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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뼈저린 반성, 日 '퇴보'와 獨 '도약' 갈랐다"



문화 일반

    "보수 뼈저린 반성, 日 '퇴보'와 獨 '도약' 갈랐다"

    [인터뷰] 역사 작가 심용환 "우경화, 국민들을 끓는 물속 개구리로 만든다"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친박집회에 참석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왼쪽부터 김진태·조원진·윤상현 의원. (사진=황진환 기자)

     

    '반성하는' 독일과 '뻔뻔한' 일본. 과거 극우 정권이 들어서 전 세계를 끔찍한 전쟁의 소용돌이로 끌어들였던 전범국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두 나라는, 지금에 와서 어떻게 '도약'과 '퇴보'라는 상반된 길을 걷게 됐을까. 촛불항쟁 덕에 변혁의 불씨를 되살린 한국 사회가 택해야 할 길은 자명해 보인다.

    역사 작가 심용환(41)은 3일 CBS노컷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과거사 반성 없는 우경화로 퇴보를 거듭하는 일본과 치열한 성찰을 바탕으로 도약의 길을 걷는 독일을 비교하며 갈림길에 선 한국 사회를 진단했다.

    최근 펴낸 책 '헌법의 상상력'(사계절출판사)에서 독일과 일본의 헌법을 중심으로 두 나라 과거사를 분석한 심용환은 "독일과 일본은 파시즘과 군국주의, 그러니까 극우파의 발호를 보수파가 허용했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라며 말을 이었다.

    "이를 통해 독일은 극우파 수장인 히틀러(1889~1945)가 총통 자리에 올랐고, 일본은 군부가 내각에 진출하면서 권력을 장악했어요. 그러면서 두 사회는 극단적인 국가, 다시 말해 극도의 우경화 과정을 거칩니다. 그 안에서 민주·진보·개혁 진영이 오랜 기간 탄압 받았고, 성숙된 민주주의를 꽃피우지 못한 채 집단주의 사회로 고착된 거죠."

    심용환은 "무엇보다 당대 두 나라의 체제 아래에서 해당 국민들이 안락감을 누렸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독일이 조금 더 대표적인 경우예요. 히틀러는 집권 초기에 국가 주도로 경제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며 국가사회주의를 표방했습니다. 이에 대해 자유주의자들, 그러니까 의미 있는 사회 변화를 바라던 온건한 야당 성향의 지지자들이 열광했어요. 그런데 이는 끓기 시작한 물에서 죽어가는 것도 잊은 채 편안하게 수영하는 개구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요. 극우가 주도하는 공포 사회는 강력한 억압 한 번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국민들을 끓는 물속 개구리로 만드는 단계를 꼭 거치거든요."

    결국 "국가주의, 전체주의, 전쟁도 불사하는 모험주의가 그들(극우파) 안에 내제돼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그로 인한 필연적인 모순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면에서 독일도 일본도 필연적으로 전쟁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고, 이승만·박정희 정권도 독재로 귀결된 것"이라며 "한국 사회가 이명박근혜 정권을 허용했던 것 역시 독재에 대한 향수라는 맥락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구조적으로 보면, 이명박근혜 정권은 독재정권 잔당들과 당대 청춘을 보냈던 이들의 추억팔이가 결합된 형태예요. 촛불항쟁으로 이 정권이 무너지는 것은 IMF 등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밥이 하늘'이라는 신념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방증이죠. 촛불항쟁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됐지만, 그 양상을 보면 적폐청산에 방점이 있어요. 이명박근혜 시대에 누적된 독재 산업화의 향수에 대한 진절머리, 그것이 얼마나 모순됐고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가를 지난 9년간 뼈저리게 경험한 뒤에 폭발한 저항인 셈이죠."

    ◇ "개혁·민주 내건 독일 보수당…극우 그늘 못 벗어난 일본 보수당"

    작가 심용환(사진=한겨레신문사 제공)

     

    심용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의 길을 가른 요인으로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꼽았다.

    "연합국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보장 받았던 독일에게 다소 유리했던 국제관계 측면이 있지만, 내부적으로 봤을 때 독일은 보수파가 결집한 기독교민주당(기민당) 등의 정당이 개혁성, 진보성, 민주성을 아주 정확하게 내세웠어요. 특히 기민당은 히틀러 이전부터 기틀을 닦아 온 진보당인 사회민주당(사민당)과 '반(反)나치'에 합의함으로써 장기적인 민주화의 길로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반면 일본은 "패전 뒤 곧바로 불거진 '냉전' 테두리 안에서 전범들이 해체되지 않고 극우파와 보수파의 구분이 안 될 만큼 섞여 버렸어요. 이로 인해 극우적 가치와 보수적 가치가 공존하면서 사회를 압도하는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심용환은 진단했다. 이 대목은 해방 뒤 잔뜩 움츠렸던 친일파가 미군정 아래 다시 득세하며 '보수파'로 변신했던 한국 현대사와도 맞닿아 있다.

    "일본의 근대화를 이룬 메이지유신이 아주 보수적이었던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의 개혁은 '두께'가 없었어요. 급기야 1990년대 사회당(현 사민당)이 수십년간 싸워 온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세우는 등, 자기파괴적인 행태를 띠면서 일본 진보정당는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몰락합니다. 진보가 권력을 탐하면서 진정성을 잃고 문제가 벌어진 것이죠. 일본의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시민사회가 결집할 수 없었던 데에도 원인이 있어요. 보수 정당이 주는 완전고용·최저생계수당 등의 안락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거죠."

    그는 독일과 일본의 보수 우파를 두고 각각 패러다임 '전환'과 '퇴행'으로 설명했다. "독일의 보수 우파가 패러다임 변화를 통해 정체성을 진일보시키는 데 성공했다면, 일본의 보수 우파는 오히려 패러다임 퇴보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독일 사민당은 1960년대 후반 빌리 브란트(1913~1992)가 등장하면서 동서화합을 통해 진보정당으로서 정체성을 찾아갑니다. 이와 함께 중요한 지점이 있어요. 보수정당인 기민당에서 헬무트 콜(1930~)이 나와 빌리 브란트 등이 구축한 진보진영의 아젠다를 흡수하면서 보수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바꿔냈다는 점이죠. 그렇게 독일 보수정당은 경제성장, 기독교 등 전통적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통일·유럽평화에 대한 책임감, 홀로코스트 사죄와 추모를 통해 시대정신에 부응하는 패러다임 도약에 성공했습니다. 일본의 보수정당은 독일과 정확히 반대되는 우경화의 길을 걸으면서 패러다임 퇴행을 가져온 겁니다."

    ◇ "지금 한국 보수정당의 패러다임 도약은 불가능…정당 구조 개편 이뤄져야"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 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등 친박단체 회원들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세종로 사거리에서 탄핵 기각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여기서 한국 보수정당의 현실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심용환은 "지금 한국에서 우파 정당으로 불리는 자유한국당 등에게 독일과 같은 패러다임 전환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며 "정권 교체가 실현된다면 자유한국당 등을 배제한 상태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우파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새로운 진보정당의 출현이 있어야만 독일의 길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은 뚜렷한 계급성을 띠고 있지도 않고, 각각의 사회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려는 노력 면에서도 국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한국 사회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더불어민주당이 현재 정체성에 맞게끔 우파가 되고, 새로운 진보정당이 야당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맞죠. 그런데 우리 사회는 북한이라는 존재와 오랜 독재 체제 안에서, 자유한국당의 입지가 다져진 반면 정의당 등의 설자리가 좁아진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정당 구조 재편을 당장 이뤄내기는 쉽지 않아 보여요."

    심용환이 헌법 등을 위시한 가치 논쟁으로 촛불항쟁의 열망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국민들이 재벌 개혁, 보편적 복지 등 사회 개혁을 화두로 던지고 이끌어가다 보면 자연스레 정당 구조 개편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전후 독일 사회는 현실 생활에 밀착된 풀뿌리 민주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사민당, 기민당 등은 공통적으로 견고한 하부조직을 지녔습니다. 사실 한국 사회는 박정희 등 독재정권 아래 보조금으로 학교장, 동네 이장까지 관리하는 문화가 지배하면서 자치 구조가 성장하지 못했어요. 아래로부터 위로 구체적인 의견이 올라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거죠. 정당 구조 개편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은 결국 자치 역량이라고 봅니다. 단적인 예로 국정교과서 사태를 보면 박근혜 정권이 막강한 물량 공세를 퍼부었는데도 관철시키지 못했잖아요. 짧게는 2년, 길게는 8년을 이어온 이 투쟁을 이끈 이들은 일선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었어요. 그들의 강한 자율적 역량이 권력과 돈을 물리친 겁니다."

    그는 "한두 명의 헌신적인 노력에 기대는 시민사회가 정치 변혁을 이뤄낸 사례는 없다"며 "시민들이 학부모회나 친목모임에서처럼 자율적으로 권리와 문화를 누리는 방향으로 전방위적인 자치가 이뤄져야만 변혁에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3·1운동 때부터 이뤄온 것만 봐도 우리 시민사회가 높은 자치 역량을 지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역량을 제대로풀어낼 공간이 지금까지도 없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실제로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선거권 외에는 일상의 어느 곳에서도 우리의 권리를 표현할 수 없잖아요. 열악한 환경에서도 독재정권과 싸우며 민주화를 이뤄낸 우리입니다. 국회의원의 역할을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입법부로서 광역화하고, 지역 문제는 지방의회에서 맡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어요. 정부 역시 지자체에 예산권 등을 대폭 이양해 자치권한을 법령보다 강력한 법률로 보장해야 합니다. 이는 생활 현장의 목소리가 위로 전달될 수 있는 상향식 자치의 시작점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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