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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반

    "어느날 갑자기 빨갱이가 됐어"…대를 이은 공안 통치

    • 2017-01-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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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박정희 ②] 아버지 "반공을 국시로", 딸 "불순세력을 가려내"

    지난 4년 동안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민주주의 후퇴와 시민 탄압은 1960~70년대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을 놀랄 만큼 빼닮았다. CBS노컷뉴스는 서슬 퍼런 박정희 정권 당시 문화·예술, 노동, 언론 등 각 분야에서 탄압받았던 이들을 찾아 나섰다.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현 정권에서 부활한 유신의 망령을 5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블랙리스트로 되살아난 '유신의 망령'"
    ②"어느날 갑자기 빨갱이가 됐어"…대를 이은 공안 통치
    (계속)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1961년 5·16 혁명공약 1항)

    "모든 문제에 불순세력들이 가담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2016년 7월 21일 NSC 주재 박근혜 대통령 발언)

    '나라의 안녕'을 위한다는 미명 하에 실시된 박정희 정권의 공안 탄압은 그로부터 반세기 뒤, 김기춘으로 대표되는 공안 세력의 주도자들과 함께 박근혜 정권에서 다시 부활했다.

    ◇ "어느 날 집에 와보니 부모님이 잡혀갔어"

    긴급조치 1호가 선포되고 약 2달 후인 1974년 3월, 경남 하동에 사는 김희곤(61) 씨는 그날의 기억을 이렇게 떠올렸다.

    "어머니가 오시기를 2주간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시는 거야. 그래서 하동으로 내려갔는데 집이 텅텅 비었어."

    당시 19살이던 김 씨는 상경해 동대문상고를 다니고 있었다. 학교 등록금을 손수 내던 시절, 새학기 등록금과 용돈을 어머니가 가져다 주기로 돼있었다.

    부모님이 잡혀가던 날을 회상하는 김희곤 씨. (사진=강혜인 기자)
    아무리 기다려도 와야 할 어머니가 오지 않아 김 씨는 하동으로 내려갔다. 고향에 내려가니 부모님은 없었고, 17살짜리 여동생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김 씨를 전에 없던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마을을 뒤진 김 씨는 그제야 부모님이 간첩으로 몰려 순천교도소에 투옥됐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김 씨의 아버지 김도원 씨와 차은영 씨는 "김일성은 위대하다", "모택동은 위대하다"라며 이적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별안간 경찰에 잡혀가 2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김 씨 부부의 '죄'는 의문의 남성 2명의 위증으로 혐의가 인정됐다. 그들은 법정에서 김 씨 부부가 김일성과 모택동을 찬양했다고 증언했고, 김 씨 부부는 순천교도소에서 광주교도소로 넘어가 독방에서 남은 형을 살았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교편에 계셨어. 하동에서 소위 말하는 '인텔리' 계층이었고, 야당 성향을 보였던 분들이야."

    부모님이 잡혀간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던 김 씨는 이렇게 추측했다. 야당 성향은 당시의 공안 정국 하에선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정권에 비판적이던 김 씨 부부는 출옥 후에는 단 한 번도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감옥 생활에 대해서도 일절 말하지 않았다.

    '적색분자'. 김 씨 부부와 가족에게 씌워진 주홍글씨였다. 김 씨 부부는 생을 마치고도 한참 뒤인 2016년 3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 부활한 공안 통치…국가보안법 '무더기 기소'

    박정희 정권은 영구 집권을 도모하며 강도 높은 공안 탄압을 실시했다. 유신에 반대하는 사람, 야당 성향을 가진 사람, 청년·노동 운동가 등은 너나 할 것 없이 이적, 종북 세력으로 잡혀갔다.

    악명 높은 공안 통치는 이른바 '막걸리 보안법'으로 명명되기도 했다. 일반 시민이 술김에 한 말도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됐기 때문이다.

    실제 술에 취해 긴급 조치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가 한 남성이 반공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사망한 후 38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그로부터 약 40년 후. 정권을 잡은 딸은 아버지처럼 정권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불순세력'으로 규정했다.

    김 씨는 여전히 부모님이 살던 집터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진=강혜인 기자)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시민들을 두고 박 대통령은 "불순세력을 가려내야 한다"고 말했고, 시대착오적 국정교과서 도입을 두고서는 '기존 교과서가 북에 지나치게 우호적'이라며 사상 교육을 추진했다.

    공안 통치는 단순히 말에 그치지 않았다. 집권 1년차, 국정원과 검찰이 중심이 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이슈 블랙홀이 됐다.

    전교조 내부 모임인 '새시대 교육운동' 교사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기소된 새시대 교육운동 교사 박미자(56·여) 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은 것은 박 대통령 당선 전이었는데, 그 후 1년이 넘도록 아무 일도 없다가 박 대통령 당선 후 별안간 기소됐다"고 말했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를 외치던 인천 평통사 간부들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평통사 간부들은 지난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간첩·보안사범 수사에 특화된 경찰 보안수사대의 활동도 두드러졌다. 보수대 경찰관이 2015년 민중총궐기에 참석한 집회 참가자의 신상 정보를 캐고 다녔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급기야 국정원이 15년 동안 호시탐탐 노려온 대테러방지법(국민 보호와 공공 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이 지난해 3월 제정됐다.

    ◇ "배운 거 그대로 답습한다고 봐요"

    박정희와 박근혜의 공안 통치에는 김기춘이 있었다.

    유신 헌법의 초안을 작성한 인물이자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하동의 김 씨 부부처럼 숱한 간첩 조작 피해자들을 만들어낸 인물인 김기춘을 박 대통령은 다시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김기춘이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였다. 박정희식 공안 통치는 이렇게 다시 부활했다.

    유신시대 김기춘의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 등의 간첩 조작 사건이 되살아난 것처럼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홍강철 씨의 보위부 직파 간첩 조작 사건과 같은 현대판 간첩 조작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해 28일, CBS 취재진이 찾은 김희곤 씨는 자택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보도가 연이어 흘러나왔다.

    "배운거 그대로 답습한다고 보면 돼. 난 그렇게 봐요." 김 씨가 힘주어 말했다.

    김 씨는 "사람이라면 자기 아버지 죄 때문에 피해 본 사람들한테 사과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며 "일반 시민들을 종북·빨갱이로 모는 이 사회가 언제 고쳐지겠냐"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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