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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금난새 “70대 나이에도 1년에 100회 공연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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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반

    지휘자 금난새 “70대 나이에도 1년에 100회 공연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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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 데뷔 40주년 지휘자 금난새
    1980년 KBS 교향악단으로 시작
    도전 위해 수원시향으로 가서 지휘봉 잡아
    독일의 문화 보편화, 굉장한 쇼크였다
    8년 동안 농촌 찾아가 오케스트라 연주
    연주 외 청소년 육성, 연합 오케스트라까지
    20년간 1년에 100회 공연, 사흘에 한 번꼴
    올 9월 서울예고 학생들과 런던 연주 예정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 1 (18:15~19:55)
    ■ 방송일 : 2019년 6월 25일 (화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금난새 (지휘자)


    ◇ 정관용> 클래식 지휘자 하면 여러분 누가 떠오르십니까? 저는 딱 한 분밖에 안 떠오릅니다. 바로 금난새 선생님. 내년이 데뷔 40주년이 된다고 그래요. 왕성한 활동을 지금도 하고 계신 금난새 씨를 오늘 함께 만나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금난새> 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정 선생님.

    ◇ 정관용> 현재 맡고 계신 직함이 성남시립교향악단...

    ◆ 금난새> 총 감독.

    ◇ 정관용> 총 감독 겸 상임 지휘자.

    ◆ 금난새>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다음에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 금난새> 네, 제가 창단한 오케스트라고 한 20년 됐고요


    ◇ 정관용> 서울예고 교장.

    ◆ 금난새> 네, 교장도 6년째 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서울예고 출신이시죠?

    ◆ 금난새> 네, 서울예고 다녔습니다.

    ◇ 정관용> 모교 교장도 지금 맡고 계시고.

    ◆ 금난새>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어이고. 몸이 한 3개 되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 금난새> 그렇긴 하죠.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습니다. 벌써 40주년이 곧 오고 벌써 나이가 70이 넘었네요. 그래도 이렇게 일할 수 있다는 것, 제가 하고 싶은 거를 하게 되니까 기쁩니다.

    ◇ 정관용> 네, 원래 작곡가 출신이시잖아요.

    ◆ 금난새> 여기 제가 공부할 때 지휘과가 없었고 그래서 저는 대학을 작곡과 나왔고. 그리고 독일에 가서 지휘과로 들어갔죠. 그래서...

    ◇ 정관용> 그러니까 애초에 음악을 하시면서부터 지휘에 관심이 많으셨던 거예요?

    ◆ 금난새> 네, 관심이 있었습니다. 번스타인의 청소년 음악회를 보고 지휘자 되려고 꿈을 꾸었지만 선생님 없고 과가 없으니까.

    ◇ 정관용> 우리나라에는 없으니까.

    ◆ 금난새> 네, 그래서 이제 대학 들어갈 때 작곡과 들어갔고요. 저 혼자 공부했죠. 독학이라고 그럴까. 중요한 것은 다른 학교와 달리 살 수가 없잖아요. 그 악기가 없으니까.

    ◇ 정관용> 지휘는 악기가 아니잖아요.

    ◆ 금난새> 아니, 내 말은 지휘자가 되려면 악기가 있어야 되는데.

    ◇ 정관용> 여러 악기가 다 있어야...

    ◆ 금난새> 오케스트라라는 게 크고 작게 있는데 제가 그런 기회가 없고 그래서 지금 생각하니까 대학생이 됐을 때 제가 학생들을 모아서 구슬려서라고 할까, 한 20명 정도의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습니다.

    ◇ 정관용> 학부 때요?

    ◆ 금난새> 네. 그러니까 그게 1966년도입니다. 그게 제가 지금 생각하니까 저의 직업 지휘자라는 역할에도 맞았고 그 경험이 중요했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음대에 기악 전공으로 온 학생들이 많으니까.

    ◆ 금난새> 많았죠. 서울예고 학생들이 있고 다른 대학에도 가 있고 그래서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 하는 게 중요하지 않나. 이렇게 강연했지만 사실 친구들 입장에서는 저렇게 하고 싶으니까 봐주자도 있었겠죠. 그래서 이렇게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설득하고 사실 이런 것이 지휘자의 역할에 굉장히 큰 거거든요.

    ◇ 정관용> 그렇죠.

    ◆ 금난새>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 있잖아요.

    ◇ 정관용> 그러니까 지휘과가 아예 없는 대학에, 서울대학에 들어가셔서도 혼자 지휘과를 만드신 거네요.

    ◆ 금난새> 만든 거나 마찬가지죠.

    ◇ 정관용> 세미교향악단을 만드신 거고.

    ◆ 금난새> 그렇죠. 만들고 나서도 연습장소도 없을 때 미국 공보원이 미대사관 옆에 있었어요. 그 건물이 2층 강당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왜냐하면 종로에 있잖아요. 광화문에 있으니까 교통이.

    ◇ 정관용> 편하죠.

    ◆ 금난새> 편하죠. 그리고 그 당시 66년도에 벌서 냉난방이 되고 그래서 저는 연습실을 가지려고 USIS죠. 그 당시 미국 공보원이. 원장 테너 씨한테 면담을 해서 앙상블이 여기 연습실로 하면 좋겠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그가 물론 처음부터 좋아하지는 않았죠. 왜냐하면 강당을 무료로 쓴다는 걸 느꼈잖아요. 그랬을 때 그때 참 희한한 게 제가 물론 제가 연주를 하고 모차르트, 베토벤도 하겠지만 그거 연주할 때마다 미국 작품을 연주하겠다 이렇게 건의를 했어요. 그때 이분이 듣더니 그냥 That’s good idea, 이런 대답이 나온 거예요. 그래서 저는 사실 연습실 빌리는 걸 통해서 인생에 너무나 중요한 어떤...

    ◇ 정관용> 협상.

    금난새 지휘자 (사진=연합뉴스 제공)

    ◆ 금난새> 협상을 한다든지 이럴 때라든지 그다음에 자기의 꿈이 있지만.

    ◇ 정관용> 소통과 협상.

    ◆ 금난새> 그게 상대에게도 이익이 돼야지 무조건 내 것만 이야기 한다고 되나... 그래서 그 하나의 만남? 저한테 큰 선물이었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젊어서부터 핏속에 지휘자의 피가 흐르신 거예요. 지휘자가 하는 게 뭡니까? 결국 다양한 악기의 소리를 조화롭게 앙상블을 만들어 내는 거고 앙상블이 되려면 서로서로 이 주장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하는지 협업해야 되고 어떨 때는 협상도 잘해야 되고. 그 역량을 이미 어느 정도 갖고 계셨던 거예요.

    ◆ 금난새> 칭찬하는군요. 네. 그런 점이 고맙다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 순간 그냥 연습실만 달라 했으면 제 팔자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 정관용> 네, 그래서 내년이 지휘자로서 데뷔 40주년이라고 말하는 건 첫 번째를 뭐로 꼽는 거예요? 그러니까.

    ◆ 금난새> 그냥 이렇게 언론이나 방송에 하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저는 진짜 아까 그런 이야기처럼 지휘자의 역할이라는 것이 다른 음악가들,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나 자기 음악을 통해서 자랑하는 그런 쪽보다는 서로 축구 감독처럼 어떻게 하면 서로 어울리게 하느냐 이거잖아요.

    ◇ 정관용> 그렇죠.

    ◆ 금난새> 그런데 하여튼 저는 40년 동안 엄청 많은 연주를 하고 엄청 많은 다른...

    ◇ 정관용> 제가 조금 아까 여쭤본 게 뭐냐 하면 40년 전인 1980년에 어디서 첫 연주를 하신겁니까

    ◆ 금난새>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직업으로써 시작한 것이 1980년 KBS 교향악단이었어요.

    ◇ 정관용> KBS 교향악단.

    ◆ 금난새> 제가 첫 80년 1년은 국립교향악단에서 일하게 됐고 81년도 KBS 교향악단이 되고 그다음에 제가 거기에 12년 있었어요.

    ◇ 정관용> 12년.

    ◆ 금난새> 그다음에 수원시향을 맡게 됐어요. 거기 가게 됐고 그다음에 또 경기필하모닉도 하게 되고. 20년 전에 제가 만든 민간 오케스트라를 또 만든 거죠. 그러니까 학생 때 만들었던 것처럼 또 만들고. 지금은 그거를 병행합니다.

    ◇ 정관용> 그때 KBS 12년 계시다가 KBS 교향악단 대기업에 있다가 수원시향, 중소기업으로 가셨다. 이런 평가들이 있었거든요.

    ◆ 금난새> 네, 그랬죠.

    ◇ 정관용> 그때 왜 가셨어요?

    ◆ 금난새> 저는 KBS 있을 때도 왜 나는 서울에 KBS에만 있어야 되나. 만약에 우리가 문화 정책이 있다면 KBS에 있다가 제주도나 부산에 가서도 일을 해야 되지 않나, 이런 생각을 사실은 했어요. 그러나 우리 음악계의 흐름은 좋은 오케스트라 있으면 거기 오래 있으려고 할 거 아니에요.

    ◇ 정관용> 그러니까요.

    ◆ 금난새> 그래서 저는 한번 도전하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편하게 이야기하면 좋은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당연히 좋은 지휘자라고 할 수 있지만, 회사가 망가진, 아니면 아직 부족한 회사를.

    ◇ 정관용> 키우는.

    금난새 지휘자 (사진=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유튜브 라이브 캡쳐)

    ◆ 금난새> 키우는 것도 지휘자의 역할이 아닐까. 제가 뭐 자랑하고 싶은 점도 없지 않아 있는데 수원 했을 때 수원 옆에 삼성전자가 제가 원하지 않았는데 지원하겠다고 왔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하니까. 바로 그런 것을 제가 중요시하고 나중에 삼성전자는 야외, 원래 조기축구장으로 할 데를 잔디를 놔서 야외음악당을 지어줬어요.

    ◇ 정관용> 만들어 주고?

    ◆ 금난새> 시하고. 저는 우스운 이야기로 수원이 갈비로 유명한데 그런 거보다 오히려 갈비도 유명하지만 오케스트라도 유명해야 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한 거죠. 그래서 제가 볼 때 제 피를 이야기하셨는데 저는 보기하고 다르게 도전적이고 창의적이고 새로운 것.

    ◇ 정관용> 도전, 새로운 것.

    ◆ 금난새> 그리고 제가 제 일생의 하나 뭐라고 할까, 모토라고 그럴까.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60년대 케네디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 연설을 했을 거 아니에요. 거기에 유명한 말이 국가가 우리에게 뭘 해 줄지 묻지 말고 우리가 국가를 위해서 뭘... 그런 이야기 있었잖아요. 저는 그게 제 머리에 박혔다고 할까? 그래서 제 인생에서 늘 누가...

    ◇ 정관용> 내가 이 사회 공동체에 뭔가 할 일?

    ◆ 금난새> 그런 관점으로 너무 많이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냥 좋은 회사의 사장들 좋은 거 알지만.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래서 예술가, 또 특히 지휘자 가운데 아주 괴팍하신 분들도 많잖아요.

    ◆ 금난새> 그럴 수 있어요.

    ◇ 정관용> 은둔생활 하시는 분도 많고. 그런데 우리 금난새 선생님은 클래식의 대중화, 그걸 앞장서 솔선수범, 실천해 오셨습니다. 또 그래서 제가 조금 아까 처음 시작할 때 클래식 지휘자 하면 여러분, 누가 떠오르세요? 아마 대한민국 국민의 거의 90% 이상이 금난새, 이럴 겁니다.

    ◆ 금난새> 저는 아까 한국에서 작곡과 나왔고 거기에서 지휘를 배웠지만 6년간 있을 때 지휘만 배운 게 아니라 독일이라는 사회를 저 나름대로 보는 계기가 되었고 그리고 또 거기에서 느낀 것 중에 중요한 부분은 문화라든지 생활의 모습이 너무 대도시에 집중돼 있지 않고 정말 보편적이었다는 거죠. 그게 부러웠다는 거죠. 그러면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 돌아보면 우리가 모두 대도시로 나라가 발전해야 되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만 그거를 벗어나야 되지 않나.

    ◇ 정관용> 그러니까 독일은 이미 70년대 초 그때.

    ◆ 금난새> 그때 벌써.

    ◇ 정관용> 지방까지도 문화적 혜택이 있더라.

    ◆ 금난새> 있죠. 실제로 문화적인 것뿐만 아니라 치즈나 우유도 지방이 더 좋은 거 먹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그게 단순한 것 같지만 저에게는 굉장한 쇼크였어요. 그래서 제가 KBS 지휘자였지만, 일했지만 제가 12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지방공연을 갈 때 제가 한 거예요. 그러면 다른 지휘자에게는 내가 뉴욕에 갔다든지 외국 간 것을 내세울 수도 있지만 저는 지방 공연을 상반기, 하반기 간 거를.

    ◇ 정관용> 그렇게 지방을 다니실 뿐만 아니라 해설이 있는 연주회. 이런 거를 거의 처음 만드셨잖아요. 그렇죠?

    ◆ 금난새> 그렇죠. 그게 92년도 같습니다.

    ◇ 정관용> 사실 솔직히 해설 없으면 잘 모르는 사람들...

    ◆ 금난새> 모르는 사람 많아요.

    ◇ 정관용> 아니, 안 가요.

    ◆ 금난새> 어떤 때는 고문을 당하죠. 그래서 그게 아니라 이런 배경이라든지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를 마치 자기 안방에서 듣는 것처럼 그 분위기를 만든다는 거죠. 그리고 절대 저는 교수처럼, 선생님처럼 너무 연도가 어떻고 형식이 어떻고 그런 이야기보다는 판타지, 그 음악이 가지는 판타지. 어떻게 보면 제가 틀린 판타지를 이야기함으로써 오히려 청중들이 그거를 통해서 새로운 걸 자기네들이 발견한다. 저는 그런 기법이라고 할까. 그래서 그것 때문인지 지금도 연주가 많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아무튼 지방 곳곳을 다니시는 거, 해설이 있는 연주회, 심지어는 산간벽지. 울릉도, 이런 데도 가셨어요.

    ◆ 금난새> 네, 갔습니다. 그때 아까 케네디 얘기했지만. 울릉도의 소년은 오케스트라 못 듣고 클 거 아니에요.

    ◇ 정관용> 한 번도 못 듣겠죠. 현장에서 듣는 것은.

    ◆ 금난새> 없는 거죠. 그래서 그런 친구들에게도 가야 되겠다. 이런 것 있고요. 저는 아까 두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교장이라 하지만 저는 거의 8년 동안 군 단위의.

    ◇ 정관용> 최근 8년?

    ◆ 금난새> 네. 군 단위의 농촌, 5만, 3만의 군 단위의 40~50명의 오케스트라에 제가 지휘를 했어요. 그게 KYDO라 그럽니다. Korea Young Dream Orchestra. KYDO 해서 그거를 제가 8년 했어요.

    ◇ 정관용> 그러면 전국의 군 단위를 다 다니셨어요?

    ◆ 금난새> 다 갔어요. 그러니까 이런 거는 사람들이 몰라요.

    KYDO 농어촌희망청소년오케스트라 재미청소년재능기부단 발대식 (사진=연합뉴스 제공)

    ◇ 정관용> 그런 데 가시면 관객이 많이 와요?

    ◆ 금난새> 관객이 오는 게 아니라 그 아이들에게 음악을 통해서 서로 옆 친구와 소통하는 그런 거잖아요. 거기 선생님들이 다 있어요. 지휘자들이.

    ◇ 정관용> 주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 금난새> 네, 초등학교... 그런데 제가 의의 있다고 말한다면 울릉도 간 것도 의의가 있지만 그 아이들이 첫 회 때 악기를 들고 200명이 각 20군에서 10명씩이니까 세종회관에 왔을 때 그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을 전 악장을 연주했어요. 굉장한 거라고 저는 생각하고 싶어요

    ◇ 정관용> 그냥 군 단위로 찾아가서 연주만 하는 게 아니라 거기 청소년들을 또 육성해서.

    ◆ 금난새> 육성하는 거죠. 다 만들어 놨어요.

    ◇ 정관용> 연합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 금난새> 연합 오케스트라를 한 거죠. 그거를 8년을 했는데 작년에 그것이 취소됐다고 할까요? 왜냐하면 그게 마사회에서 했는데... 올해부터 다시 하겠다고, 그래서 올해 기뻐요. 그 음악회를 인천에 새로 생긴 홀에서 이제 한 200명이든 150명이든 와서 하겠죠. 그래서 이런 식의 훌륭한 솔리스트, 위대한 솔리스트들도 우리나라의 자랑으로 나와야 되지만 음악을 통해서 심성을.

    ◇ 정관용> 키우는.

    ◆ 금난새> 키우고 또 지방, 시골에 다니지만 오케스트라를 할 수 있다, 그런 꿈을 우리가 서로 나눠야 된다. 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그럼요. 지난 40년 동안 아마 본인 스스로도 눈시울이 불거질 만큼 감동적이었던 순간들이 떠오르실 텐데 예를 한두 가지만 들어봐 주세요.

    ◆ 금난새> 진짜 너무 많은데 제가 도시는 작년인가 경상도인데 한 작은 마을이었어요. 그것도 군 단위의 마을인데 그때는 우리 오케스트라가 가서 연주를 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처음 듣는 음악이니까 호기심과 막 전부 초등생에서, 초등 4학년에서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었어요. 한 1000명인데.

    ◇ 정관용> 1000명.

    ◆ 금난새> 네, 그래서 제가 너무 귀여워서 그냥 어떤 반응을 할까 해서 I like you, 이렇게 해 봤어요. 영어로. 그랬더니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금방 I like you to. 그러니까.

    ◇ 정관용> 다들 영어 잘해요.

    ◆ 금난새> 그러니까 저는 영어를 테스트 한 게 아니라 그 정도로 소통이 되고 벌써 지방의 아이들도 영어를 하고. 알면 뭐합니까? 말을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런 순간이 기쁘다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우리 방송 듣다가 유선철 님께서 선생님, 반갑습니다. 그런데 함자가 너무 예쁜데 실명 맞으시죠? 이렇게 질문하셨어요.

    ◆ 금난새> 네, 실명 맞습니다.

    ◇ 정관용> 금난새.

    ◆ 금난새> 난새. 나는 새라고들 말하지만.

    ◇ 정관용> 한자가 있나요?

    ◆ 금난새> 없습니다.

    ◇ 정관용> 순 한글로.

    ◆ 금난새> 그래서 저는 농담으로 말합니다. 아버지 저한테 유산은 안 남기고 이름만 멋진 이름을 지어서 제가 지휘자 된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죠.

    ◇ 정관용> 1년에 연주가 몇 번쯤이에요? 요즘은.

    ◆ 금난새> 많은 게 자랑은 아니지만 한 최근 20년은 거의 100회씩 한 것 같습니다.

    ◇ 정관용> 1년에 100회. 그러면 사흘에 한 번.

    ◆ 금난새> 그렇죠.

    ◇ 정관용> 이야, 어마어마하네요.

    ◆ 금난새> 네, 사실은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기쁜 것은 제가 하는 음악, 또 그 음악이 제 자랑이 아니잖아요. 좋은 공기라면 이 좋은 환경, 공기를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다는 그 자체가 굉장히 기쁘다고 해야겠죠.

    ◇ 정관용> 알겠어요. 작곡은 안 하세요? 곡은 안 쓰세요?

    ◆ 금난새> 안 합니다. 물론 어느 부대에서 작곡해 달라고 그래서 할 수 없이 한 적이 있습니다.

    ◇ 정관용> 군부대?

    ◆ 금난새> 네, 군부대가 새로 생긴다고 해서. 혼났어요. 그런데 작곡은 아니죠. 그리고 아버지가 작곡가셨잖아요.

    ◇ 정관용> 아버님께서 그네를 만드신.

    ◆ 금난새> 아버지 어릴 때는 작곡가 금수현 아들, 이렇게 됐잖아요. 그래서 아버지하고 경쟁하면 안 되겠다.

    ◇ 정관용> 세모시 옥색치마 막 떠오르네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 금난새> 앞으로 계획은 몸을 더 건강히 하고요. 그다음에 제가 있는 서울예고 학생들하고 개인기가 훌륭하지만 오케스트라나 앙상블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세계와 호흡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번 9월인가요. 런던하고 버밍엄에 그런 데 가서 20명 정도 가서 연주하게 되어 있고요. 저는 늘 그랬지만 음악이 그냥 음악가들만의 것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서 청중에게 또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해야 된다. 사회와 함께.

    ◇ 정관용> 알겠습니다.

    ◆ 금난새> 그럴 생각입니다.

    ◇ 정관용> 계획도 많으시고 일도 많으시고. 왕성한 활동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 금난새> 알겠습니다.

    ◇ 정관용> 고맙습니다.

    ◆ 금난새> 열심히 하겠습니다.

    ◇ 정관용> 네, 지휘자 금난새 선생님 함께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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