영동 1985' 이후에는 영화제 업무 등 다른 활동을 많이 했다.

    그건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고 자꾸 떠맡겨서. 그런 건 하기 싫다. (웃음) 나 영화감독 하고 싶어. (웃음) 그건 떠맡겨서 할 수 없이… 빼면 잰다고 그럴까 봐 하는 거고.

    영화 '블랙머니'에 나오는 배우들. 왼쪽 맨 윗줄부터 조진웅, 이하늬, 조한철, 문성근. 오른쪽 맨 윗줄부터 이경영, 강신일, 최덕문, 허성태, 이성민, 서현철 (사진=질라라비, 아우라픽처스 제공)

     

    ▶ 반독과점 영화인대책위원회 활동도 했는데.

    그것도 내가 안 하고 후배들이 했으면 좋겠어. 왕년에 그런 (일을 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후배들이 알고 자꾸 나한테 물어봐. (웃음) 그것도 할 수 없이 끌려들어 가서… (일동 웃음)

    ▶ 이런 다양한 활동이 영화 촬영 현장으로 돌아왔을 때 영향을 주었나.

    제가 영화 연출 외에 다른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영화 제작은 대표에게 맡기고, 영화제 일은 집행위원장에게 맡기고, 심사위원은… 그건 제대로 해야지. (웃음) 영화 보는 건 재미가 있으니까 그건 제대로 할 수 있지. 다른 비즈니스적인 측면은 내가 잘 못 한다.

    ▶ 영화감독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는데, 이번 '블랙머니'로 현장에 돌아와서 좋았던 순간이 있다면.

    현장은 즐겁다, 항상 즐거워. 현장에서 괴로운 감독도 있어. 자기 생각한 게 안 나오잖아? 그럼 난 그렇게 완벽주의자가 아니라서 잘 타협한다. 내가 생각한 것이 현장에서 안 나올 때도 물론 약간 괴롭긴 하지만 '아, 이게 최고겠구나' 하고 그걸 선택하고 만족하거든. 그걸 만족 못 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뭐, 백 번도 찍지. 나는 그걸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내 오랜 경험을 통해서 보면, 그건 그렇게 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완벽주의자가 아닌 것이 오히려 현장을 즐겁게 만드는 것 같다.

    ▶ 본인과 비슷한 시기 데뷔했던 분들이나 동년배 중 계속 상업영화 찍는 감독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네, 없다. (제 영화가) 재밌고 잘 만들어서 잘 되면 우리한테도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고들 한다. 반드시 나는 그러길 바란다. 투자자들이 그동안 소위 '구세대', 나이 먹은 사람들을 기피해 오지 않았나. 감각이 낡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이 영화가 흥행이 잘되면… 그 사람들도 이렇게 잘 만들 수 있구나 하고 다시 찾으면 되니까. 그 사람들(동년배 감독들) 다 준비하고 있어. 놀고 있는 게 아니다. 다 준비하고 있는데 기회를 못 만날 뿐이다.

    ▶ 공백기가 길었는데 제작 도중 무산된 작품도 있나.

    나? 나는 그 기간에 두 작품을 못 했다. 둘 다 사회 정치적인 영화 소재나 테마를 다룬 게 아닌데도. 하나는 사극이고 하나는 멜로 드라마였는데 둘 다 안 됐어. 되는 것처럼 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안 되는 걸 보면서 '내가 실력이 없으니까', '나이를 먹었으니까' 사람들이 안 찾는구나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기 때문에 안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국내 문화예술계를 엄청나게 위축시킨 사건이었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생존권을 침해하는 일 아닌가. 말이 안 된다. 하여튼 그건 바보 같은 짓이야. 나라를 위해서도 바보 같은 짓이야.

    ▶ 그런데 엎어진 작품 중에 멜로가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아니 왜 놀라워? 정지영은 이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지. 나도 먹고살아야지! (일동 폭소)

    정지영 감독은 우리나라 나이로 74세이지만, 여전히 상업영화를 찍는 '현역' 감독이다. 그는 동년배 감독들이 놀고 있는 게 아니라 작품을 준비하고 있으며 기회를 못 만났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진=질라라비, 아우라픽처스 제공)

     

    ▶ 그러고 보면 당대 잘 나가는 여성 배우들과 작업해 왔다.

    감독은 나이 먹어도 영화를 계속하는데 연기자들은 나이 먹으면 자꾸 멀어지더라고. 왜 그런가 생각했더니 스타성이 젊은 아이들에게 밀린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위축되는 게 아닌가 싶다. 안성기 씨처럼 나이 먹으면 나이 먹은 대로 계속 출연해야 하거든. 관객들이 좋아해 줘서 자기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건데, 그 관객들 생각해서라도 계속 연기하는 게 관객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화려한 시절만 생각하지 말고 작은 역할이 주어지더라도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했으면 좋겠다.

    ▶ 본인의 대표작을 꼽는다면.

    '블랙머니'지! (웃음) 뭐 여하튼 내가 만든 모든 영화가 내 자식이지 않나. 관객들한테 사랑을 받았건, 상을 받았건 나는 다 아깝고 사랑스럽지. 좀 더 이쁜 자식을 낳아야 했는데, 좀 부족했다 이런 건 다 있다.

    ▶ 어떤 소재에 끌리는지도 궁금하다.

    소재는 너무 많다. 우리가 영화 만들 소재는 너무 많아. 거기서 내가 선택하는 것들은 주로, 실제 사건이 묻히거나 그 진정한 의미가 왜곡돼 전해졌거나 아니면 이것이 우리들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걸 모른 채 하나의 지나간 사건으로만 생각하는 것들이다. 그걸 끄집어내서 의미를 묻고 싶은 거다. 관객이 나를 찾아주기만 하면 영화 만들 수 있는데, 관객이 나를 버리면 그때 떠나야지. (웃음)

    ▶ 영화란 어떤 의미인가.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는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수단이다. 어떤 사람들은 일부 지식인들과 나누고 싶어 하고, 어떤 사람들은 철저히 일반 대중과 만나고 싶어 하는데, 나는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과 만나고 싶어 한다. 욕심이 많아, 내가. (웃음)

    ▶ '블랙머니'는 새 정권에서 선보이는 영화인데 만들 때 기존과 차이가 있었다면.

    정권 차원을 넘어선 영화라고 봐야지, 이 영화는. 이건 어느 정권을 비판하거나 하는 영화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금융자본주의의 문제를 관객들과 함께 들여다보자는 거다. '남영동 1985'는 옛날 군사정권 비판하는 게 있으니 박근혜 정권에선 싫어할 수도 있었겠지. 근데 이건 그런 차원을 넘어선 영화라고 봐야 한다.

    ▶ 지금까지 들었던 것 중 제일 마음에 드는 반응은.

    대부분 좋게 재미있게 봤더라. 특별하게 딱 맞는, 촌철살인은 모르겠고… 한 친구가 너무나 재미있게 보고 왔는데 화가 난다고 얘기하더라. 재미있게 봤는데 화났다는 건 (이치에) 안 맞잖아. 근데 이 영화는 그런 느낌을 주게 하거든? 상당히 재미있는 표현 같다고 생각했다. (웃음) 나는 거기(영화)에 분노도 있고 감동도 있고 복합적으로 생각했는데 그 친구는 그렇게 표현한 거지.

    ▶ 혹시 목표 관객수를 채우면 어떤 걸 하겠다 하는 공약이 있나.

    개봉하기 전에 스태프 연기자들한테 공언한 건 400만 들면 동남아 여행 가자고 했다. 근데 여행 갈 거 같아. (일동 웃음)

    ▶ 본인에게 달리는 수식어가 많은데, 어떤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나. 또 다음 작품은 언제쯤 선보일지도 궁금하다.

    음… 제일 좋은 건 영원히 청년 같은! 그 말이 제일 좋다. 전설, 거장, 명장 뭐 이런 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웃음) 내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 그냥 괜찮은 감독이지 엄청난 감독은 아닌 것 같다. (웃음) 거장은 임권택 감독님이 거장이지. 여튼, 다음 작품은 빨리하겠다. (웃음) <끝>

    정지영 감독이 8일 오후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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