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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토막' 난 명동…메르스 관광 재난 보고서



여행/레저

    '반토막' 난 명동…메르스 관광 재난 보고서

    [문화연예 메르스 기획⑧] 기자의 명동 나들이…메르스 재난 지역에 가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여행과 영화, 공연 등 문화 산업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CBS 노컷뉴스는 '메르스 사태'가 문화 산업에 미칠 파장과 이를 바라보는 문화연예계 내부의 목소리를 전하는 연속 보도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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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통제불능 '메르스'…'영화'보다 참담한 '현실'
    ② '탄탄대로' 걷던 극장가…'메르스' 직격탄에 '벌벌'
    ③ '작년엔 세월호 올해는 메르스'…공연계 덜덜덜
    ④ '메르스', 한류에 찬물…아이돌도 中서 '찬밥신세'
    ⑤ '메르스' 재앙…철학자 강신주에게 묻다
    ⑥ 밀집된 군중을 피하라…메르스에 떠는 연예계
    ⑦ '메르스' 공포에 얼어붙은 '극장가'…"이 정도일 줄이야"
    ⑧ '반토막' 난 명동…메르스 관광 재난 보고서

    명동역 5번 출구에서 팔고 있는 마스크. (사진=유원정 기자)

     

    ◇ 7일 12:00 : 명동역 5번 출구 계단

    '메르스 예방 마스크', '여자친구 건강 1,000원에 지켜주세요'.

    명동 거리로 나서기도 전에 마스크 판매 가판대를 맞닥뜨렸다.

    두 매에 1,000원인 마스크가 가판대 위에 쌓여 있었다. 전 세계 관광객들이 다 모이는 명동답게, 외국인을 위한 영어 광고 문구도 있었다. 행인들 중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한 번 씩 가판대를 흘깃 거리면서 지나갔다.

    마스크 판매 중인 A 씨 역시 일회용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지금은 일회용 마스크도 물량이 부족해 구하기가 힘들단다.

    방역 마스크인 N95는 해외에서 공수해 다음 주 쯤 들여온다고 했다. 가격 책정은 3,000원. 나름대로 약국 기준에 맞춘 합리적인 가격이다. A 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짧은 시간 동안 벌써 남자 손님 한 명이 마스크를 사갔다.

    계단 몇 개만 더 오르면 명동의 랜드마크인 '밀리오레'가 등장하는데 어쩐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값을 치르고 마스크를 구매했다.

    지상과 지하 한가운데, 불안과 공포는 메르스 바이러스보다 더 빠르게 대한민국 최대의 관광 거리에 번지고 있었다.

    ◇ 12:30 : B 화장품 브랜드 로드샵

    한 가게 건너 하나 있는 화장품 로드샵은 명동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유동인구가 현저히 적은 탓인지 가게 앞에 나온 점원들은 언제나처럼 유창한 중국어와 일본어로 손님을 모으지 않았다. 아이돌 그룹의 흥겨운 인기곡만이 적막한 거리에 울려퍼졌다.

    마침 화장솜이 떨어져, B 로드샵을 선택해 들어갔다. B 업체는 인기 한류 아이돌 그룹을 모델로 기용해 아시아권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로드샵 중 하나다.

    캐리어를 손에 쥔 관광객 두 명과 기자. 세일기간임에도 가게 안은 한산했다.

    마스크를 쓰고 화장솜을 고르다 무심코 기침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립스틱을 고르느라 마스크를 내리고 있던 관광객 두 명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들은 손에 든 립스틱을 얼른 제자리에 놓고 급히 마스크를 착용했다.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며 들고 있던 화장솜을 계산하고 가게 밖을 나섰다.

    서울 명동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관광을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 13:00 : 명동 거리 한복판

    기침하는 사람만 봐도 불안한 한국에, 대체 관광객들은 왜 놀러 온 것일까.

    거리에서 몇 번의 인터뷰를 시도해봤지만 한국 기자라는 것을 밝히면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 갑자기 만난 한국인과 가까이 말을 섞는 것을 불안해 하는 눈치였다.

    더위에 지쳐 일단 인터뷰는 뒤로 미루고, 시원한 스무디를 사먹기로 했다.

    스무디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중국인 가족 관광객이 기자 쪽으로 다가왔다. 그 중 딸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익숙한 한국어로 스무디를 주문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경으로 인터뷰 제안을 했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대학생인 C 씨는 한국에서 2년 째 유학 중이다. 그는 한번도 명동 거리가 이렇게 한산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C 씨는 "원래 부모님에게 한국에 오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미 비행기표는 사놨고 환불이 불가능해 오게 됐다"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부모님의 의지가 강했다. 소식을 접한 가족 및 지인들이 여행을 말렸지만 1년의 반은 한국에 있는 외동딸을 보기 위해 걸음을 한 것이다.

    그는 "솔직히 불안하기는 하다. 부모님들 나이가 있다보니 메르스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쉽게 감염되고, 또 낫기도 힘들 것 같아서다"라면서 "취소 수수료가 있지만 일단 6박 7일 여행 일정을 4박 5일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의 메르스 대응에 대해서는 "이미 확산을 막기에는 늦었다고 본다. 만약 1차 감염자가 발생했을 때 더 철저한 방역에 나섰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항상 한국이 경제대국이고 선진국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의구심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친구 셋이 여행을 온 30대 일본인 여성들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D 씨는 "아무래도 가까운 나라니까 기사를 자주 보게 된다. 직접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이 감염될 확률이 높다고 알고 있다"며 "걱정이 되니 당연히 방역 마스크는 일본에서 구매해왔다. 그러나 잠깐 머물다 떠나는 우리는 감염될 확률이 현저히 낮다고 본다"고 이야기했다.

    같은 일행인 E 씨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사고 당시, 관광객들 방문이 엄청나게 줄어들었었다. 사건의 성질은 다르지만, 메르스 확산 역시 후쿠시마 사고 정도의 파급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만약 끊임없이 환자가 늘어난다면 지금보다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방역 마스크를 착용한 서울 명동의 관광객들. (사진=황진환 기자)

     

    ◇ 14:00 : 명동의 관광 맛집

    간단히 점심을 먹고 나와, 관광객들이 자주 가는 한식 전문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저녁에 먹을 삼계탕 포장을 위해서였다.

    명동의 여느 가게와 같이 맛집 역시 한산했다. 점심 시간이 지나도록 관광객들로 북적였던 때가 거짓말 같았다.

    포장을 기다리는 동안, 종업원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F 씨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은 것을 체감한다고 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는 국내 소비의 문제였지만, 명동 상권은 기본적으로 관광객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외국 소비자들이 없으면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메르스 때문에 일단 모든 상가들 매출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고 보면 된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상가 입장에서는 속이 타들어 간다. 메르스 사태가 진정될 것이라는 생각에 믿고 기다렸지만 점점 장기화될 조짐이 아닌가.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고 해도, '한국에 크게 신종 바이러스가 돌았다'고 하면 그 이미지 때문에 당연히 관광객들 발길이 끊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 14:30 : 다시 명동 거리 한복판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어느 새 거리로 쏟아져 나온 포장마차들이 길게 늘어섰다.

    명동을 걷다보면 길 가운데 크게 자리를 차지한 포장마차들이 기껍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들의 등장이 정겹고 반가웠다. 유령 거리처럼 스산한 모습보다는 이렇게 북적이는 활기가 명동과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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