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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기-승-전-최저임금 탓? 꼬리가 몸통 흔드는 격"



경제 일반

    ILO "기-승-전-최저임금 탓? 꼬리가 몸통 흔드는 격"

    100주년 맞은 ILO의 한국인 최초 고용정책국장 이상헌 박사
    "최저임금 인상으로 모든 경제 문제 논쟁하는 것은 꼬리가 몸통 흔드는 형국"
    "일자리는 민간이 만든다? 오히려 공공부문 일자리가 돌파구 열어야"
    "핵심협약은 조건 없이 지켜야 할 보편권리…노사 협상 방식은 최선 아닐 것"
    "단결·결사의 협약, '노조할 권리' 넘어 취약계층 목소리를 인정하는 길 열 것"

     

    "최저임금을 전방에 내세우고 이것으로 모든 문제를 논쟁하는 것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형국입니다. 모든 논의가 최저임금으로 돌아오고, 거기에 해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접근방법은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요"

    ILO(국제노동기구) 100주년 총회가 열리고 있는 스위스 제네바 ILO 본부에서 한국 기자단을 만난 ILO 이상헌 고용정책 국장이 던진 충고다.

    ILO에서 한국인 최초로 고용정책국장이 된 이상헌 박사는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노동·경제 전문가로 꼽힌다.

    서울대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2000년 ILO에 처음 입성한 이 국장은 지난해 ILO에서 가장 많은 인력과 예산을 지휘하는 고용정책국장 자리에 올라 주목받았다.

    ◇"소극적 재정정책이 소득주도성장 동력 줄여…정책 패키지 동반해야"

    '최저임금 1만원' 실현 약속은 지난 대선 보수와 진보를 막론한 주요 후보 5명이 모두 내걸었던 공약으로, 2년 연속 이어진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대표정책으로 꼽혔다.

    하지만 최근에는 급격히 악화된 고용시장을 위축시킨 주범으로 지목받으며 '속도조절론' 논란에 휩싸여있다.

    이에 대해 이 국장은 우선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R&D나 혁신으로 생산성을 향상하자는 것은 누구나 하는 얘기"라며 "여기에 소득분배개선으로 추가 성장동력을 확보하자는 내용도 전혀 새롭지 않다"고 설명했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해 주류경제학계의 대표적인 진보학자로 꼽히는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물론, 보수적 성격이 강한 IMF(국제통화기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세계은행조차 동의하는 지점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정책 집행 과정에서 유독 최저임금 인상만 부각되고, 반드시 수반했어야 할 다른 경제 구조 개선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국장은 "최저임금을 그 정도 올리면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대부분 예상했다"며 "그럼에도 추진할 수 있던 것은 최저임금 뿐 아니라 각종 노동시장이나 경제·산업 정책이 총괄적인 정책 패키지로 따라갈 줄 알았기 때문인데, 이 모든 것이 쏙 빠졌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국장이 강조한 지점은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정책이다.

    OECD도 지난 3일 한국에" 구조개혁 정책을 동반한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권고했고, IMF도 대규모 추경을 포함한 강한 경기 부양조치를 권고한 바 있다.

    이 국장은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이 소득분배를 통해 총수요를 관리하고 성장 동력을 유지, 확보하는 것이라면 재정정책이 핵심"이라며 "그런데 재정정책을 수동적·소극적으로 운영해 오히려 정책동력을 감소시켰다"고 비판했다.

    최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경제부처 관료들도 주장하는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에 대해서도 "인상 속도가 빠르다면서 정상적인 인상속도는 어떤 것인지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어 "최저임금을 인상하며 보완대책도 빨리 따라붙었다면 지금 같은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정부가 확대해온 공공부문 일자리에 쏟아진 이른바 '세금 일자리' 논쟁에 대해서도 이 국장은 "세금 일자리는 더 필요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이 국장은 "공공부문 일자리를 '세금 일자리'라고 말하는데, 우리가 낸 세금으로 꼭 필요한 일자리를 충분히 만드느냐는 질문이 의미있다"며 "정치적 성격이 강한 단기적 일자리 창출은 반대할 수 있지만, 세금으로 감당해야 할 새로운 사회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엄청나게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유치원 대란' 사태에서 나타나듯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고령화와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을 감안하면 돌봄노동, 교육 등 각종 서비스 수요는 많지만 민간에서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 국장은 "'일자리는 민간부문에서 만드는 것'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민간부문이 독자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할 능력은 굉장히 제한적"이라며 "공공부문이 사회적 서비스에서 돌파구를 열어야 민간부문이 들어갈 길도 열린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편적 권리 담은 핵심협약 비준, '조건' 붙인 '협상'은 최선 아닐 "

    한국 노동계 최대 이슈로 꼽히는 ILO 핵심협약 비준 논란에 대해서는 이 논의에 '조건'이 있다는 것 자체에 우려를 표했다.

    핵심협약 자체가 모든 노동자가 어떤 조건에 있든 반드시 누려야 하는 최소한의 보편적 권리를 지목한 협약이기 때문이다.

    이 국장은 "이것(핵심협약)은 조건을 달고 협상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 것(협상 등)을 없이 하자고 골라낸 것이다"라며 "그냥 권리로 인정하자고 만든 것이 핵심협약인데 이를 비준하기 위해 이것을 하자, 말자 하는 것은 최선의 방법이 아닐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의 ILO협약 비준이 늦다며 압박하고 있는 EU(유럽연합)대해서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보다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EU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 국장은 "무역 제재라면 일반인은 관세 부과만 생각하지만, 비관세 제재도 굉장히 많다'며 "비관세제재는 종류도 다양하고, EU는 이를 오랫동안 사용해왔기 때문에 비관세제재를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핵심협약은 너무나 보편적 권리이고 대다수 나라가 비준한 것이라 EU도 한국에 부드럽게 대할 명분이 없다"며 "무역동맹 성격이 강한 EU로서는 핵심협약조차 보장하지 않는 국가와 계속 무역한다는 데 대한 정치적 부담이 굉장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특수한 노동·경제시장을 감안해 경영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용자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핵심협약이 경제와 무역, 노동 등에 부정적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너무나 널리 알려졌다"며 "경제적 이유 때문에 한국이 주저한다는 식으로 설명하기도 힘들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또 "해외의 젊은 세대가 K팝에 열광할 수 있는 것도 그들에게 한국은 문화선진국이고 잘 나가는 중진국일 뿐이기 때문"이라며 "아직 한국이 개발도상국이라는 주장도 하는데, 세계 10위권 경제규모인 한국에 대해 국내에서는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더라도 국제적으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산업안전, 새로운 핵심협약으로 부상…핵심협약 비준은 취약계층의 힘이 될 것"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인 1944년, ILO는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필라델피아 선언'을 던졌다.

    75년이 지나 100주년을 맞은 ILO는 지난 1월 발간한 '일의 미래' 보고서를 바탕으로 앞으로 100년 간의 노동 정책과 기준의 방향을 정할 '100주년 선언문'을 준비하고 있다.

    이 국장은 "필라델피아 선언 이후 노동시장이 많이 변했지만, 고용안정과 소득안정, 산업안전, 결사의 자유 등 지켜야 할 원칙은 같다"며 "문제는 이 원칙을 어떻게 실생활에 적용하냐는 숙제"라고 소개했다.

    이어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려면 사람과 제도, 일자리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일의 미래' 보고서는 '보편적 노동권 보장'을 중심으로 △보편적 보장으로서의 평생학습 강화 △생애주기에 맞는 평생활동 사회 강화 △양성평등 추진 △출생부터 노년까지 보편적 사회보호 제공 △노동시간 주권 강화 △노사단체 대표성 강화 △인간주도 접근법적 기술활용을 통한 양질의 일자리 증진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 투자 증진 △장기적 이익을 위한 기업투자 장려 등 10가지 권고안을 담고 있다.

    이 국장은 선언문 준비 과정에 대해 "산업안전이 굉장히 중요한 주제로 떠올랐다. 기존 핵심협약에 있는 보편적 권리에 산업안전도 포함하자는 논의가 있다"며 "산업안전이 최우선 순위이고, 여기에 생활임금이나 노동시간 문제를 같이 넣자는 문제가 치열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과 밀접한 이슈로는 △양성평등 △산업안전 △노동자 조직 △불평등 등을 꼽았다.

    이 국장은 "최근 많은 노력과 논의가 있었지만, 적어도 노동시장 지표로는 양성평등에 갈 길이 멀다"며 "좀 더 정책을 과감하게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업안전에 대해서는 "한국인으로서 산업안전 문제만 나오면 부끄러울 정도"라며 "산업재해 빈도도 높을 뿐 아니라 사망률이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

    노동자 조직 문제에 대해서는 " 대기업 노조나 기존 노조를 어떻게 좀 더 진보하느냐는 문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비정규직이나 취약계층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나 지원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사정 모두 비정규직 보호에 공감하면서도 왜 이들에게 목소리를 낼 장치는 만들지 않느냐"며 "그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말할 수 있는 매커니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4개 핵심협약 가운데 '결사의 자유(제87호·제98호)'에 대해 국내에서 '노조할 권리'로 주로 해석하는 데 대해 아쉬움을 표하면서 "대기업 노조에 더 힘을 실어주자는 수준이 아니라, 취약계층이라도 누구나 단결·조직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고 강조했다.

    이 국장은 "노조라고 하면 사람들이 특정 형태만 생각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열린 형태, 다양한 조직을 포함한다"며 "핵심협약이 비준되면 비정규직이나 취약계층도 다양한 형태의 열린 조직을 스스로 조직할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구체적으로는 "굳이 정부와 사회가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여러 정책지원을 할 수 있고, 모일 장소를 마련하는 등 지원할 방법이 많다"며 "예를 들어 뉴욕 청소부들의 조직은 노조보다 느슨한 조직으로 시나 기업에 대해 자신의 노동조건을 협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제일 중요한 것은 조직만 하고 끝나지 않고 이들이 고용주 등에 협상을 요구할 때 협상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이 법이 할 일"이라며 "전교조 문제처럼 노조는 이래야 하고, 가입 자격은 어떻다는 식으로 따지기 시작하면 가장 열악한 사람들일수록 노조, 조직을 법률 때문에 만들기 어려워진다. 이것을 열어주자는 것이 핵심협약"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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