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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률 낮으니 고스펙 여성들은 눈 낮춰 결혼하라?



문화 일반

    출생률 낮으니 고스펙 여성들은 눈 낮춰 결혼하라?

    국책연구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황당한 대책 발표로 비난 봇물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사회·문화적 여러 요인이 복합돼 발생하는 저출생(저출산) 문제를 또 다시 여성에게 돌리는 보고서가 국책연구소에서 나와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원장 김상호, 이하 보사연)은 24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에서 '주요 저출산대책의 성과와 향후 발전 방향'을 주제로 '제13차 인구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임신·출산 진료비 지원 정책 성과분석과 정책방향(이소영 부연구위원) △영유아 보육료 지원 정책이 가계 보육비 및 교육비 지출에 미친 영향(김은정 부연구위원) △모성보호제도 성과분석과 정책과제(박종서 부연구위원) △결혼시장 측면에서 살펴본 연령계층별 결혼결정요인 분석(원종욱 선임연구위원) 등 4개의 주제발표와 토론이 진행됐다.

    이 중 문제가 된 것은 원종욱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결혼시장 측면에서 살펴본 연령계층별 결혼결정요인 분석'이었다. 원 연구위원 보고서 내용은 저출생 원인을 '고스펙 여성'에게 돌리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 여성의 고스펙 '불필요'하다 규정하고 '하향 선택 결혼' 유도

    원 연구위원은 해당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출산율 하락을 혼인율과 유배우자 출산율로 분해해 살펴보면 혼인율 하락이 출산율 하락에 더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저출산정책은 유배우 출산율 제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 혼인율을 올리는 것이 출산율 제고에 더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혼인율을 높이기 위해 미혼자가 교육에 투자하는 기간을 줄여주는 정책과 미혼남녀가 매칭되는 기간을 줄일 수 있는 정책, 결혼시장에서 완전히 이탈하는 계층(결혼시장 이탈계층)을 줄일 수 있는 정책 3가지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선 교육투자기간을 줄이는 정책에 대해서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불필요한 휴학, 연수, 자격증 취득 등에 채용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지하는 것만으로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불필요한 스펙 쌓기로 시간과 돈을 허비하는 것을 막고 지원자와 기업 간 탐색과 매칭이 일어나는 연령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4일 SBS '8뉴스'에 보도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결혼시장 측면에서 살펴본 연령계층별 결혼결정요인 분석'(원종욱 선임연구위원) 보고서 내용 (사진='8뉴스' 캡처)

     

    이어, "교육투자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한 남녀가 서로 상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IT 기술과 연계해 높여줄 수 있는 정책개발이 필요하다"면서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기술을 이용해 바쁜 일상을 대신해 가상공간에서 자신을 대신해 배우자를 탐색할 수 있는 정보기술을 개발해 대학에 보급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원 연구위원은 특히 보고서 말미에서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상승한 여성들에게 '하향 선택 결혼'을 권장하는 것을 '대책'으로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그는 "여성의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하향 선택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관습 또는 규범을 바꿀 수 있는 문화적 콘텐츠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이는 단순한 홍보가 아닌 대중에게 무해한 음모수준으로 은밀히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높은 임금격차, 육아휴직의 어려움 등 다양한 요인 생략한 막무가내식 진단

    저출생 문제는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결과'를 가지고서만 바라볼 사안이 아니다. 최소한의 고용안정성과 복지, 비전 등을 보장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어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의 구직 전쟁이 심화되어 취직 시기가 늦춰지고, 그에 따라 결혼과 첫 출산 시기도 함께 지연되고 있는 현상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아이 키우는 비용에 대한 부담, 육아휴직과 출산휴가가 완벽하게 '의무화'되어 있지 않은 상황,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 여성에게 몰리는 점, 남녀 간 불균형한 가사노동시간 등의 원인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원 연구위원은 '고스펙 여성'들이 많아져 '하향 선택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을 저출생의 원인으로 분석하면서도, 왜 여성들이 '고스펙'에 몰두하는지에는 무관심했다. 같은 스펙일 경우 '남성'이라는 것이 우대되는 기업의 남성 선호 현상 때문에 여성들이 스펙 쌓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점을 간과했다.

    상대적으로 저임금을 받는 여성의 상황도 무시됐다. 글로벌 회계 컨설팅 네트워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OECD 33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성경제활동지수'(이달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32위로 꼴찌 수준이었다. 한국은 남녀 임금격차 평균이 36%로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높았다. PwC는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남녀 임금격차가 사라지는 시기는 2118년으로 예측된다고 밝혔다.

    세계경제포럼(WEF) 역시 지난해 10월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6'를 통해 현재 경제적 성 격차를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 170년이 걸린다고 추산했다. 118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측한 2015년보다도 52년이나 늘어났다.

    출산 이후에도 부부가 헤쳐나가야 할 어려움은 산적해 있다. 출산전후휴가를 제대로 쓰기 어렵고, 쓰고 나서 경력이 단절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6년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출산전후휴가 도입률은 80.2%로 높게 나타났으나, 대기업(91.7%)와 5~9일 영세사업장(55.1%)의 격차는 높았다.

    육아휴직 수급자의 휴직종료 이후 동일직장 고용유지율. 2002년부터 2016년 5월 30일까지 고용보험 육아휴직자 DB와 피보험자 이력 DB를 결합한 자료다. (표=한국노동연구원 제공)

     

    한국노동연구원의 '월간 노동리뷰 2월호'에 따르면 2014년 육아휴직을 했던 노동자 중 1년 뒤에도 같은 직장에서 계속 근무한 경우는 56.6%였다. 절반 가량이 육아휴직 이후 직장을 그만두고 있다는 의미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 일·가정 양립지표'에 따르면 경력단절여성은 지난해 190만 6천 명으로, 결혼·임신·출산·육아 부담이 집중되는 30~39세가 53.1%로 가장 많았다.

    여성가족부가 전국 5018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5년 가족실태조사' 결과, 아이를 낳을 계획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전체 응답자 중 8.4%에 그쳤고, 20대와 30대의 52.1%, 37.3%가 '경제적 부담' 때문이라고 답했다.

    저출생의 원인에는 이같이 다양한 사회적 배경이 녹아있는데도 원 연구위원은 '문화콘텐츠'를 개발해 '대중에게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은밀히 홍보를 진행해 고스펙 여성의 '하향 선택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관습을 바꿔야 한다는 황당한 발상을 '대책'이라고 제시한 것이다.

    ◇ 보사연 게시판에 항의글 봇물… '국민신문고' 민원 넣기도 활발

    26일 오후 현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게시판에 올라온 항의글 (사진=보사연 홈페이지 캡처)

     

    보사연은 '제13차 인구포럼'에 대해 "초저출산현상 극복을 위한 저출산대책의 발전 방안을 모색하여,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의 성공적 수행에 중요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자화자찬식 평가를 내렸으나 정작 반응은 딴판이다.

    더구나 행정자치부가 전국 가임기 여성(20~24세)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지도와 가임기 여성 수에 따른 전국 순위를 매겨 저출생의 원인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출산 지도'를 공개해 홍역을 치른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또 다시 여성혐오적 대책이 발표된 것에 대한 반발 여론이 뜨겁다.

    보사연 홈페이지 '연구원에 바란다'에는 보고서 내용이 발표된 24일 이후에만 340건이 넘는 글이 올라왔다. 대부분이 원 연구위원의 보고서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원 연구위원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또한 SNS 상에서는 국민신문고 민원 넣기 링크를 통해 원 연구위원 해임을 촉구하는 움직임도 전개되고 있다.

    SBS '8뉴스'는 기자 멘트를 통해 "결혼을 너무 비용 측면으로만 바라보다 보니 현실과 동떨어진 해결책이 나온 것 같다"며 "보건사회연구원은 보건복지 관련 정책의 틀을 만드는 국책연구기관이다. 연구원 한 명 한 명의 연구 결과가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25일 트위터 글을 통해 "원종욱 연구원의 발언은 고학력 비혼여성에 대한 한국사회의 증오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려주는 말"이라고 꼬집었다.

    이송희일 감독은 "지난 10년 동안 150조를 쏟고도 한국의 출산율이 제자리인 이유는 간단하다. 이렇게 출산율 저하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머저리들에게 돈을 퍼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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