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도 열대야? 별수 있나, 버텨야지."
10일 새벽, 27도를 넘나들며 14일째 이어진 열대야 속에서도 대낮처럼 분주한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만난 무 도매상 정정현(75) 씨의 턱에는 땀이 계속해서 맺혔다.
시장 입구에서부터 리어카, 전동차, 오토바이 등은 낙찰된 상품을 싣고 아슬아슬하게 시장통을 질주하지만, 용케도 부딪히지 않고 구석구석을 질주했다.
경매가 시작되자 상인들은 경매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상품을 직접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고는 재빠르게 손에 쥔 가격 입력기에 입찰 가격을 입력했다. 긴장감에 열대야가 더해져 상인들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솟아났다.
◈ “50년 일했지만 최고로 덥다“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본인들의 업무 시간을 "해가 떨어지고부터 해가 뜰 때까지"라고 소개한다. 오후 7시부터 경매가 시작돼 오전 4시를 넘기기 일쑤다.
평소 같으면 폭염이 한풀 꺾인 시간인 만큼 한 여름에도 더운 줄 모르고 일하지만 올해만큼은 달랐다.
일단 일하는 사람들의 옷차림부터 달라졌다. 고구마를 취급하는 남병기(66) 씨는 "50년 동안 여기서 일했지만 올해가 최고로 덥다"면서 "올해에는 민소매가 아니면 입지를 못 하겠다"고 말했다.
포도, 복숭아 등 제철 과일의 달콤한 냄새가 가득 찬 실내 과일 경매장은 말 그대로 '찜통'이었다.
가득 차 있는 열기 속에서 산지에서 올라온 과일을 분주하게 내리는 일꾼들을 식혀주는 건 굉음을 내면서 돌아가는 대형 선풍기뿐이었다.
경매사 차주희(50) 씨는 "가락시장 구조 자체가 에어컨을 틀 수가 없다"면서 "하루 2~3시간씩 경매를 진행하는 것도 힘든데 선풍기 하나로 버티려니 몸이 축나는 게 느껴진다"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생선 비린내가 자욱한 수산시장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수산물의 신선도를 위해 채워 놓은 얼음 덕에 바깥보다 온도는 낮아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삽시간에 얼음이 녹아 바닥은 물로 흥건했고, 쉴 새 없이 얼음을 채워야 해서 얼음값 부담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2
◈ 몸도 힘들지만 금전적인 손해도…“매출 50% 떨어졌다”상인들을 더욱 지치게 하는 건 더위로 인한 금전적 손해였다.[BestNocut_R]
배달을 하는 최병환(42) 씨는 "너무 더워 산지에서 물건도 잘 안 올라오고 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줄었다"고 한탄했다.
수산물을 취급하는 김유창(42) 씨는 "날씨가 더우니까 회나 매운탕 거리를 찾는 손님이 줄어 매출이 50% 정도 빠졌다"며 "생선들 상태도 좋지 않아 걱정이다"며 울상을 지었다.
그렇지만 시장 사람들은 상인들 특유의 낙천적인 태도로 분주한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수입과일을 취급하는 박진향(41·여) 씨는 "별 수 있나, 물 많이 마시고 버티면 이 더위도 곧 지나갈 것이다"며 웃었다.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이날부터 간간이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폭염이 한풀 꺾일 것으로 전망돼 시장 상인들의 고단함은 한결 덜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