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기방도령' 육갑 역 배우 최귀화를 만났다. (사진=판씨네마 제공)
※ 이 기사에는 영화 '기방도령'의 내용이 나옵니다.
조선 시대에 '남자 기생'이 있었다는 상상력으로 출발하는 사극 '기방도령'(감독 남대중)은 코믹 블록버스터를 자처하는 작품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웃음기는 빠지지만, 초중반까지는 '웃어라' 하고 판을 깔아준다.
최귀화는 주인공 허색(이준호 분)이 우연히 숲속에서 만나는 수상한 사나이 육갑 역을 맡았다. 머리와 수염은 덥수룩하지만, 옷을 입지 않아 알몸이라는 점에서 등장부터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귀화는 알몸 등장씬을 두고 "굉장히 부담스러웠다"며 "꼭 필요한 장면인가 싶었다"라고 말했다. 상반신 노출도 쉽지 않았지만, 남 감독의 뜻이 강해 알몸 등장씬은 그대로 살아남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 그동안은 본인이 나온 영화를 잘 못 봤는데, 이번엔 정말 관객처럼 봤다고 하는 인터뷰를 봤다. 기대만큼 영화가 잘 나왔는지.저도 어제 처음 본 건데, 진짜 긴장하면서 들어갔다. 관계자들 와 있지, 기자님들 계시지, 긴장하면서 조용히 들어갔는데 시작 얼마 안 돼서 저도 모르게 그냥 관객이 되더라. 제가 너무 크게 웃어가지고 쑥스러워서 입 막고 그랬는데. (웃음) 어떤 이윤지 모르겠는데 저도 모르게 빠져들었던 것 같다.
▶ 원래는 코미디를 좋아하지 않는다던데, '기방도령'의 어떤 점에 매료됐나.아마도 감독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시나리오 읽고 제 취향은 아니었기 때문에 좀 고민하는 상황에서 감독님 뵙게 됐다. 감독님이 너무 유쾌하시고 자상하시고 너무 말씀을 재밌게 하시고 그런 얘기를 수 시간 듣다 보니까 감독님한테 믿음이 갔다. 이분은 이 코미디를 정말 잘 이끌 수 있는 분이구나, 믿음이 가서 '같이 한번 해 보시죠' 했다.
▶ 남대중 감독이 캐스팅 제의하면서 어떤 주문을 했는지 궁금하다.감독님은 두 번째 작품 하시는 거고 상업영화는 처음이었다. 배우와 자주 만나려고 노력하시더라, 촬영장에서. 언제 시간 어때요, 하면서 또 만나게 되고. '귀화 씨, 내가 일산으로 갈게. 밥 먹읍시다' 하면서 집 앞으로 찾아오신 경우도 있다. 자기가 이미 (시나리오를) 써 놓긴 했지만 배우의 장점을 발견하고 싶었다고 하더라. 그러려면 친해져야 했다. 이 배우가 어떤 장점이 있는지 캐치하고 싶어서 계속 만나자고 했던 것 같다. 그것을 육갑에 접목해서 편하게 연기하도록 해줬다.
최귀화는 '기방도령'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나이 육갑 역을 맡아 코믹 연기를 원 없이 했다. (사진=판씨네마 제공)
▶ 육갑은 짠한 캐릭터로 나온다. 고려 왕족이었으며, 25살인데 숫총각이라는 설정도 있었다.왕족 출신이라는 걸 제가 제안하긴 했지만 감독님은 (그걸) 크게 생각하진 않았다. 이 사람은 정체가 없기 때문이다. 육갑이 왕족 출신이라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믿지도 않았다. 전 진짜 그렇다고 믿고 연기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는 좀 불쌍한 측면이 있다. (25살 나이) 제안도 제가 했다. 어리게 갔으면 싶어서. (웃음)
▶ 첫 등장씬부터 파격적이었다. 대역을 썼다던데.(대역이) 용기 내서 하신 거니까 감사하게 생각한다. (저는) 나체로 해야 한다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꼭 필요한 장면인가 싶었고 옷을 입고 나와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 평소 부끄러움이 많다고 했는데 상반신 노출은 부담스럽지 않았나.네. 다 벗는 것보다는… 상반신 노출도 쉽진 않았다, 날이 너무 추워서. 자세히 보시면 온몸에 풀을 다 발랐다. 각질처럼 일어나는 걸 표현하려고. 이게 시간이 지나서 마르니까 조금만 움직일 때도 아팠다. 그런 고통이 있었는데 전체 누드 하시는 분은 진짜 힘드셨을 거다, 온몸을 다 했으니까.
▶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을 것 같다.그렇다. 지금까지 해왔던 역할 중에선 그렇다. 원래 시나리오가 가을 배경이다. 투자가 제때 이뤄지지 않았고 밀리면서 가을 배경을 겨울에 찍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 배경은 가을이다 보니까 옷도 얇고 많이 껴입지도 못했다. 저는 그나마 옷이 커서 좀 껴입을 수 있었는데 여배우들은 정말 추웠을 거다. 다 얇은 실오라기 같은 옷 입고 촬영했어야 하니까 고생들 많이 했다.
▶ 코믹 연기도 잘할 것 같아서, 코미디 장르에 도전하기까지 망설였다는 인터뷰를 봤을 때 의외라고 생각했다.이번에는 정말 코미디를 담당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과거에도 웃음 주는 역할은 했지만, 저는 좀 사회적인 걸 좋아한다. 사회 고발 영화라든지 그런 깊이 있는 얘기를 좋아한다. 근데 배우로서 항상 좋아하는 것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번처럼 본격적인 코미디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감독님과) 대화 나누면서 한 번쯤은 해 봐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최귀화가 맡은 육갑은 첫 등장부터 범상치 않다. 머리카락과 수염을 길게 기른 채 알몸으로 나온다. 길고 긴 자기소개를 하면서 음률을 넣어 코믹하게 소화했다. (사진=판씨네마 제공)
▶ 남을 웃기는 연기가 생각보다 어렵다고 들었다. 그래서 더 부담이 컸던 건가.웃겨야 된다는 부담감은 당연히 있다. 웃겨야 하는 장면에 지문이 정확히 정해져 있었다. 다행스러운 건, 제가 긴 시간 공연을 하면서 다양한 작가님들과 코미디를 해 봐서 코미디 호흡은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다. 연극하면서 스스로 테스트를 많이 했다. 같은 대사와 같은 장소에서 똑같이 연기했는데, 어떤 관객은 웃고 어떤 관객은 웃지 않는다. 결론은 그거였다. 사람 성향도 있지만, 초반에 진실하게 상황을 쌓아가지 못하면 후반에 원하는 방향의 웃음을 주지 못한다는 거다.
매 순간 진실된 연기를 해야 한다. 가짜 같은 연기를 하면 다 들통나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된다. 진실된 연기를 하려고 저는 노력했다. 왕족 출신이라는 것도 사실은 대본에 없던 건데, 그런 어떤 진정성 있는 연기를 위해서 넣었다. 전사를 넣어야만이 허색과 육갑의 어떤 긴장감이 계속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게 없다면 (긴장감이) 긴 시간 유지가 안 된다. 한 번 웃겨버리고 끝난다. '나는 거지 같지만 왕족이야, 너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지만 아주 천한 예인이야' 하는 언밸런스함이 생겨나지 않나. 상의한 끝에 (제가) 왕족이라는 걸 강조하면서 가게 됐다. 그 관계성 때문에 웃음 주는 포인트가 많아졌다.
▶ 육갑은 첫 등장 장면도 그렇지만, 기방에 가서 자기 소개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거의 랩을 하다시피 하는데 그 장면은 한 번에 오케이가 나온 건가.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감독님 대사는 한 세 줄 정도였다, 제 소개가. '저는 뭐, 뭐를 했던 육갑이라 하오' 이게 끝이었는데, 저 혼자 왜 이름이 육갑인가 고민했다. 아, 얘는 육십 간지의 도를 닦았다니까 십이지간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제가 육십 간지 십이지에 대해 조사해서 대사를 써서 감독님한테 보내드렸다. '어, 좋다!' 해서 그게(대사가) 한 대여섯 줄로 됐다. 보름 있다가 감독님이 그걸 한 20줄로 보낸 거다. 이건 너무 길다고, 그냥 짧게 하자고 하니, 단호하게 '이건 너무 재미있는 장면'이라고 하더라. 이 긴 대사를 대화로 한다는 게 너무 납득이 안 되는 거다. 내가 빠르게 음률을 넣겠다고 했다. 저는 (이 장면이) 재미없었다. 심지어 그렇게 랩처럼 길게 했는데 중간에 편집됐다. (웃음)
▶ '기방도령'에 나오는 주요한 코믹 포인트를 본인이 살렸다는 생각은 안 했나.전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항상 작품 할 때 작품 전체가 좋아야 모두 산다고 생각한다. 그건 경험치로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구 하나 잘한다고 해서 영화가 잘 되지는 않는다. 알순이(고나희 분) 그 어린 친구도, 허색, 해원이(정소민 분), 난설(예지원 분)은 물론이거니와 잠깐 나오는 열녀들까지도 다 각자의 몫을 했기 때문에 작품이 개인적으로 만족스럽지 않나 생각한다.
지난 10일 개봉한 영화 '기방도령' (사진=판씨네마 제공)
▶ '기방도령'은 사극이지만 육갑의 경우 대사에 현대어를 유연하게 섞는다. 자칫하면 튀어 보여서 위험 부담이 있었을 것 같은데, 연기하며 어땠나.우리가 기존에 알던 사극 톤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주인공들, 허색이랑 해원이다. 감독님이 그분들은 그렇게 가길 원했다. 사실 저도 대본엔 사극 톤이 있었다. 육갑은 정체가 모호한 역할이니, 굳이 나까지 사극 톤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럼 (배역에) 갇힌다고 제안드렸다. 자유롭게 연기하는 게 좋겠다고 했더니, (감독님도 그게) 맞는 것 같다고 해서 일상적인 연기를 하게 됐다.
▶ 작품에 들어가면 활발하게 의견을 내는 편인가 보다.
'범죄도시' 할 때 강윤성 감독님, '기방도령' 할 때 남대중 감독님과 의견을 많이 나눴다. 이전 작품은 주인공이 따로 있고 저는 일정 부분만 책임지면 됐는데 (이번엔) 이끌어야 되는 부분도 상당히 있다 보니까, 잘 수행하기 위해서 이런 게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 거다. 다행히 잘 받아주셨다.
▶ 아이디어가 많다 보니 애드리브로 탄생한 장면도 많았을 것 같다.(허색에게 육갑이) '너, 나 이러려고 만나?' 이 부분도 있고, 현장에서 감독님이 (허락)해 주신 건 '이 말의 이름은 허색마(馬)라고 하는 거다.
▶ 사극은 촬영 환경 면에서 쉽지 않은 장르로 꼽힌다. 경험해 보니 어떻던가.맞진 않는다. (다른 배우들도) 사극 한 번 하고 나면 3년 동안 안 한다고 다짐을 한다고 하더라. 정~말! 힘들다. 육체적으로, 시간적으로, 정신적으로 한 3배는 힘든 것 같다.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고. (현대극이면) 10분이면 딱 되지 않나. (사극은) 분장 2시간, (분장) 벗겨내는 데 30분이다. 화장실 제대로 못 가지, 장소가 다 산 속이고 개울가라서 모기 많고 더울 땐 덥고 추울 땐 춥다. '아, 이래서 배우들이 사극을 힘들어하는구나' 했다. <계속>
배우 최귀화 (사진=판씨네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