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등 비상사태에 대비해 설치한 주택가 소화전이 소방서와 자치구간 업무협조 미비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법 규정을 어기고 소화전 부근까지 침범한 주차 구획선으로 소방차 진입이 어려워 대형사고로 이어질 우려를 낳는 것이다.
소방당국은 주택가 밀집지역이나 쪽방촌 등 화재 취약지구를 대상으로 한 곳당 평균 300만 원을 들여 소화전을 설치하고 있다.
서울시 소방본부는 올해도 수억 원의 예산을 들여 서울시 전역에 1천여 개의 소화전을 설치할 계획이다.
소방시설 5미터 이내에 주차구획선이 있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돈을 들여 설치한 소화전 부근에 엉뚱하게도 구청 측이 주차구획선을 긋고 차량 주차를 허용하는 바람에 소화전을 제대로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도로교통법(제33조)에 소방시설로부터 5미터 이내는 주정차 금지장소로 규정돼 있지만, 구청들이 소방당국과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아 무작정 주차구획선을 그었다가 말썽이 나면 이를 지우는 웃지 못 할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
강서구 화곡동 주택가(사진)를 비롯해 서울 시내 전역에 이처럼 소방시설 인근에 주차구획선이 설치된 경우는 부지기수.
지난 2007년 강서구가 주차구획선을 없애는데만 모두 1억여 원이 들었다. 주차구획선 1개 면을 없애는데 드는 비용이 14만 9천 원이고, 새로 긋는 데는 2만 6천원이 필요해 강서구처럼 서울시내 모든 구청이 무분별하게 그었다가 지우곤 하는 주차 구획선으로 연간 수십억 원의 예산이 낭비되는 것으로 추산된다.[BestNocut_R]
이에 대해 강서구는 "소방당국이 소화전을 설치할 때 협조 요청을 해오지 않았고, 뒤늦게 소방시설 때문에 주차구획선을 없앴다가 소방서 측이 급수에 지장이 없다고 해 주차구획선을 다시 설치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강서소방서 관계자는 "주차구획선 설치에 동의해준 사실이 없으며, 소방시설 설치시 구청에 알려줄 의무가 없다"고 맞선다.
만일 대형 화재가 발생해 소화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을 때 책임 소재를 놓고 벌어질 구청과 소방당국의 어이없는 공방을 미뤄 짐작케 하는 대목이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고시원이나 쪽방촌 물류창고 등의 화재 때문에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소방당국은 입버릇처럼 원칙대로 철저히 법 규정을 적용해 피해를 예방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주택가 뒷길에 설치된 소방시설과 주차구획선을 둘러싼 담당 소방서와 구청 간 책임 회피성 공방을 지켜보는 시민의 귀에는 공염불로 들린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