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혼자 인형놀이에 빠져 있다. 소녀가 인형이 거실 쇼파에 털썩 앉는 장면을 연기하던 찰나, 친구 세 명이 소녀에게 말을 건다. "너 거기서 뭐하니?" 하지만 관계 맺기에 서툰 소녀는 인형상자를 몸 뒤로 숨기며 대답한다. "아무 것도 아니야."
#1.
소녀는 인형놀이를 이어간다. 인형상자 속 침실. 소녀는 침대에 누워 있는 한 여자아이에게 "난 이 집에서 나갈래. 너도 같이 가지 않을래?"라고 묻는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이불 밖으로 빼꼼히 얼굴을 내밀며 "(이불 속은) 따뜻하고 아늑해. 난 여기 있을래"라고 말한다.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 소녀는 혼자 침대를 빠져 나와 화장대 방으로 가기 전 뒤를 돌아보는데 침대는 비어 있다.
#2. 인형상자 속 화장대 방. 화장대 앞에 한 여자가 앉아 있다. 여자는 "예쁘게 하고 나가야 사람들이 좋아한다"며 소녀의 얼굴에 화장을 해준다. 소녀는 "같이 가지 않을래?"라고 묻지만 여자는 "아직 뭔가 부족해 보여 완벽해지면 나가겠다"고 거절한다. 소녀가 "넌 지금도 충분히 예뻐"라고 말한 후 부엌으로 향하다 돌아보니 화장대 앞에는 아무도 없다.
#3. 인형상자 속 부엌. 엄마가 소녀에게 케이크와 차를 내준다. 소녀는 간식을 먹으며 "저랑 같이 가지 않을래요?"라고 묻지만 엄마는 "내가 없으면 모든 게 무너져 버릴지 모른다"며 내민 손을 거절한다. 소녀가 부엌을 나서려다 돌아보니 거기에는 아무도 없다.
#4. 인형상자 속 거실. 아빠가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다. 소녀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 하자 아빠는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세상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야. 이 문 밖을 나가면 마냥 자유롭고 평화로울 것 같지만 언제 누가 사납게 돌변해서 너를 물지 몰라"라고 말한다. 소녀는 "걱정하지 마세요. 모두 머릿속 두려움일 뿐이에요"라고 말한 후 현관문을 연다. 소녀의 뺨에 닿은 햇살은 따스했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은 선선했다.
다시 현실장면. 소녀는 인형상자에서 인형을 꺼내 세 명의 친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인사한다. "안녕!"
소녀가 인형상자 속 침실, 화장대 방, 부엌, 거실에서 차례로 만나는 네 명의 인물은 모두 소녀의 분신이다. 자립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극복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은 소녀의 성장 이야기가 75컷의 연필화에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