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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공장 밖 자신을 '죽은 자'라고 칭했다. 지난 2009년 8월 파업 이후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 공장 안 '산 자'를 바라보며 이들은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한 달에 한 명씩 죽음의 행렬이 이어졌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노조원들은 입을 모은다. 1년 반 동안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쌍용차 파업 사태 1년 반. 그 후를 CBS가 취재해 봤다 [편집자주]| 글 게재 순서 |
| 1. '쌍용차 사태' 1년 반, 잇따르는 자살 2. 해고노동자 24시. 끝나지 않은 고통 3. 버림받은 이들, 누가 책임지나 |
#. "미군부대서 풀 뽑고 돌 줍고... 아빠, 남편이라는 책임감만 없다면 그만 살고 싶어요."
쌍용자동차에서 17년을 근무하다 지난 2009년 쌍용차 사태 당시 해고된 김상진(42.가명) 씨는 올해 1월 쌍용자동차 금속노조 간부 일을 그만뒀다.
돈 때문이었다. 해고 이후 김 씨는 복직을 위해 생계를 아내에게 맡기고 복직 투쟁을 벌였다.
동네 마트에서 9시간 동안 서서 일하는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17년간 일한 직장에 다시 복귀하기 위해서라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러나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늘어나는 카드빚 때문에 24평 아파트를 팔고 14평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고2, 중3 아들에게 미안했다.
아이들을 위해 더 열심히 뛰었지만 정작 사춘기인 아이들은 힘들어했다. 가출도 하고 반항하기도 일쑤였다.
"아이들을 이 때 잡아주지 않으면 나중에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김 씨는 그때부터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쌍용차' 출신 이력은 주홍글씨처럼 김 씨를 따라다녔다. 경기도와 멀리 떨어진 지방에 이력서를 내도 '쌍용차 출신은 채용할 수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일반 회사 입사를 포기하고 지난달부터 인력 시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새벽 5시 40분. 사무실 앞에서 기다렸다가 봉고차를 타고 건설현장에 나가 오후 6시까지 일을 했다.
아파트형 공장에서도 일해보고 평택시 안정리 미군부대 안에서 풀을 뽑고 돌도 주웠다.
그러는 사이, 동료들이 하나 둘 죽어나갔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료의 소식을 접하며 남일 같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이 이해됐기 때문이다.
"아빠만 아니면, 남편만 아니면, 부모님이 나 때문에 힘들어하시지만 않으면..."
희망 없는 고된 삶속에서 '나쁜 마음'이 울컥 올라왔다. 그때마다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억눌렀다.
도움이 절실했지만 정부도, 회사도 김 씨를 외면했다. 노동자가 한 달에 한 명씩 사망하자 그제서야 평택시는 '쌍용차 해고자를 지원한다'며 지원책을 내놨다.
그러나 해고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일당 4~5만 원짜리 공공근로 일자리는 생색내기용에 불과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지원책보다는 부당한 사유로 해고된 우리 노동자들을 다시 복직시키는 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 공사판에서 시멘트를 나르는 정성범(37. 쌍용차 16년 근무)씨의 모습을 TV에서 본 딸의 친구들이 딸에게 '너희 아빠 아니냐고 묻자' 아이는 울면서 대답했다.
"저 사람 우리 아빠 아니야. 우리 아빠는 쌍용차 다녀!"
정 씨는 쌍용자동차 직원이다. 철마다 집으로 가정통신문도 날라온다. 그러나 월급은 받지 않는다. 파업 당시, '1년 뒤 복직'이란 약속을 믿고 회사를 나온 무급휴직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년 뒤 복직'이라는 약속이 깨지면서 1년 넘는 시간을 월급없이 버텨야 했던 정 씨는 두 딸을 위해서라도 '노가다'를 뛰어야 했다.
낮에는 공사판, 밤에는 대리운전을 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연봉 5천500만 원을 받으며 근무했지만 지금은 딸아이 동화책도 마음대로 못 사주는 처지다.
며칠 전에는 함께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쌍용차 동료 한 명이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H빔에 왼손가락 4개가 모두 잘려나갔다. 급히 봉합수술을 했지만 그는 아직도 손을 쥐지 못한다.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동료도 부지기수다. 한 동료는 공사 현장을 찾아 1년 동안 전국을 떠돌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아내가 '자신도 조금이나마 보태겠다'며 아파트 앞 물류센터에서 직원을 구한다는 전단지를 가져왔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아내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이유일 쌍용자동차 사장이 최근 인터뷰에서 '2013년에 무급자를 복직시키겠다'고 말한 것을 본 정 씨는 "그때까지 무급휴직자 461명 모두 죽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 복직이 힘들면 월급의 70%만이라도 유급화를 해서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70% 중에서도 50%는 정부에서 지원한다고 하니 회사는 20%만 부담하면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도 회사는 아무런 대꾸가 없어요."[BestNocut_R]
계속되는 해고 노동자들의 자살 소식에 "461명 무급휴직자가 언제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다"고 말하는 정 씨. 그들의 하루하루는 절망이 돼 버렸다.{IMG: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