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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찍기만 하라고요?"…공약 평가조차 막는 선거법

사회 일반

    "그냥 찍기만 하라고요?"…공약 평가조차 막는 선거법

    • 2017-05-06 08:00

    [선거문화 이제 바꿉시다 ⑥] 사드 반대 포스터 들었다가 '선거법 위반'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사태로 치러지는 장미대선에서 각 후보들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내세우며 표몰이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새 시대를 열겠다는 후보들의 다짐이 무색하게, 구태 선거문화가 여전히 주를 이루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선거문화 이제 바꿉시다' 연속기획을 통해 시대적 요구와 괴리된 선거문화를 짚어보고 변화의 필요성을 지적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촛불민심 어디가고…" 구태 선거범죄 판치는 장미대선
    ② 급증하는 '가짜뉴스'…"고모 카톡도 차단했죠"
    ③ "유세차 시끄러워"…21세기 유권자와 19세기 선거운동
    ④ "표가 안되니까…" 선거에서도 차별받는 장애인들
    ⑤ 친절한 투표제도, 안 만드나 못 만드나
    ⑥ "그냥 찍기만 하라고요?"…공약 평가조차 막는 선거법
    계속


    선거철만 되면 '공직선거법'은 유권자에게 빡빡해진다. 후보 공약에 대한 의견 표명조차도 선거법 위반으로 제재되고 있어, 유권자의 정치 참여가 지나치게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 포스터에 후보 얼굴만 나왔는데 '불법'

    선거법 위반으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된 '사드(THAAD)' 배치 반대 포스터.

     

    세월호 참사 3주기 행사가 진행되던 지난달 1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사드 배치 반대' 포스터를 붙이던 환수복지당 당원 2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이유는 '공직선거법 위반'이었다.

    이들이 붙인 포스터에는 "평화 가고 사드 오라?"는 문구와 함께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사진이 담겨있었다.

    경찰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 포스터가 공직선거법 93조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선거법 93조는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문서 등을 게시하거나 배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포스터에는 단지 사드 배치가 한반도 평화를 해친다는 취지의 문구와 사드 배치를 찬성한 대선 후보 3명의 사진이 걸려있었을 뿐 이들을 대통령 후보로서 지지한다거나 반대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그러나 경찰과 선관위의 판단은 엄격했다. 이들은 현장에서 바로 연행돼 47시간 동안 구금돼 조사를 받았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이들을 조만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후보 공약 비교평가 했다고 '불법'

    선거법 위반에 저촉된다며 배포가 금지된 대선 후보별 청소년 인권 의식 평가지.

     

    같은날 광화문광장에서는 교육 시민단체인 학교너머운동본부가 손수 신문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누어주려다가 경찰에 제지당했다. 공직선거법에 저촉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해당 신문은 청소년 인권을 주제로 대선 후보별 공약을 평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대선 후보들에게 청소년 인권을 주제로 한 시험지를 만들어 보냈고 각 후보들이 낸 답안을 바탕으로 꾸려진 내용이었다.

    안철수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민중연합당 김선동 후보의 답변 내용이 주를 이뤘고 청소년 인권에 대한 후보들의 공약을 기호 동그라미, 세모 등으로 표시하기도 했다.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표명이나 비방은 담기지 않았다.

    선관위는 그러나 이같은 행위도 선거법에 저촉된다고 판단했다. 이들에게 적용되는 법조는 공직선거법 108조의 3. 해당 조항에서는 언론 기관이나 단체가 후보자 또는 공약을 평가할 때 등급이나 점수를 매기는 행위를 일절 금지하고 있다.

    ◇ 유권자 수동적인 존재로 만드는 선거법 독소조항

    19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일인 4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투표용지를 받고 있다. 사전투표는 신분증이 있으면 상관없이 전국 3057곳 어느 사전투표소에서나 할 수 있으며 투표시간은 오늘(4일)과 내일(5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사진=황진환 기자)

     

    이같은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법률은 당초 금권 선거, 또는 관권 선거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과도하게 적용되는 탓에 유권자의 표현의 자유마저 해친다는 지적이다.

    후보에 대한 공약 평가를 금지시키고, 심지어는 언급 조차 할 수 없게 만들어 유권자를 수동적인 존재로만 머물러있게 한다는 것이다.

    19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일인 4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사전투표는 신분증이 있으면 상관없이 전국 3057곳 어느 사전투표소에서나 할 수 있으며 투표시간은 오늘(4일)과 내일(5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사진=황진환 기자)

     

    학교너머운동본부 활동가인 고유경 씨는 "대선 기간 동안 사안을 알리고 이슈화하는 것은 유권자의 중요한 권리지만 구닥다리 법 때문에 침해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개혁활동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장소화 간사는 "현행 선거법에서는 유권자들이 후보를 비판하거나 지지하는 걸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며 "선거 부패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들이 오히려 단체나 개인의 행위까지 막아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윤성이 교수는 "유권자가 후보자를 평가할 수 없게 되니 오히려 후보자 검증이 전혀 안 되고 있다"며 "유권자도 공약을 두고 후보들을 압박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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