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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창비' 처음으로 돌아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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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과비평' 백낙청 편집인(사진=자료사진)

     

    '창작과 비평'(이하 '창비')의 편집인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8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표절 논란의 당사자인 신경숙씨에 대해 '의도적 베껴 쓰기로 단정할 수 없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백 교수와 '창비'를 향한 비판과 옹호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들끓고 있다. 백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비슷한 시기에 발행한 '창비' 가을호에 실린 주간 백영서씨의 글에 동의한다는 입장 표명이었다.

    백 주간은 '책머리에' 라는 제하의 글에서 '문학권력'으로 지목된 '창비'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창비'를 '문학권력'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라면서도 '창조와 저항의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한 '창비'에 '공공적 가치의 실현'은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성을 지속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물적 기반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겼기에 공공성과 사업성의 결합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왔다'고 해명했다.

    '창비'의 공공성은 무엇인가? 염무웅씨는 이에 대해 '민족을 앞세우되 그 실천적 주체를 민중으로 설정해 좌우의 극단적 편향을 모두 넘어선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때문에 '창비'는 문학 계간지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유신체제를 비판하고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서 담론적 구심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것. 현재의 '창비'도 여전히 2010년대에 걸맞는 공공성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창비'와 '문학과 지성'(이하 '문지')은 197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성의 공론장이었다. 백낙청의 '창비'는 민족·민중주의를 통해, 김현의 '문지'는 자유·시민주의를 앞세워 당대 권위주의와 유신체제에 맞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씨줄과 날줄이 엮이듯 실시간 정보가 쌍방으로 이루어지는 시대가 도래하기 전, 이들 문학 계간지는 한국 지성사의 등불이었고 민주·시민사회 양심의 보루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2010년대를 살고 있는 지식인들은 '창비'가 내세우는 공공성이 이미 탈색된 지 오래라고 말하고 있다. '창비'의 공공성은 자본주의 상업성에 이미 매몰됐다. 이를 지속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물적 기반을 갖추는 것이라고 했지만, 실은 상업성에 안주해 '창비'의 정신이 훼손됐거나 변질됐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1980년대 이후 '창비'는 잘 팔리는 작가의 작품이면 그 작가의 성향이나 문학이념에 개의치 않고 '창비'의 이름으로 책을 냈다. '창조와 저항의 거점으로서의 역할'과는 무관한 작가의 소설을 내면서까지 사업성을 추구한 것이었다. 일정한 시기별로 베스트셀러가 나왔고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벌어들인 돈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그 자본으로 사세를 확장하면서 문학·출판계의 공룡이 된 것이다. 지식인들로부터 '창비'가 '출판권력'이자 '문학권력'이라고 지칭된 연유다.

    2010년대 대한민국은 한집 건너 한사람 꼴로 석·박사들이 사는 지식인 사회다. 이들은 '문학권력'이 역사적인 성과라든지 공공성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려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1970년대 암흑기 한국 사회를 이끈 문학장이자 공론장의 산실로서의 자부심에서 피어난 권위의 꽃은 버려야할 유산이라고 꼬집는다. 역사성에 함몰되어 있거나 한국 지성사의 등불이라는 훈장(勳章)만 생각하면서 여전히 '등불'이고 싶어 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지금은 LED전구로 어둠을 휘황찬란하게 밝히는 디지털시대이다. 종이잡지로 담론을 생산하는 사이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의 시민들이 실시간으로 SNS를 통해 담론을 만들어내고 있다.

    세월은 그냥 흘러만 가는 것이 아니다. 10년만 지나도 강산이 바뀐다. 의식주는 물론 정치, 경제, 과학, 인간의 관습까지도 변화시킨다. 1970년대 유신독재에서 1980년대 신군부독재, 1990년대 민주화, 2000년대 정보통신, 2010년대 스마트 혁명으로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모두 변했지만 유독 바뀌지 않은 것은 기업 총수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그런데 1970~80년대 대한민국 지성의 등불이었고 당대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의 첨병이자 시민사회의 선지식이었던 '문학권력'이 2010년대가 되었어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 세월 동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일곱 분이나 교체됐고, 북한 정권도(부자세습이긴 하지만) 지도자가 세 번 바뀌었다. 그런데도 긴 세월 내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문학권력’의 불변의 지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이제 회심(回心)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맛이 간 음식은 일고의 가치도 없이 개수대에 버리지 않는가. 맛을 되돌릴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까워서 먹었다가는 배탈이 나거나 식중독에 걸려 병원신세를 져야 하기 때문이다. 버리고 나면 마음이 변하고, 마음이 변하면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다. 새 음식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영예에 기대, 과거의 방식으로, 과거의 권위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면 난센스다. 세상은 바뀌었고, 지금 이 순간도 바뀌고 있는 중이다.

    '창비'가 바뀌어야 대한민국 지성의 공론장이 새롭게 설 수 있다. 문학·출판 지형도가 새롭게 그려질 수 있다. 어떻게 바뀌어야 하느냐고?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길이 보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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