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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지만 슬픈 대한민국 남자, 대해부



책/학술

    강하지만 슬픈 대한민국 남자, 대해부

    신간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사회학자 오찬호가 이 땅에서 평범하게 사고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대한민국 남자'에 비판의 날을 세웠다.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얼굴에 가면을 쓴 채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지 말라'는 시위를 하는 남자,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침을 튀기면서 고생담에 치를 떨면서도 "그래도 남자란 모름지기 군대를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라며 매우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남자, 예전처럼 열심히 가장으로서 일해도 제대로 된 대접도 못 받고 살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며 하소연하는 남자. 저자 오찬호의 그물망에 걸린 대상은 바로 이런 남자들, 즉 우리 주변에서 매우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보통 남자들이다.

    그는 우선 그들의 주장대로 정말 여자들이 설치는 세상이 되었는지 그 팩트부터 짚고 넘어간다. 실제로 세계경제포럼(WEF)의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5'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 평등지수는 0.651(여성이 남성 임금의 65퍼센트 정도의 경제, 정치적 권한을 누린다는 뜻, 스웨덴이나 노르웨이가 0.8 수준이다)로 조사 대상 국가 145개국 중 115위인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OECD 국가 중 꼴찌일 뿐만 아니라). 사정이 이러한데도 왜 많은 남자들은 남자로 태어나서 살기 힘들고 대접받지 못해서 너무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걸까?

    저자는 한국 남자를 이해하는 코드로 군대와 학교 교육,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Male breadwinner model, 남자가 생계를 책임지고 여자는 이를 지원하는 가족 모델)을 꼽는다. 권위주의와 경쟁주의 문화에 절어 있는 학교 그리고 폭력, 명령, 복종만이 절대 진리인 군대를 거치면서 남자(sex, 생물학적 성의 개념)는 점점 남성(gender, 사회적 성)으로 변해간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이다. 그 결과는 소통 능력과 공감 능력의 상실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는 '약자를 공격하는 남성들의 집단 세력화(예컨대 일베나 소라넷 등등), 약자에 대한 혐오 범죄, 결혼율과 출산율의 현격한 저하에 따른 인구 감소'라는 심각한 사회문제와 결코 무관치 않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 남자 1
    장소는 강남역 10번 출구,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은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인파들 앞에서 가면을 쓴 채 피켓을 든 그 남자. 피켓에는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지 말라’고 써 있다.

    그 남자 2
    장소는 시청역 근처의 한 호프집. 한 무리의 남성들이 맥주 한잔을 하며 군대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다. “졸라 말도 안 되는 고생시키면서 다 국가를 위한 거라고 개소리하는 게 제일 × 같았어!”, “쓸데없는 일 시키면서 나 괴롭힌 박 병장, 그 인간 망종 새끼 내가 다시 만나면 가만 안 둬!”
    하나같이 군대에서 고생했던 이야기들을 쏟아냈지만, 그들은 결국 “그래도 군대니까 어쩔 수 없지 뭐”, “모병제를 하는 건 시기상조지!”, “아무리 그래도 더 이상 군 복무 기간을 단축하면 진정한 군인이 될 수 없다고 봐”라는 말들로 화제를 마무리한다.

    그 남자 3
    장소는 어느 기업의 사무실 안. 경력 25년차 파트장인 김 부장이 말한다.
    “뭐 성희롱? 내가 만지기를 했어, 들여다보길 했어. 그게 성희롱이야? 예전에는 찍소리도 못 하던 것들이 세상 좋아졌다고 건방지게 설치고 지랄이야! 여자들이 말이야, 진짜 사회생활을 제대로 못 한다니까!”

    책 속으로

    약자로서 살아가는 것에 익숙지 않았던 이들은 ‘약자인 줄만 알았던’ 여자가 자신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의 권력을 가지는 걸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한다. 남자 상사가 욕을 하면 “그 인간, 성질 한번 더럽네” 하고 넘어가지만, 여자 상사가 욕도 아니고 조금만 강압적인 태도를 보여도 “여자가 나를 무시하네”라는 놀라운 발상을 하게 된다.
    19쪽

    확실한 건 남자들은 군대를 증오하는 만큼 옹호한다는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국가가 이 증오의 원인을 해결해주지 않으니 이것만이 유일한 심리적 치유 아니겠는가. 70쪽

    한국 사회에서 남자들은 ‘폭력을 참아가면서’, ‘수치심을 느끼면서’ 남성이 되어간다. 그래서 한국에서 말하는 ‘진짜 남자’는 폭력에 둔감하다. 둔감하다는 것은 쌍방향이다. 폭력을 당해도 당하는 줄 모르고, 저질러도 그게 자꾸만 폭력이 아니라 한다. 115쪽

    해외 학자들은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한국의 자본주의가 유독 가파르게 성장한 이유로 (군부독재 외에도) ‘남자들의 사고방식’을 손꼽는다. 한국의 남자들은 ‘자본주의 노동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딛기도 전에 학교와 군대에서 이미 자본가가 ‘부려먹기에’ 최적화된다는 말이다. 118쪽

    이렇듯 한국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남자로’ 산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131쪽

    뉴스에서는 연쇄살인범, 아동 성폭행범(물론 대부분이 남자다)이 얼굴을 공개할 때, “공익적 가치를 위해 얼굴을 공개하기로 했다”는 부연 설명까지 붙여준다. 그만큼 ‘기본적으로는’ 얼굴 공개가 어떤 경우라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있다는 말이다.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하면서도 ‘부연 설명’을 하는데 ‘남자들이 듣기에 기분 나쁨직한’ 자기 취향 좀 말했다고, 또 공중도덕 하나 못 지켰다고 해서 ‘개인의 모든 것이 탈탈 털리는’ 대상이 대부분 여자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인권’이라는 개념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158~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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