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6년 8월 2일 사모아섬 부근을 지나던 온두라스 국적의 참치잡이 원양어선 '페스카마호'(254t급)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동포 선원 6명이 한국인 선원 7명을 포함한 선원 11명을 무참하게 살해한 사건이다.
이후 20년만에 또다시 선상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0일 인도양에서 조업 중이던 부산 광동해운 소속 원양어선 '광현호'에서 베트남 출신 선원 2명이 한국인 선장 등 2명을 살해한 것이다.
이처럼 원양어선에서 외국인 선원에 의한 대형 살인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지만 외국인 선원 채용과 사후 관리 대책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해양수산부가 뒤늦게 외국인 선원 고용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 국적 원양어선 220척, 선원 가운데 69%가 외국인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태평양과 인도양 등에서 조업하고 있는 국적 원양어선은 지난해 말 기준 모두 220척이다. 또한, 승선한 선원은 4866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선원 가운데 내국인은 31%인 1492명이고, 나머지 69%인 3374명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외국인이다. 외국인 선원이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지난 20일 선상살인 사건이 발생한 광현호의 경우는 전체 선원 18명 가운데 내국인은 3명뿐이었다.
이처럼 국적 원양어선이 외국인 선원으로 채워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당시 우리나라가 불법조업국가로 낙인이 찍히면서 스페인과 프랑스 등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이 강력한 견제에 나서 국내 원양산업이 급격한 쇠퇴기를 맞았다. 결국 원양업체들은 인건비와 연료비 등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외국인 선원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이때만해도 원양어선 1척당 최대 3명까지 고용할 수 있었으나, 갈수록 늘어나 지금은 전체 선원 가운데 외국인 선원을 최대 85%까지 채용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는 정부와 원양산업노조가 동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 정부, 외국인 선원 범죄 사실 '깜깜이'…인원 수 통계만 관리하지만, 이처럼 외국인 선원이 늘어났으나 이들을 통제하고 관리감독할 법규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현행 선원법 시행령은 선박소유자가 선원의 인력관리업무를 '선원관리사업자'에게 위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선원관리사업자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외국에서 선원을 모집해, 국내 입국절차가 끝나면 곧바로 원양선사에 취업시켜 조업현장에 투입한다.
이 과정에서 민간업체인 선원관리사업자가 외국인 선원의 신상과 이력, 범죄 사실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문제는 외국인 선원 채용 과정에 정부의 역할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해양수산부는 원양선사가 신고한 외국인 선원 명부를 통계 관리하는 역할만 하고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외국인 선원이 체류비자를 받아서 들어오는지 단순 통과비자만 받고 원양어선에 승선하는 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선원 관리업체가 외국인 선원을 모집해서 신고하면 누구나 선원이 될 수 있다"며 "이들은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곧바로 외국 바다로 나가기 때문에 범죄 조회가 까다롭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정부가 지난 1996년 '페스카마호' 선상살인 사건에도 불구하고 국적 원양어선에서 일하는 3400여명의 외국인 선원에 대해 방치하다, 이번 '광현호' 사건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와 관련해 해수부가 뒤늦게 대책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해수부는 '외국인 선원 고용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현재 원양어선에서 빚어지고 있는 인권침해, 노동력 착취 등 근로감독의 문제점과 외국인 선원 고용의 위험성 등을 파악해 제도적인 보완 장치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외국인 선원 고용과 관련해 개선방안에 대해 이미 용역발주한 상태"라며 "원양업체와 원양노조 등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어서 새로운 선원 수급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