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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속 비경 성락원 가보니…인공에 점령당한 '별유천지'



사회 일반

    서울속 비경 성락원 가보니…인공에 점령당한 '별유천지'

    23일 서울에서 200년 잠자고 있던 '비밀정원' 성락원이 공개되고 있다. 성락원 관람은 6월 11일까지 매주 월, 화, 토 1시간씩 하루 7차례 한 그룹에 20명 이하 사전예약에 의한 가이드 투어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진=박종민 기자)

     

    소쇄원을 한국 전통정원의 정수로 꼽지만 서울 도심에 자리잡은 성락원도 이에 뒤지지 않을 뛰어난 한국정원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인왕산 자락 부암동에 자리잡은 흥선대원군의 별서 석파정보다 더 한국적이고 뛰어난 것 같았다.

    성락원 깊숙한 곳에 지어진(1953년)송석정. 경복궁 경회루의 기둥을 본따 만들었다고 한다(사진=박종민 기자)

     

    북한산 자락을 흘러 내리는 자연계곡이 성락원(서울 성북동) 경내에 다다르면 수백 수천년 세월 동안 계류에 깎여 만들어진 '영벽지'에 모여 경내를 휘둘러 감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산수가 거득히 비치는 넉넉한 연못이 된다.

    정원을 가로 질러 흐르는 쌍류동천은 성북천으로 흘러든다(사진=박종민 기자)

     

    영벽지의 한쪽 바위 사면에 새겨진 추사 김정희 필체의 한시 '장빈가'는 이곳이 조선시대 선비들의 놀이터가 될 만큼 빼어났음을 짐작하게 한다. 추사의 한시는 제목만 흐릿하게 보일뿐 싯구는 계류에 깎이고 닳아 그 형체가 거의 사라졌다. 별서정원의 오래된 역사를 말해준다.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성락원 계곡물은 성북천으로 흘러들어 청계천에 합수하고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별서정원 성락원 내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오솔길(사진=박종민 기자)

     

    조선시대 때만 해도 도성 밖 궁벽한 산 속이지만 정원 내의 높은 난간에 올라서면 멀리 남산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탁월하지만 두드러지지 않은 전망을 자랑한다. 남산이 바라다 보이지만 탁트인 전망이 아닌 나뭇가지에 가려 보일듯 말듯 보이는 남산이 일품이다.

    자연 연못 영벽지(사진=박종민 기자)

     

    별서정원을 소유한 가구박물관 관계자는 "정원 뒤쪽으로 북한산이 둘러쳐져 있고 아늑한 정원 지형을 계곡물이 관통해 가는 배산임수의 명승에 인공미를 최대한 배제한 채 정원이 만들어져 한국 정원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송석정 내부에서 바라본 정원, 밖으로 보이는 기와집은 1970년대에 지어졌다고 한다(사진=박종민 기자)

     

    성락원은 철종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이었고 이후 의친왕이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이지만 이 곳에 정원이 들어선 정확한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곳 관계자는 "300년을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고 고려조에 만들어졌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

    연못과 주변 자연의 조화가 자연스럽다(사진=박종민 기자)

     

    성락원 들머리에는 용두가산(龍頭假山)이란 재밌는 지형이 하나 있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가짜 산이란 뜻인데, 얼핏 보기엔 본디 있던 산이라해도 믿을 만큼 자연스럽지만 사실은 만들어진 산이다.

    아래에서 올려다 본 송석정이 주변 나무숲에 가려 보인다(사진=박종민 기자)

     

    용두가산이 조성되지 않았다면 정원을 들어서자 마자 한 눈에 정원이 들어왔을 지형이다. '인공산'으로 개방적인 지형을 가려줌으로써 단번에 정원의 속살이 드러나고 마는 걸 방지하려는 의도였을까

    성락원 내부 숲길(사진=박종민 기자)

     

    별서정원 입구에서 쌍류동천, 용두가산을 지나쳐 영벽지, 송석정 연지, 송석정, 북한산 자락까지 이어지는 정원내 주요 지점들이 마치 베일을 벗듯 하나씩 드러나도록 한 공간배치가 절묘하다. 이 곳 관계자는 "용두가산이 있어 '1보1경'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 걸음 나아가며 색다른 경치 하나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영벽지 한쪽 바위에 추사 김정희의 필체로 한시가 새겨져 있다 중앙의 나무 아래로 보이는 직사각형에 새겨져 있던 한자는 닳아서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사진=박종민 기자)

     

    정원은 1만6천㎡(약 4800평)에 이를 만큼 규모가 작지 않지만 대접 처럼 오목한 지형인데다 산지 지형을 그대로 살리다 보니 아늑하면서도 좁아 보인다. 정원 초입에서 전원(前園), 용두가산을 지나면 나타나는 본원, 송석정이 서 있는 내원까지 10여분이면 다다를 수 있다.

    송석정 내부(사진=박종민 기자)

     

    한국 전통정원으로서 여러가지 뛰어난 자연조건을 갖춰 '한국 전통정원의 정수'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사유지였던 지난 반세기 세월 동안 정원에 덧씌워진 인공조형물이 정원을 평범한 별장으로 전락시켰다.

    송석정과 영벽지 사이의 옹벽, 옹벽 너머 또다른 연못 연지가 있다(사진=박종민 기자)

     

    그나마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유적으로 지정한 뒤 정원 중앙의 잔디광장을 걷어내면서 조금씩 옛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2017년부터 복원이 이뤄지면서 현재 70%가량 복원이 이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어 보인다.

    경복궁 경회루를 본따 지었다는 송석정과 그 정자 앞의 인공 연못 연지, 연지를 만든 인공제방, 정원 소유주가 지은 한옥들이 '옥에티' 처럼 정원과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송석정 앞에 누운 소나무와 그 뒤로 멀리 남산타워가 보인다(사진=박종민 기자)

     

    별서정원 들머리에 서 있는 수령 300년의 느티나무는 사유지로 남아 있는 동안 정원이 얼마나 훼손됐는 지 보여준다. 성인 키 만큼 땅속에 묻혔던 느티나무의 밑동이 최근 진행된 복원공사에서 땅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시는 오는 6월11일까지 제한적으로 개방한 뒤 복원공사가 마무리되면 정원을 완전개방할 예정이다.
    송석정과 연지(사진=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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