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을 슬픔에 빠뜨렸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됐다.세월호와 함께한 대전의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세월호가 남긴 과제를 짚어봤다. [편집자 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대전은, '종착지'가 됐으면 하는 곳이었다.
지난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안산 단원고를 출발한 승현아빠와 웅기아빠는 800㎞가 넘는 순례길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마쳤다.
사고해역에서 떠온 바닷물, 그리고 6㎏ 무게의 십자가와 함께였다.
"더 걷고 싶은데 이제는 체력이 받쳐주질 못해서… 너무 힘들어서 이제는 더 걷지 못하겠습니다. 혼자 사는 것보다 함께 살고 싶어서……." -2014년 8월 14일 대전월드컵경기장 앞에서 승현아빠 이호진 씨
'함께 살고 싶다'는 말에 화답하듯, 대전지역 시민들도 종교계도 이들과 함께 걸었다.
참사 당일인 4월 16일을 지나간 과거로 묻어선 안 된다는 목소리는 대전에서도 꾸준히 이어졌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이 됐습니다. 진실 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은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2014년 7월 24일 '세월호 참사 100일 대전시민대회'에서
"치유는 실체적 진실에서 시작된다. 참사의 권익과 구조 실패의 궁극적 책임소재를 밝히지 않은 채 미봉책에 불과한 국가기관의 조정만으로는 결코 쇄신이 이뤄질 수 없다. 근본적인 치유와 쇄신의 시작은 참사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2014년 10월 6일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시국미사
9월에는 대전시민 20여명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자는 노란 피켓을 들고, 10월에는 엄마 50여명이 유모차를 끌고 거리로 나섰다.
"세월호 참사가 이제는 지겹다고, 그만하라고 하지만 자식이 어떻게 지겹습니까."-2014년 10월 31일 유모차를 끌고나온 한 엄마
그러나 돌아온 봄, 긴 싸움의 종착지가 되길 바랐던 이곳을 유가족들은 다시 찾아야 했다.
"저희 딸은…… 사실 너무 힘들었어요. 저희 딸은 너무 늦게 나와서… 그게 다시 되짚어지고 생각을 하려니까……. 그래 제 딸은 죽어서 다시 오지는 않지만 내가 얘기함으로써 이런 어처구니없는 참사는 다시 일어나면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지난 3일 '금요일엔 돌아오렴' 대전 북콘서트에서 미지아빠
"악플이 너무… 심하더라고요. 나는 내 자식 죽은 것만으로도 너무 슬픈데… 내가 원치 않은 사고였고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이렇게 하루하루 사는구나. 이렇게 1년을 보냈는데 별로 앞날을 생각하고 살진 않는 것 같아요."-지난 3일 '금요일엔 돌아오렴' 대전 북콘서트에서 미지엄마
여전히 꺼내기 두렵고 돌이키기 무서운 기억을 '잊혀지지 않기 위해' 사람들 앞에서 내보이고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유가족들은 말했다.
사흘 뒤 정부세종청사 앞.
1년 새 달라진 것은 짧아진 머리, 달라지지 않은 것은 진상규명 한마디였다.
"내 새끼도 장가가는 거 보고 싶고 지 자식 낳고 사는 거 보고 싶은데 이제 못 봐. 여러분은 그런 거 다 할 거잖아. 근데 우리는 못 본다고 이제."-지난 6일 해양수산부 앞에서 한 유가족이 막아서는 경찰에게
"아직 우리가 울음을 멈추면 안 됩니다.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잖아요. 이거 끝날 때까지 우셔야 되고... 울 것입니다 저는... 약속되지 않은 이별이 고통이 얼마나 큰지..."
8달 전 대전을 찾은 웅기아빠 김학일 씨의 말이다.
"유가족들에게 유족충이다, 종북이다, 자식 팔아 시체장사 한다 이런 욕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욕보다도 이제 그만 해라, 지겹다, 언제까지 세월호 타령이냐, 수학여행 가다 사고로 죽었는데 왜 이리 유난 떠냐 이런 말이 더 힘들고 아픕니다."한 희생자의 누나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여러 달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었지만 오늘도 반복되는 말이다.
4월 16일에 멈춘 이들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는 것. 세월호와 함께한 1년이 남긴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