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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에 웬 목공소? 수입가구에 맞서는 토종목수"

"청담동에 웬 목공소? 수입가구에 맞서는 토종목수"

  • 2008-01-15 14:52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미술학도가 목수가 된 사연, 내촌목공소 이정섭 씨

 

해외 최신 명품 패션과 자동차, 또 각종 수입 가구들을 쉽게 구경할 수 있는 서울 청담동 거리. 유행을 선도하는 청담동 한복판에 좀 어울리지 않게 소박한 간판을 내 건 목공소가 하나 생겼답니다. 강원도 홍천 내촌목공소에서 작업하는 목수 이정섭 씨가 연 가구 갤러리인데요. 화려한 장식도 인공적인 색도 거의 입히지 않은자연 그대로의 목가구를 만드는 이정섭 씨. 그는 너무 비싸게 팔리는 수입 가구들 틈에서 저평가된 우리 가구를 알리고 싶었다는데요.

서양화를 전공한 이정섭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한옥 짓는 법을 터득하기 위해 무작정 태백으로 들어가 목수 일을 밑바닥부터 배웠습니다.5 년 전 부터는 강원도 홍천에 내촌목공소를 열어나무의 자연스러움을 살린 목가구를 만들고 있는데요.

미술학도가 목수가 된 사연. 목수 이정섭 씨를 1월 12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서 만나봤습니다.

◇ 진검승부를 해보고자 청담동에 가구 갤러리 열어

[BestNocut_R]▶ 내촌목공소의 목수인데, ‘목수’라고 하면 어떠세요?

스스로 제가 정해야 할 때 목수가 가장 마음에 들었었고, 디자이너는 어떤 물성을 알아야만 디자인을 하는 것이거든요. 나무를 알아야만 디자인을 하는데, 나무의 물성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목수가 제일 우선이고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 나이가 많은 분일 줄 알았는데, 굉장히 젊은 분이세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서른여덟입니다.

▶ 내촌 목공소는 강원도 홍천에 있죠? 언제부터 한 겁니까?

네. 제가 2002년에 홍천으로 이사를 가서, ‘내촌목공소’라는 간판을 건 것은 2004년입니다.

▶ 내촌의 새해 풍경은 어떤가요?

목공소가 자리잡은 곳은 목공소의 특성상 소음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그 주변에 민가가 있으면 안 되거든요. 그런 이유로 외떨어진 곳에 자리잡아서 자연경관은 아주 좋습니다.

▶ 그럼 내촌 목공소에서 어떤 작업을 하시는 건가요?

가구를 만듭니다. 너무 커서 원목으로 작업하기 불가능한 넓은 서랍이나 큰 붙박이장 문 등을 제외하고는 원목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가리지 않고 다 만들고 있습니다.

▶ 지금까지 만드신 가구는 총 몇 점 정도 되나요?

현재 한 40-50개 정도의 디자인이 있습니다.

▶ 최근에 수입가구점 많은 청담동에 목공소를 내셨는데요. 우리가 흔히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일반적인 가구와는 뭔가 다를 것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어떤 점이 차별화 되었나요?

제가 가구를 시작하면서 여러 군데를 돌아봤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가구 디자이너가 없었던 것 같아요. 아주 극소수만이 있었을 뿐이죠. 시립미술관에서 하는 가구 전시회나 가구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가구들을 보면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대부분 건축가이거든요.

건축과 미술, 예술은 발전하는데, 이런 건축가들이 건물을 짓고 가구를 넣으려고 하니, 어떤 내적으로 가구라는 장르 속에서 그런 시대정신을 생각하면서 그것에 맞는 디자인을 하는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유는 잘 모르겠고요.그래서 제가 그것을 한 번 해보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단순히 과거에 만들었던 가구를 리프러덕션하는 형식이 아니라 시대에 걸맞게 디자인한 가구를 해보려고 한 것이죠.

▶ 목수라고 하면 우리 전통가구만을 만드는 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것과는 또 다르죠?

제 가구의 원전이 이조말의 가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것은 이조말의 ‘비례’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의 군더더기 없음, 간결함, 그 전통은 어느 나라의 가구와 비교하더라도 손색이 없는 정도가 아니고 월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기반위에서 디자인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 수입가구가 대부분인 청담동에서 내촌목공소 가구갤러리 분위기가 너무 튀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고, 저도 청담동이라는 곳이 부담스러운 점도 있어요. 예를 들면 남산쪽이나 평창동, 성북동 쪽이 더 어울리지 않느냐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런데 실제로 자리가 잘 안 나는 것도 있지만, 하려면 제대로 진검승부를 하자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 청담동에 가구갤러리를 여신지 20일 정도 되었죠. 아직 반응을 가늠하기는 좀 이른가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 미대 졸업 후 한옥 짓는 과정을 배우기 위해 무작정 태백으로

▶ 학창시절 때부터 목수의 꿈이 있으셨던 건지 궁금한데요. 고등학교 때 자퇴를 하셨다고요?

사춘기를 제가 늦게 맞았고,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제 속에 있던 것들이 좀 엄살을 떨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 기존의 제도나 이런 것들에 거부감이 있었던 건가요?

그 틀에서 못 견딘 거죠.(웃음)

▶ 대학에서는 미술을 전공하셨죠? 그 때 그림보다는 사진에 매력을 느꼈다고요? 이건 어떤 변화인가요?

네. 제가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미술에 대한 정보가 없었습니다. 그냥 미대를 가면 거기서 그림을 배우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현대미술의 엄청난 넓이와 그 속에서 도대체 미술이 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철이 없었던 것이고, 어쩌면 우리 고등학교 교육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해요.

그 당시에 제가 그림을 어떻게 시작을 하며 어떻게 해야 할 지도 잘 모르겠고 해서 그림과 담을 쌓게 되었고, 그러면서 카메라를 어떠한 이유에서 사게 되었는데, 그 카메라로 지하철역에서 몇 컷 찍어보고, <흑백사진 만들기>라는 책을 사서 암실에서 작업을 했는데, 인화지에서 까맣게 형상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끼게 되었어요.

사실은 사진의 매력을 느꼈다기보다는 지하철에서 사진을 찍고, 제가 미술대학을 다니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사람의 얼굴이 인화지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이 평소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요.

▶ 어떤 점에서 그렇던가요?

그렇게 행복하지 못하다고나 할까? 친구와 놀고 이야기 하는 사람 말고, 혼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목적이 없어요. 차를 기다릴 뿐이고, 어떤 공간과 공간을 가야할 뿐이고, 그런 특별한 것이 없는 상황에서 보이는 얼굴들, 그걸 보면서 순간 그런 생각을 했어요. 관객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저는 미술관 그림을 좀 안 좋아 했습니다. ET처럼 작가와 관객이 교감할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때 생각한 것이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이 관객이고 내가 작가라고 한다면, 어떤 지하철 공간에서 이들과 소통하는 것을 한 번 해보자, 내가 미술대학을 나온 자로서 한 번 정도 해야 하는 그런 사명감 같은 것으로요. 그래서 사진을 많이 찍는 것이 아니라 그 전시를 한 2년간 준비해서 전시를 하고 제가 미술대학을 나온 그 부분에 대한 정리를 한 것이죠.

▶ 목수 일에 관심을 두신 건 어떤 계기였나요?

많은 사람들처럼 저도 나무를 좋아했고, 직접적으로 저런 일을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는데, 계기가 안 주어졌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TV에서 ‘내고향 6시’라는 프로그램을 보니 태백에 전통한옥을 짓는 것을 가르쳐 주는 곳이 있다는 것이 소개되더라고요. 그래서 그것을 보고 태백으로 가게된 것이 첫 인연이 된 겁니다.

▶ 무작정 간 겁니까?

무작정은 아니고요. 그 과정동안 배워보자는 생각에서 짐을 싸서 갔었죠. 그 과정이 석 달 과정이었는데, 제가 갔을 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남아있는 과정이었거든요. 그 때 같이 합류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 막상 해보니 처음 생각한 것에 비해 어떻든가요? 처음에 가면 뭐부터 하게 돼요?

연장을 다루는 법, 날을 가는 법을 먼저 배웁니다. 대팻날, 톱날, 엔진톱날, 원형톱날 등이죠. ‘일은 연장이 한다’는 말을 목수분들이 많이 하시는데요. 날을 관리하는 것부터 배우고, 그 다음에 서까래 깎기부터 시작하는 거죠.

▶ 한옥 짓는 것을 배울 때 어떤 점이 가장 힘드시던가요?

특별히 힘든 것은 없었는데요. 연장을 관리하는 것은 좀 힘듭니다. 대패질이 잘 안 된다는 것은 틀림없이 대팻날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거든요.

▶ 그러면 한옥을 직접 지으셨나요?

거기서 두 달을 배우고 나서 충청도 괴산의 선배네 집에서 첫 집을 짓게 된 것이 첫 시작이었습니다.

▶ 두 달 배운 것으로 집을 지을 수 있나요?

좀 돌아서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세상에 대해서 좀 불만족스러운 부분 중의 하나가, 어떤 경제학적인 용어는 아닙니다만, 자본주의에 대해서 좀 싫어하는데요. 자본주의의 어떤 부분이냐 하면 내가 어떤 특정 전문분야에 종사해서 돈을 벌어서 나머지 것들은 그 돈으로 사서 써야 하는 것, 밥 사먹고, 옷 사입고, 집도 사야하고요. 물론 많은 부분 사야하고 의존해야 하는 부분들도 있지만, 인간이 누려야할 행복감, 내가 신발장 하나를 짜서 놓는다든지 하는 것들을 다 뺏기고 사는 것 같아요. 음식을 하면서 느끼는 쾌감도 있잖아요.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었어요.

그리고 특히 집에 대한 욕심, 이것을 짓는 과정에서 얼마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인데요. 저희 큰 집에 가보면 큰아버지가 목수도 아니신데도 다 자기 집에서 40년, 50년째 살고 계시고, 제가 해본 바로는 어떤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 마치 운전면허 미소지자에게는 처음에 자동차 운전이 어렵게 보이는데, 막상 긴장을 가지고 접근해서 몰입해보면 어렵기는 하지만 민가 정도는 지을 수 있습니다.

▶ 자신이 지은 첫 집을 보니까 어떠시던가요?

그 당시에는 뿌듯할 수밖에 없고요. 건축주인 제 친구 아버님이 너무 좋은 분이세요. 사실 두 달 배운 목수에게 뭔가를 맡긴다는 것이 힘든 일이잖아요. 그런데 그 친구 아버님이 저를 믿고 어쨌든 지어보라고 해주셨고, 그 분들이 참 좋아하시면서 지금도 거기에 계시고요.

▶ 그 집을 몇 년도에 지은 건가요?

2000년의 일입니다.

▶ 물론 협업으로 지을 텐데요. 목수는 어디까지 하는 건가요?

통상의 목수라 하면, 제대로 된 건축에서는 기와를 올리기 전까지 하는 일이 ‘대목’들이 하는 일이고, 윗부분은 ‘와공’들이 와서 하고, ‘소목’들이 와서 문과 창문 등 여러 가지를 다 합니다.

▶ 그럼 지금 ‘중목’ 정도 되는 건가요? ‘대목’까지 간 겁니까?

집을 짓는 목수는 통상 ‘대목’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대목을 했다가 소목으로 바꾼 경우죠.

▶ 목수일 배우겠다고 무작정 태백으로 갔을 때, 주위 분들, 특히 부모님 걱정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예. 좀 많이 걱정하셨는데, 나중에는 잘 해보라고 해주셨습니다.

◇ 가구는 건축과 달리 내 마음대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장점

 

▶ 어릴 때 집안 환경이나 분위기는 어땠나요?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다 초등학교 교사이셨어요. 그래서 제가 고등학교를 자퇴할 때는 그런 이유 때문에 좀 힘드셨죠. 아버님이 우리 지역의 장학사인데, 그 장학사의 아들이 자퇴를 하니까 말이죠.(웃음)

▶ 자퇴를 한 것은 청소년기의 방황이었던 건가요? 아니면 자기의 주장이 분명히 있었던 것인가요?

제 주의나 주장의 엄살이 좀 있었던 것 같고요. 사실 참아야 하는 것도 많은데, 사춘기의 순수함이라고 할까요? ‘이건 참으면 안 된다, 이걸 참으면 타협이다.’ 하는 생각이 있었죠.

▶ 어떻게 보면 부모님께는 까탈스러운 자식이었을 것 같은데요.

속 많이 썩인 것은 사실이고, 죄송하게 생각하고, 앞으로 잘 해드리려고요.(웃음)

▶ 그럼 집은 친구 아버님 집 한 채만 짓고 그것으로 끝이었나요?

아니요. 그 이후로 1년에 한 채씩은 집을 지었고, 지금까지 한 여덟 채 정도 지었습니다. 가구를 하기 전까지요.

▶ 집을 짓다가 가구에 심취하게 된 것은 어떤 계기 때문인가요?

집이라는 것이 건축주와 조율해야 되고 제가 원하는 조형으로 풀어나가기가 힘들고, 많이 타협해야 하는 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돈이 많아서 집을 제 마음대로 지어서 팔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요. 그런데 가구는 일단 작고, 이미 만들어진 다음에 마음에 드는 자가 사가는 것이니까 그런 점에서 가구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 건축을 하면 재미가 있어요. 그런데 하다보면 기둥 20개, 보 40개 다 똑같은 것을 만들어야 하니까 일로 다가오더라고요.

▶ 그러면 싫증도 잘 내고 변덕스러운 면도 있나 봐요?

제가 싫증이 많은 편이지만, 집을 그만둔 것은 싫증은 아니고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제가 문화재 현장에서도 일을 해봤는데, 제가 미대를 나왔으니까 보수공사 할 때 ‘포’ 같은 것 똑같이 깎는 것을 얼마나 잘하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목수를 잘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 기존에 있는 것을 똑같이 만들고, ‘부석사 무량수전’이라는 모범답안이 존재하는데, 한국사회에서는 그것을 재현하는 목수가 잘 하는 목수라고 되어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시대에 맞게 장점을 개선하고 변화하고 발전시켜야 하는데, 저는 그런 시도를 하고 싶은데 건축에서는 그럴 기회들이 저한테 좀 안 온 것 같고, 같은 일만 하게 된거죠. 같은 일을 싫어하는데 그것이 계속 반복된다면 과감히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내촌에 자리 잡은 특별한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많이 둘러보다가 결정했는데요. 서울에서 두 시간 반 정도면 가는 멀지 않은 곳인데요.

▶ 정확히 강원도 어디죠?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인데요. 내촌에서 설악산 쪽으로 한 40분 정도 더 들어가면 됩니다. 이 내촌이 ‘안 내(內)’자를 사용하지 않고요. 홍천군에 ‘안 내(內)’자를 사용하는 ‘내면’이 따로 있고, 이 곳은 ‘인내할 내(耐)’자를 씁니다. 그것이 뭔가 하면, 대개 고립된 산골짜기였다는 것인데요. 서울에서 두 시간 반 거리밖에 안 되는데도 옛것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고, 정갈하고, 자연환경도 잘 보존되어 있는 곳입니다.

▶ 김광석 씨 노래가 작업하실 때 좋은 친구가 되시나 봐요.

작업 끝나고 듣습니다. 작업할 때는 안 들립니다.

▶ 이정섭 씨가 사는 살림집의 내부도 궁금하네요. 철학이 담긴 특별한 가구가 놓여져 있을 것 같아요.

저희 집을 설명하자면, 일단 밝게 하기 위해서 천창을 내었어요. 남들은 별을 보기 위해서 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낮에 좀 더 밝게 하기 위해서 천창을 냈습니다. 욕실에는 큰 창을 내었어요. 그래서 욕조에 들어가 있으면 큰 창을 통해서 바깥 자연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 호사는 시골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이죠. 집 뒤가 동네가 아니고 산이니까요.

▶ 3인 가족이 살 수 있는 집이라고 하던데, 혼자 살고 계시다고요. 왜 아직 혼자이신가요?

사실 많이 생각하는데요. 혼자 살아서 얻는 장점들을 누구나 알고 있고, 같이 살아서 좋은 장점도 제가 아는데요. 그러면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에서 저는 혼자 사는 장점을 선택한 경우입니다.

▶ 작업을 혼자 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같이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으신가요?

2년간 혼자 끌어오다가 1년 반 전부터 조수를 받았고, 지금은 3명을 데리고 같이 일합니다.

◇ 전통가구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어... 과정을 기록하는 작업이 또 하나의 사명

▶ 이정섭 씨가 만든 가구에 대해 다른 분들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다른 분들은 제 가구를 보고 ‘모던하다’, ‘미니멀하다’는 표현을 많이 하세요. 그런데 저는 그것을 우리 한국 사람의 정서속에 있는 선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분들은 일본의 ‘젠’스타일 같다고 하는데, 그것과는 좀 다릅니다. ‘젠’이라는 것을 정확히 이야기하면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것이거든요. 가서 일본화 된 것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좀 아쉽죠.

▶ 일반적으로 가구를 미적인 측면보다는 생활의 편리성 측면에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보면 이정섭 씨는 그런 문화를 좀 바꾸고 싶은 의욕도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특별히 거실에 아름다운 그림을 걸기보다 쓰고 있는 의자가 아름답고, 그 다음에 아름다운 그림을 거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늘 밥 먹는 식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꼭 그것은 제가 가구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이 상식처럼 느껴지거든요. 보기 싫은 식탁에 앉아서 보기 좋은 그림을 보는 것은 좀 순서가 뒤바뀌지 않았나 싶습니다.

▶ 가구를 만들기까지 시행착오나 속상했던 적도 많았을 것 같아요.

시행착오는 나무의 그 물성에 대한 것들인데요. 우리나라의 목수분들이 글로 기록을 남기고 돌아가시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 사실 어디에도 배울 곳이 없고, 시행착오 해 보는 방법밖에 없죠. 그래서 나무의 수축, 팽창, 건조 등의 과정에서 많이 혼났고요.

심지어는 제가 첫 번째 전시를 작업실에 틀어박혀서 정말 유학갔다 생각하고 밖에 나오지 않고 그 안에서 1년간 만든 것을 인사동에 끌고 나와서 첫 전시를 하고, 반응도 괜찮아서 사시는 분들도 계시고 했는데, 그 사갔던 물건들이 막 뒤틀리고 갈라지고 해서 새것으로 바꿔드리는 과정에서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죠.

▶ 제가 알기로는 미국의 유명한 가구공장에서는 바닷물을 이용해서 나무의 뒤틀림을 방지한다고 해요.

삼투압으로 목재의 수액을 빼내는 거죠. 그렇게 어느 정도 빼내면 건조기간이 짧게 걸리죠.

▶ 좋은 목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도 정말 중요할 것 같은데요. 어떤 나무를 사용하나요?

가구를 만들 때 활엽수를 사용합니다. 활엽수를 ‘하드우드’라고 분류하는데요. 침엽수보다 훨씬 더 견고하고 수축팽창률이 적고, 변형률이 적고, 그래서 침엽수들은 주로 집을 짓는데 쓰이고, 활엽수는 가구를 만드는데 쓰입니다.

▶ 어떤 나무를 쓰시는 거죠?

제가 사용하는 활엽수는 참나무, 단풍나무, 호두나무, 벚나무, 물푸레나무 등입니다. 현실적으로 이 나무들을 정기적으로 수급할 수 있는 곳은 미국밖에 없습니다. 지질대가 우리나라는 노후화되어서 큰 거목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유럽 같은 경우에는 목재 소비량이 생산량을 초과해버리기 때문에 유럽조차도 미국의 나무를 수입해서 씁니다. 그래서 현재 안정적인 활엽수 공급원은 세계에서 미국뿐입니다.

▶ 온도와 습도를 맞춰 주는 것도 아주 중요하죠?

네. 제가 느끼기에는 세계에서 가구를 만들기 가장 힘든 나라가 한국인 것 같아요. 이처럼 장마철과 습도 변화가 크고, 아파트에서 난방을 이렇게 덥게 하고 말이죠. 한국에서 가구에 문제가 안 생긴다면, 세계 어디를 가도 문제가 안 생길 겁니다.(웃음) 목공소 같은 경우 그렇게 큰 공간을 일정하게 관리한다는 것은 참 힘든데요. 그래서 그런 부담이 크죠.

▶ 전통가구들에 대한 기록이 많이 부족하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그러면 이정섭 씨 본인은 스스로 기록으로 남기셔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그것을 사명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러면 가구에 관한 좋은 책도 만날 수 있나요?

그것은 앞으로 5년에서 10년 뒤쯤 가능할 것 같아요.

▶ 아무래도 예술적인 디자이너의 가구라서 가격이 좀 비쌀 것 같은데요.

이유있게 비쌉니다.(웃음)

▶ 정성껏 만든 가구가 고객에게 보내질 때는 마음이 어떠신가요?

남이 잘 쓰고 좋아하면 저도 좋아 하는데요. 제가 아쉬운 것은, 다시 만들어지기 어려운 것도 있고, 제가 그것을 곁에 두고 봐야지 되는 경우가 있어요. 단지 좋아서가 아니라요. 그래서 사실 안파는 가구도 있습니다. 제 발전과 저를 자극하는 것이거든요. 사진과 자료를 두는 것과는 또 다르거든요.

▶ 가구 디자인에 관심을 갖고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 않나요?

의외로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찾아오세요. 40대 이후 분들이죠. 저는 제 제자를 뽑고 저의 것을 전수할 때 20대의 젊은이를 찾는데, 그런 젊은이들은 잘 없어요. 그래서 어려움도 겪고, 힘들게 구해지고 그렇죠.

▶ 시골생활의 재미는 어떤가요?

일단 외부적으로 방해를 받는 것이 없다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소음으로부터, 불빛으로부터의 방해가 전혀 없는 것이 제일 좋죠. 목공소의 고도가 500m 정도 되어서 공기가 아주 상쾌합니다.

▶ 작업하느라 매끼 라면으로 때우시는 건 아닌가요?

아닙니다. 세 끼를 챙겨먹는 것은 목공소에서 제일 중요한 원칙입니다.

▶ 제자들도 남자분들이죠? 남자들끼리만 있으면 좀 팍팍하고 그렇지 않나요?

저희 제자들은 좀 결혼을 빨리 시켜야죠.(웃음)

▶ 보통 우리는 신문이나 매체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는데요. 그런 것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죠?

아닙니다. 제가 알아서 혹은 개입해서 할 수 있는 여지도 별로 없고요. 당분간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히 있기 때문이죠. 또 하나 신문 배달이 안 되고요.(웃음)

▶ 가구를 더 잘 만들기 위해서 공부는 어떻게 하시고, 연구하는데 투자하는 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계속 스케치하고 머릿속으로 구상, 실현화시켜서 실제 만들어 봅니다. 좋은 건축가의 작업들을 실제 나가서 많이 봐야하고요.

▶ 앞으로의 꿈은 어떤 것인가요?

남들은 제가 건축을 하다가 가구로 전향했다, 돌아섰다는 표현도 하는데요. 사실은 잠시 중단하고 가구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가구가 건축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저는 잠깐 건축의 한 부분인 가구를 했고, 다시 큰 틀에서 해보고 싶은 욕심과 꿈이 있습니다. 가구와 건축은 별개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건축을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표준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김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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