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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경숙 표절 사태, '독자'는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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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시론/칼럼

    [칼럼] 신경숙 표절 사태, '독자'는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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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5일 서울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는 문화연대와 인문학협동조합이 마련한 '신경숙 표절 사태와 한국문학의 미래'란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 내내 신경숙 표절의 본질과 속물화된 상업주의, 문학·출판·잡지 권력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지만, 아쉽게도 지금까지 제기된 문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제안은 부족했다. 창작과비평, 문학동네 쪽 편집위원들의 불참으로 반쪽 행사로 진행된 데다가 논제가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토론회 장소를 나오면서 떠오른 것이 '독자'였다. 신경숙 표절 사태를 기점으로 한 달 가까이 각 진영의 비난과 옹호와 개선안 등이 쏟아져 나왔지만, 정작 책을 구매하고 읽는 독자(소비자)가 입은 피해 내지는 역할에 대한 진단은 없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독자들의 독서 수준과 책을 선택하는 방식이, 신경숙 표절사태로 불거진 출판문학권력의 기형적인 확장에 일정 부분 동조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머리를 무겁게 했다. 문제점을 세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첫째는 주체성을 상실한 독자들이다. 출판사와 작가 입장에서 볼 때 책을 구매하는 독자는 '갑'이 확실하다. 책을 구매하는 독자가 없으면 출판사는 문을 닫아야 하고, 작가는 발표할 지면과 출간 기회를 얻지 못한다. 문제는 '갑'인 독자들이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취향과 판단에 따라 책을 선택하기보다는 유력 출판사의 기획(상술)으로 과대 포장된 책을, 유행하는 물건을 고르듯 구매한다는 것이다. 그 같은 구매 형태가 자리 잡으면서 출판사가 독자들의 독서 수준을 하향평준화시키는 주범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도 정작 독자 자신들은 그런 불쾌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둘째는 상업주의에 매몰된 작가와 출판사다. 작가들 중에 이 시대 독자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기민하게 파악하고, 요구에 부흥하는 소설을 쓰는 것이 이 시대에 맞는 글쓰기라고 생각하는 부류가 있는 듯하다. 유력 출판사 역시 시류에 편승한 작품을 발간해 호의적인 주례사 비평과 언론 보도, SNS와 대형서점 마케팅을 통해 베스트셀러 만들기에 나선다. 이런 상술로 적게는 수만 부에서 수십만 부의 소설을 팔아치운다. 그 결과 몇몇 유력 출판사는 잘 팔리는 인기 작가를 관리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권력까지 갖게 됐다. 이때 출판사와 작가가 놓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하향 평준화된 독자들 틈에 끼어 문학의 품격을 지키고 향유하는 고급 독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셋째는 출판사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훌륭한 작가를 키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독자들 대다수는 권위 있는 유력 출판사에서 발간한, 인기 작가의 소설이 수준 높은 작품이라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이들 유력 출판사가 펴내는 소설을 망설임 없이 구매한다. 그 결과 대형 출판사들은 자사의 출판이념이나 사회 문화적 담론, 문학성을 근엄하게 내세우면서도 뒤로는 잘 팔리는 소설을 찾고, 그런 작품을 발간해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며 급성장했다. 아이러니는 이들 권위 있는 출판사들이 상업주의에 매몰되어 내세운 작가들을, 독자들이 별다른 의심 없이 한국문학의 최고 작가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출판사는 잘 읽히는 소설을 문학성이 뛰어난 소설로 포장해 돈 버는 일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소설의 주제와 사상, 탁월한 문체, 감동의 깊이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작가도 독자를 의식하지 않아야 한다.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을 쓰고, 독자들은 스스로 좋은 소설을 찾아 읽도록, 책을 고르는 안목과 독서 수준을 높여주어야 한다.

    독자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문학이 아니라, 독자들이 보아야 할 것을 보여 주는 것이 문학의 의무일 것이다. 이 소설이 껍데기인지 알맹이인지 정도는 분간할 수 있도록 독자들의 안목을 높이는 것은 출판사의 의무일 것이다. 독자들이 작품을 보는 안목이 높았더라면 신경숙의 표절사태로 불거진 우리나라 출판·문학·잡지 권력의 고질적인 병폐가 이렇게까지 속물화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감상주의의 수준을 넘어선, 시대와 인생을 통찰하는 품격 높은 소설로 독자의 눈높이를 올려주는 것이 한국문학과 작가들과 출판사들을 살리는 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신경숙 표절 사태도 결국 하향평준화 된 수준 낮은 독자가 화근이 된 것일 수도 있다. "소설 읽는 독자들 눈높이가 깐깐했더라면 신경숙 쯤은…" 그런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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