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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 떨어진 '박정희' 붙드는 요지부동 구태



문화 일반

    끈 떨어진 '박정희' 붙드는 요지부동 구태

    [대한민국 보수史 ③] '반신반인', 그 맹목적 신화의 몰락기

    지금 한국 보수는 "보수답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시대의 준엄한 요구에 직면했습니다. 대한민국을 더 나은 미래로 이끌 한 축으로서 건강한 보수는 어떠한 얼굴을 지녀야 할까요. 해방 뒤 한국 보수가 걸어온 오욕의 길을 파헤친 전문가들의 날카로운 진단을 전합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그런데 이명박은 '보수'입니까?
    ② 노무현이 '보수의 나라'에 뚫은 숨구멍
    ③ 끈 떨어진 '박정희' 붙드는 요지부동 구태
    ④ "모든 적폐는 '이승만의 승리'에서 비롯됐다"
    <끝>

    '박정희 세대'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의 한 장면(사진=단유필름 제공)

     

    "박정희에 대한 향수는 시간이 지나면 결국 사라질 테지만, 아직은 완전히 깨졌다고 보기 어렵다. 박정희를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여겨 온 60대 이상 지지층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딸 박근혜가 아무리 잘못했더라도 말이다."

    정치철학자 박동천(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른바 '박정희 신도'는 (자유한국당 대표) 홍준표가 정국 운영의 반전을 위한 최후 의지를 투영시킨 그룹"이라며 분석을 이어갔다.

    "2012년 이전 박근혜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30%로 봤다. 자유한국당은 현재 '박정희 신도들'이 20%가량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남아 주고, 나머지 부동층 가운데 운 좋게 15% 정도만 잡아도 다음 대선에서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바른정당을 만들어 나갔던 김무성 등이 다시 자유한국당에 돌아왔으니, '반공주의'에 기대어 온 예전 과오를 답습할 가능성도 더욱 커졌다."

    그는 "결국 문재인 정부는 어떤 형태로든 북한 문제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국내 경제를 개선시켜야 하는 상황"이라며 "현재는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부에게) 억지 시비를 거는 모습을 누구나 지켜보고 있지만, 나름 일리 있는 시빗거리가 생기면 부동층이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자유한국당은 2020년 총선 전까지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다는 희망을 갖고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70%대를 유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경제문제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야 할 텐데 쉽지 않다. 그렇게 봤을 때 자유한국당은 2020년 총선까지 '박정희 향수'를 부각시키면서 '문재인은 좌파'라는 낡은 프레임으로 승부를 볼 여지가 크다. 이 과정에서 박정희와 박근혜를 분리하려는 움직임도 강하게 일 것이다."

    결국 자유한국당을 위시한 보수정당의 개혁은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인 셈이다.

    한국 보수주의의 이념적 특징과 역사를 연구해 온 정치학자 이나미(한서대 동양고전연구소) 연구위원 역시 "자유한국당은 현재 영남의 한줌 표와 노인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을 내놨다.

    "보통 '대의제'의 한계로 '장기적인 이익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든다. 임기 4년인 국회의원들이 당장 다음 임기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필요도 이유도 없다. 마찬가지로 현재 자유한국당은 보수의 장기적인 비전을 생각할 필요도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는 "자유한국당은 다음 선거만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전체 인구수에서 지지층 비율을 생각하기에 바쁘다"며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친문 등은 철저히 배제한 채 자기들을 뽑아줄 사람들에게 올인하면서, 단기 이익을 가져올 셈법에만 집중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모든 것 마비시키던 '빨갱이 마법'도 수명 다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 후 첫 주말이던 지난 3월 1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친박집회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해방 뒤부터 지금까지 보수를 자처해 온 세력을 결집시켜 온 핵심 동력은 '반공주의'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한국 정당정치 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는 김용호(인하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는 분단 상황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주로 대미·대북 정책을 갖고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보수는 북한을 비판과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반면 진보는 북한을 공존의 대상으로 보고 우선적으로 화해·협력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미국에 대해서도 자주를 강조한다. 이것이 우리나라 보수와 진보의 특수한 상황이다."

    역사가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소장 역시 "지금까지 보수 세력을 결집시켰던 핵심 요소는 결국 '반공'"이라며 "그 세대의 시대가 끝나가니까 몸부림을 치는 것"이라고 전했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있다. 전쟁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전쟁기간 부모의 고통을 그대로 흡수한 세대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계속 확대·강화시켰던 독재정권이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빨갱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우리네 모든 사고가 마비됐던 것이다."

    정치학자 강원택(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보수를 관통하는 가치는 '반공'일 것"이라고 같은 뜻을 전했다. 그는 "사실 얼마 전까지 한국에서 맹위를 떨친 지배적인 보수주의 근간은 박정희 집권 18년 동안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박정희의 '싸우며 건설하자'는 슬로건은 이 개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반공을 밑바탕에 깔면서 쿠데타를 정당화하려는 명분으로 활용했고, 또 한편으로는 불균등 성장 전략을 폈다. 대기업 중심의, 관료들에게 크게 의존하는 경제정책을 폈고, 지역적으로는 경인 지역과 경부 축을 중심으로 한 도시 중심의 공업성장 정책을 강화했다. 그러다보니 해안 접근성이 좋은 지역들, 경부선이 닿는 부산·마산·창원·울산·포항 등지에 공업지대가 생겨났다. 박정희와 개인적인 연고가 있는 구미·대구도 그 과정에서 발전했다."

    강 교수는 "당시에는 경제적 필요에 의한 불균등 성장 전략이었을지 모르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대기업이 중소기업 등의 우위에 서는 결과를 낳았다"며 진단을 이어갔다.

    "당시에는 분배보다 성장이 우선되는 '성장 이념'의 시대였다. 관료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지역적으로는 수도권과 영남이 상대적으로 도움을 받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한국 기득권층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여기에 군(軍)까지 더해져 한국 보수주의의 굉장히 중요한 기반세력이 됐다."

    그는 "이렇듯 지역 균열의 싹은 박정희 시대에 주어져 있었다"며 "특히 1980년 신군부가 그것을 정치적으로 활용해 광주를 소외시키면서, 광주·호남에 대한 정치적 억압에 따른 지역주의가 더욱 격화됐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 홍준표·김무성은 '제2의 김영삼'을 꿈꾸는가

    자유한국당 홍준표(가운데) 대표와 정우택(왼쪽) 원내대표가 지난 9일 여의도 당사에서 김무성 의원 등 바른정당을 탈당해 재입당한 의원들과 함께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반공'과 '성장'에 뿌리를 둔 박정희 식 보수주의는 이제 그 수명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강원택 교수는 "시대가 바뀌었다. 과거에는 햇볕정책으로 북한과 협력하든지, 억압을 통해 북한의 붕괴를 원하든지 간에 모든 사람이 통일을 원했다"며 "그런데 지금은 통일을 원하지 않는 세대가 나타나고 있고, 그 숫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을 우리와 무관한 별개의 나라로 생각하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 그러니까 '반공'이라는 것 자체가 갖고 있던 속성, 적대감에 기초해 있더라도 통일을 전제로 했던 반공주의는 지금 20, 30대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는 메시지다. 전쟁을 겪고 북한의 군사력·경제력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던 시대에 만들어진 방어적이고 수세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는 "반공이 보수의 중요한 가치이고, 현실적으로 중요한 논의점일 수는 있지만, 과거식의 반공주의를 동원한 색깔론, 그것을 통해 좌우를 가르는 형태의 방식으로는 지금의 보수가 집권할 만큼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나미 연구위원은 "홍준표가 (자유한국당에서 강제 출당시키면서) 박근혜를 버린 것은 더이상 박정희 카드를 안 쓰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국정농단으로 박정희 신화도 많이 흔들렸기 때문에 박정희 카드는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며 "결국 '문재인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모을까'에 생각이 집중되는 분위기"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제 박정희 카드도, 반공 카드도 더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 시대 환경에서, 보수세력이 성소수자 등에 대한 혐오를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를 내놨다.

    "그간 보수적인 대형 교회에서는 박정희 우상화에 동조하면서 보수 세력을 많이 만들어냈다. 그리고 현재 악마화의 대상으로 '동성애'를 지목하며 성소수자들을 억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여성·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역시 보수세력 사이에서 번지고 있는 추세다."

    이어 "이럴 경우 사회적 약자·소수자를 공격하는 극우세력이 득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사람들이 소수자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제대로 된 시민 교육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김무성 의원 등 바른정당 탈당파가 자유한국당에 합류하면서 '홍준표-김무성-친박'의 동거가 시작된 것을 두고 "1990년 벌어진 '3당 합당' 효과를 얻어 보겠다는 꼼수"라고 꼬집는 목소리도 눈에 띈다.

    심용환 소장은 "이른바 '김영삼 전법'인데,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3당 합당 당시 보수 주도권을 재조정한 김영삼의 행보를 자유한국당 홍준표·김무성 등이 염두에 둔 모양새"라며 "당 지지율이 떨어지는데다 홍준표나 김무성처럼 리더십 떨어지는 사람들이 김영삼을 흉내내겠다는 것은 자멸로 가는 선택"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역사적으로 실패한 사례를 답습할 수밖에 없는 셈법이다. 김영삼의 보수 개혁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나마 인정받는 부분은 그의 청교도적인 개혁주의에 있다. 김영삼은 압도적인 지지율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으나, 집권 말기로 갈수록 모순이 드러나 힘들어졌다. 이후 비슷한 시도를 벌인 이회창도 실패의 길을 걸었다. 김영삼은 민주투사로 살아 온 삶이 있고, 'YS사단' 또한 막강했다."

    그는 "하물며 홍준표·김무성이 김영삼을 흉내낸다?"라고 반문하며 "입으로만 활동하는 홍준표와 힘 없는 계파주의자 김무성이 도대체 무슨 보수 개혁을 하겠는가. 구시대적 보수가 소멸해 가는 과정으로 여겨질 뿐"이라고 비판했다.

    ◇ '박정희 없는 한국 보수주의' 해법 스스로 못 찾는 보수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박정희대통령기념관에서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주최로 열린 박정희 동상 기증식에서 한 참석자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노컷뉴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는 한국 보수세력이 되살아날 방도는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나미 연구위원은 "유럽의 경우 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당과 같은 보수정당이 뿌리 깊은 기독교 가치관에 따라 공동체를 염두에 둔 장기적 비전을 내놓는 경향이 있다"고 운을 뗐다.

    "이들 보수정당은 한국의 보수정당과 달리 단기적인 이해관계를 넘어 꾸준히 지향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지금 자유한국당처럼 정부에 무조건 반기를 드는 모습은 한줌 밖에 안 되는 지지층을 유지하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젊은 세대 등 다수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어 "전쟁에 앞장서 나갔던 유럽 귀족 자제들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만 제대로 보여줘도 한국 보수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보수세력은 여전히 구태에 의존하면서 살 길을 스스로 좁혀 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강원택 교수는 "지난 촛불집회와 탄핵은 단기적으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정, 국정농단 등에 대한 불만 표출로 볼 수 있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박정희 식 패러다임이 더 이상 한국 사회에 유효하지 않다는 데 대한 저항으로 다가온다"고 진단했다.

    "지금 한국 보수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망쳐버렸기 때문에 나타나는 신뢰의 추락일 수도 있겠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박정희 없는 한국의 보수주의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스스로 못 찾아내고 있는 탓이 크다. 지금 보수의 위기는 단순히 당이 합치고 나눠지고의 문제가 아니다. 근원적인 보수의 가치를 찾아내야 하고, 그 가치를 표출해 줄 수 있는 보다 젋은 리더가 만들어져야만 위기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저서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동아시아연구원)에서 영국 보수당의 역사를 통해 한국 보수정당의 변화상을 모색하기도 했던 그는 "영국의 보수당이 집권하고 싶어했던 이유는 자기들이 맡아야만 변화를 통제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며 분석을 이어갔다.

    "변화를 막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변화시키겠다는 것이다. 결국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고, 또 일정한 성과를 내야 한다. 보수가 유연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국 보수당이 오랫동안 왕실과 귀족, 성공회 교회 등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겠나. 일정한 정도의 유연성과 신뢰 없이는 가능할 수 없는 것이다."

    강 교수는 "그간 한국의 보수 하면 경직된 느낌을 많이 줬다. 시대적 변화에도 예민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느낌을 많이 줬기 때문에, 이제부터 그러한 자기 변신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이냐가 중요하다"며 "결국 변화를 위해서는 유권자들의 신뢰를 넓히기 위한, 지지를 얻기 위한 방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인적 구성과 관련된 측면도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할 것"이라며 "어떻게 하면 보다 젊은 리더십을 만들어낼지, 보수정당이 하나든 여러 개든 젊은 사람들이 기꺼이 참여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특히 "그러려면 당 내부에서 실질적인 가치와 노선을 둘러싼 논쟁·진통 등 자기 변화를 위한 모습이 보여야 한다"며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④ "모든 적폐는 '이승만의 승리'에서 비롯됐다"]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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