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민식
지난달 31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폭염속, 한 눈에 보기에도 앳된 고등학생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몰려오더니 위안부 소녀상 뒤에 줄지어 섰다.
소녀상 뒤에 선 학생들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 사과해주세요'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펼쳐보였다. 학생들은 '도화지'라는 청소년주도역사단체 소속이라고 밝혔다.
이 단체 대표라고 소개한 진민식(18. 강원도 진광고 3학년)군은 소녀상 옆에 앉아 마이크를 잡았다. 진군은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의 명백한 과오"라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 진심이 담긴 사죄와 보상을 하라"고 주장했다.
◈ "위안부 문제 해결 위해선 어디라도 갈 수 있어" 이날 기자회견을 위해 진 군과 친구들은 강원도 원주에서 세 시간을 달려왔다.
'도화지'를 이끄는 대표 진민식 군은 지난 해 12월 위안부 할머니들이 계신 '나눔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됐다.
어떻게든 할머니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어른들이 만든 단체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진군이 하는 일은 늘 보조역할이었다. 스스로 계획하고 주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계를 느꼈다.
진군은 "어른들의 도움을 받으면 편하겠지만 평생 도움 받고 살 순 없지 않냐"며 "스스로 계획하고 실수도 하면서 배우고 싶어 단체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진민
인터넷 카페에서 만들어진 이 단체는 청소년이 스스로 역사를 그려나가자는 의미에서 단체 이름도 ‘도화지’로 정했다. 주로 위안부와 독도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캠페인,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회원들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 모집했다. 공부하기에도 바쁜 학생들이지만 진군과 뜻을 함께하는 전국의 중고등학생 70여명이 역사단체 '도화지'에 모여들었다.
어른 도움 없이 일을 진행하다보니 실수도 많았고 시련도 많았다. 처음 캠페인을 앞두고 경찰서에 집회 신고를 할 때는 경찰 때문에 겁을 먹기도 했다.
진군은 “한 경찰이 전화를 걸어 취조하듯 이것저것 묻고는 학생들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캠페인을 하는 것은 외교 문제가 얽혀서 잘못될 수 있다며 겁을 줬다"고 말했다.
물품 대여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서명운동을 하기 위해선 책상이나 의자가 필요했지만 강원도에서 가져올 수도 없는 상황. 기존의 청소년 단체나 역사 단체에 지원 요청을 했지만 모두 거절 당하기도 했다.
◈“청소년도 스스로 문제의식 가지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 보여주고파”
진군의 꿈은 '도화지'를 청소년들의 참여로 성장한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와 같은 단체로 만드는 것. 그리고 청소년의 주체성이 강조되는 단체가 되길 희망했다.
진군은 "대학생이 아닌 중학생, 고등학생들도 스스로 역사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또 어른들은 할 수 없는 학생들만의 통통 튀는 생각으로 플래시몹(불특정 다수가 정해진 시간에 특정 장소에 집결해 준비된 신호에 따라 특정한 행동이나 댄스를 추고 흩어지는 퍼포먼스)을 하는 등 역사를 바로 잡기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진군과 친구들은 지난 달 21일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 800여명으로부터 받은 '일본 정부, 위안부 피해자 사죄 촉구' 서명과 성명서를 31일 주한일본대사관에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