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어시장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이 코앞에 다가왔다. 경기침체에다 연일 궂은 날씨가 이어지면서 북적거려야 할 재래시장은 한산하기만 하다.
대목을 맞아 손님들을 붙잡고 가격 흥정에 신이 나야 할 상인들은 한 명의 손님이라도 잡기 위해 애를 쓰지만, 허탕만 칠 뿐이다. 궂은 날씨만큼 상인들의 마음도 잔뜩 흐려있다.
◈ 설 대목은 옛말…평일과 비슷한 분위기비가 내리는 11일 오후 경남 마산 어시장.
30년째 과일 장사를 해 온 노종근(47) 씨는 점심도 굶은 채 자리에 앉아 있질 못하고 손님 끌어모으기에 한창이다.
"맛 좋은 과일 한번 잡숴 보세요. 어서 오세요. 한번 맛만 보고 가세요."
목이 터질 듯 외쳐보지만, 손님들은 한 번 힐끗 쳐다만 보거나 가격만 물어볼 뿐, 손님들은 도통 찾질 않는다.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열어 놓고는 있지만, 과일 판 돈은 고작 몇 만원. 과일을 배달해 달라는 주문 전화도 한 통도 오질 않았다.[BestNocut_R]
"대목이요? 몇 년전부터 명절 분위기는 사라진지 오래됐어요. 장사도 통 안되는데 사흘째 비까지 내리니까 손님들은 배송까지 해주는 마트나 백화점으로 가는 것 같아요. 과일 선물 세트도 하나도 안 팔리고..."
노 씨는 팔기 위해 잔뜩 사다놓은 과일을 보며 한숨을 짓는다.
"명절 대목에는 정말 밥을 못 먹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을 때가 있었는데, 다시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요. 여기 시장 한번 둘러 보세요. 명절 분위기 납니까? 평소때와 똑같은 모습이에요."
길 바닥에 시금치, 상추, 미나리 등 채소를 잔뜩 깔아놓고 장사를 하는 김복자(62) 씨도 한숨 소리가 가득하다.
비를 피하기 위해 파라솔까지 빌려 장사를 하고 있지만, 바람이 불다보니 김 씨의 옷은 벌써 축축하게 젖어 있다.
마산 어시장
손님은 흥정만 하려 들 뿐이지 통 크게 사지를 않는다. 심지어 3천 원짜리 시금치 한 다발을 반으로 쪼개 천 원에 달라는 손님들도 있다.
김 씨는 "작년 설도 솔직히 대목 재미를 못 봤는데, 올해 설은 비까지 내려서인지 몰라도 매상이 절반 넘게 떨어졌어요. 경기가 워낙 안좋고, 요즘에는 명절 음식을 많이 장만하지 않으니까 조금씩 사려는 손님들만 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인근 상인들을 계속해서 만나봐도 '대목'이라는 말은 이제 실종된 지 오래다.
모두들 "마트나 백화점은 몰라도 이 곳에는 명절때나 평소때나 별반 다를게 없는데 대목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아요"라며 한숨섞인 말들 뿐이다.
◈ 손님들 껑충 뛰어오른 물건값에 한숨만
상인들만큼, 사러 나온 손님들의 마음도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발품이라도 팔아 값싸게 사려고 나왔지만, 껑충 뛰어오른 물건값에 놀랄뿐이다.
한참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가격을 물어보던 이숙희(49) 씨는 "그래도 재래시장이 싸니까 장을 보러 나왔는데 물건 값이 많이 올라 사기가 만만치가 않다"며 "좀더 값싸고 질 좋은 것을 고르다보니 사는 것도 쉽지가 않다"라고 말했다.
시어머니와 장을 보러 나온 양영미(46) 씨도 두 배 가까이 뛰어오른 채소값에 선뜻 장을 보기가 두려울 정도라고 말한다.
양 씨는 "채소값이 3천 원 하던 것이 6천 원에 파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그래도 제사상을 차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사고 있다"고 장바구니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양 씨는 "예전에는 음식을 풍성하게 차려놓고 명절이 끝나도 먹고 그랬는데, 이제는 물가가 많이 올라 그러지를 못한다"며 "경기가 좋지 못한 상황에서는 살림하는 대부분의 주부들이 똑같이 생각하지 않겠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